탈북자의 인권은 어디까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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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의 인권은 어디까지인가
  • 법률저널 편집부
  • 승인 2013.02.22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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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필규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2010년 8월에 시작되었던 탈북자 합동신문 관련 국가배상소송이 지난 1월 대법원의 심리불속행기각 판결로 전부 패소가 확정되었다. 인권문제와 관련하여 법원, 헌법재판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제기된 소송이나 진정의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왔을 때, 이를 대리한 입장에서는 죄를 짓는다는 생각이 든다. 부정적인 선례를 남김으로써 관련 인권 침해를 정당화시키게 되고 다른 유사한 사례에서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리한 사건이 패소로 확정된 상황에서 변호사가 이런저런 소회를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의 무능함과 부족함을 변명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한 소송 대리라면 확정 판결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인권을 고민하는 처지에서는 확정판결은 그 내용을 불문하고 또 다른 시작일 수밖에 없다.


2009년 영국과 호주 변호사들로부터 같은 내용의 요청이 들어왔다. 탈북자인 본인들의 의뢰인이 난민신청을 하였는데 법원이 한국법에 따르면 탈북자는 한국 국민이고 한국 정부의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난민일 수 없다고 한다며 관련 한국법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제출해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난민협약에서 이야기하는 국적은 온전한 국적을 이야기하지만, 북한주민의 한국국적은 정치적인 맥락이 있는 불완전한 국적이라는 것, 북한과 한국이 현재 휴전하고 있다는 것 등의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영국과 호주 법원은 탈북자가 한국국적이 있기 때문에 난민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의 난민지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국내외 논의가 무색해지는 상황이었다. 한국에서는 탈북자들의 인권을 이야기하지만 바로 그 한국법 때문에 탈북자들은 자신들의 인권을 주장할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현실.


위 사건을 다루는 과정에서 탈북자들의 상황을 좀 알게 되었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탈북자들은 한국 정부, 정확하게는 외국에 주재하는 한국 공관에 보호신청을 할 수 있고, 탈북자인지에 대한 일차적인 심사를 거쳐 한국에 입국하게 된다. 입국 후에는 국정원의 주도하에 보호 및 정착 여부를 결정하는 합동신문이 이루어지고 사회적응을 위하여 정착지원시설인 하나원에서 교육 등을 받게 된다. 문제는 합동신문과정이나 하나원이 출입은 물론 외부접촉도 철저하게 통제되는 구금시설이라는 점이다. 합동신문은 6개월까지 가능하고 하나원 과정은 3개월 정도 진행된다. 거의 1년 가까이 탈북자를 가둘 수 있는 이러한 관행은 어떤 법적 근거를 가지는 것일까. 이것이 고민의 시작이었고 마침 합동신문 과정에서의 인권침해를 주장하는 당사자가 나타나 국가배상소송이 시작되게 되었다.


국가정보원장은 ‘임시 보호나 그 밖의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합동신문의 법률적 근거의 전부다. 그러고 시행령이 ‘임시 보호나 그 밖의 필요한 조치’를 ‘일시적인 신변안전 조치와 보호 여부 결정 등을 위한 필요한 조사’로 부연 설명하고 있고, 그 ‘내용·방법과 필요한 조치를 위한 시설의 설치·운영 등’은 국정원장이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른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 정도의 규정을 가지고 어떤 사람을 6개월씩이나 독방구금하면서 그 어떠한 절차적 보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사형에 처할 수 있는 간첩죄에 관한 조사까지 이루어진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합동신문의 현실이 바로 그렇다. 문제는 법령에 드러나지 않은 배경, 즉 보호신청을 한 탈북자 중 간첩이 있을 수 있다는 고려가 모든 것을 정당화시킨다.


판결은 원고가 임시보호시설 수용 및 조사 등에 대하여 충분히 고지 받았고 이를 양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증거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국정원이 원고를 조사실에 수용한 후 원고로 하여금 본인과 관련된 내용 일체를 사실대로 말하고, 그 진술이 사실과 다를 경우 관련법에 따라 처벌 등을 받을 것을 서약하도록 한 것뿐이다. 판결은 또 원고가 스스로 보호신청을 한 것이고 언제든지 보호신청을 철회할 수 있었다고 한다. 원고가 보호신청 철회 의사를 밝혔다면 국정원은 어떠한 후속조치를 취했을까. ‘반국가단체가 지배하고 있는 지역’인 북한으로의 강제송환? 중국으로의 밀입국? 아니면 합동신문시설을 나와 한국에서 한국 국적자로서 자유롭게 생활하게 한다?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


판결은 원고에 대한 절차·보장 없는 감금조사가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필요 최소한의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한다. 위장탈출, 간첩죄 혐의에 관한 조사의 필요성은 인정될 수 있다. 특히 보호신청절차를 이용한 간첩의 잠입 가능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철저한 수사의 필요성은 강조될 필요도 있다. 그러나 흉악범이나 지능범이 증가한다고 하여 고문의 도입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호신청절차를 이용한 간첩이 증가한다고 하여 행정절차에 불과한 보호 여부 심사절차에서 간첩죄 혐의 수사를 하는 위법적인 관행을 정당화하거나 강화할 수는 없다. 오히려 행정절차인 보호 여부 결정에 관한 조사와 형사 절차인 간첩죄 혐의에 대한 수사를 명확히 구분하고, 각 절차가 요구하는 적법절차를 철저히 보장할 때 위장 간첩이 발붙일 가능성을 줄일 수 있고 법치주의를 확립할 수 있다.


소송을 진행하면서 들었던 느낌은 법원이 ‘국정원이 간첩 잡자고 애쓰고 있는데 별걸 다 가지고 트집 잡는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헌법상의 기본권 보장과 적법절차의 원칙은 어디로 간 것일까. 여성참정권 보장, 노예제 폐지 등 모든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는 초기에는 ‘시기상조’가 아닌 것이 없었고 ‘불법’이 아닌 것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탈북자에 대한 합동신문과 하나원 과정에서의 인권 침해도 언젠가는 시정될 것이다. 하지만 단 한 명의 탈북자라도 하루빨리 그러한 인권 침해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나를 비롯한 인권을 생각하는 이들이 해야 할 몫은 아직 많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공감 뉴스레터 2013년 2월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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