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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한국의 미래를 어떻게 봅니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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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한국의 미래를 어떻게 봅니까? (5)
  • 법률저널
  • 승인 2013.02.0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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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민주주의, 휴머니티

 

신희섭 베리타스 법학원 

 

지난 주제들에 이어서 이번 시간에도 한국의 현안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도록 한다.  『세계의 석학들, 한국의 미래를 말하다』의 5장은 무역과 개방에 관한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장의 가장 주요한 논점은 경쟁의 논리와 무역과 경쟁의 논리와 국내 경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먼저 무역과 관련해서는 무역의 가치와 수출의 혜택이 혼동되어서는 안된다는 점부터 지적될 수 있다. 한국인들이 믿고 있는 것은 수출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는가에 있지 무역이 상호적이어야 한다는 데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우리 시장은 보호되어야 하면서도 타국의 시장에 대해서는 공격적인 수출 정책을 통해 그 나라의 고용까지 위협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모순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 장의 공동 인터뷰대상자인 클라이드 프레스토위츠 연구소장과 혼다 히로쿠니교수는 무역의 상호주의적 입장에서는 같은 입장에 섰다.


하지만 클라이드 프레스토위츠 소장은 보호주의에 대해서 부정적 입장에 있는 반면에 혼다 히로쿠니 교수는 각 국가의 사정에 따라 보호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에 있다. 특히 농업시장에 있어서 한국적 특수성을 고려할 때 보호주의를 탄력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만약 모든 경제원리가 효율성이라는 원리에 지배를 받게 된다면 “너희 집이 음식을 잘 만드니 음식은 너희 집에서 우리 집 것도 만들고 우리 집은 청소를 전담할께”와 같은 논리가 성립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국가든 기초적인 일정한 기능(예를 들어 안보, 치안, 생산활동)은 효율성의 원리에 관계없이 수행해야 한다. 다시 가정의 비유를 들자면 시간과 비용을 고려하여 외식만 한다면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순간에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손 놓고 발을 동동 구르기만 할 것이다.
 

클라이드 프레스토위츠는 미국이나 영국이나 호주가 무역을 최우선 순위로 두지 않는다고 한다. 이보다는 지정학적 의미를 더욱 중시하는데 북한과 이란에 군사도발에 대응하고 중국과 인도에 외교적 주도권을 가지려는 것이 이들 국가의 더 중요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와 안보적 고려를 하면서 동시에 포괄적인 자유무역 구조를 선호하는 데 비해 한국과 일본 같은 국가들은 전략적 무역을 통해서 특정산업을 공세적으로 키워왔다. 그러다 보니 대표적인 사례로 현대 자동차가 미국 시장에서 5% 점유율에서 9% 점유율까지 늘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미국자동차회사의 내수 시장을 위축시켰을 뿐 아니라 다른 판매 방식(미국에서는 모든 회사의 자동차를 포괄적으로 판매하는 딜러방식이지만 한국은 기업별로 매장을 두는 방식을 사용)으로 해외 시장에서도 미국 기업들은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히로쿠니 교수는 지정학과 안보적 고려를 무역과 연계시키는 미국의 정책 입장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경제를 안보에 종속시켜서 자유무역을 희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두 사람 사이에 있는 간극을 확인할 수 있다.
  

자유무역이 타당한지 여부의 논의를 지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존이라는 국내경제문제로 주제를 돌려보자. 크라이드 프레스토위츠는 중소기업과 대기업간 관계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거대기업들의 규모의 경쟁과 이를 통한 독점적 지배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본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윈도에 묶어서 내놓았기 때문에 결국 독점적 지위를 얻으면서 넷스케이프라는 최초의 인터넷 브라우저와 기업을 죽이게 된 대표적인 사례를 들어 독과점이 실제 문제라고 지적한다. 소규모점포와 월마트간의 경쟁과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사례는 차이가 있다. 월마트는 소비자를 강요하지 않는다. 단지 좀 더 저렴하게 물건을 공급하고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린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사는 마치 ‘우리가게에서 옷을 사려면 시발도 반드시 사야한다’고 강요를 한 것이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어느 순간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강요로 인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강요’라는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의 ‘빵집’논의처럼 소규모제과점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들을 제도적으로 압박하는 것은 근거가 약할 뿐 아니라 감성주의적 접근이 된다.
 

프레스토위츠는 시장경쟁 논리를 통해서 좀 더 좋은 제품을 신뢰성있게 공급받을 수 있게 되면서 중소기업이나 골목 상권이 무너지는 현상은 어쩔 수 없는 자본주의의 흐름이라고 지적하는데 비해서 히로쿠니교수는 중소기업이 무너지면서 생겨나는 다른 측면에 주목한다. 과연 중소기업과 자영업이 무너지면서 이것이 산업전체적인 효율을 높이는가 하는 점이다. 우선 작지만 여러 분야에서 특화된 기술들이 사라질 수 있고 다양한 소비 선호가 반영되지 못할 수 있다. 또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이 차지하고 있는 사회중산층이 무너지면서 소비가 위축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자유무역을 통한 외부 자본과 기업의 등장은 더더욱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을 압박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분배 면에서 소득보장과 최저임금인상과 같은 정책적 고려가 있어야 소비가 위축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 책의 5장이 다루는 마지막 주제는 경쟁이다. 아담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말하고자 했던 핵심은 경쟁으로 “가치는 경쟁에 의해 생성된다”고 하는 자유경쟁이론(natural competitive principle)으로 구체화되었다. 이것이 다윈의 『종의 기원』으로 이어져 경쟁은 경제문제를 넘어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진화과정으로 접목되었다. 경쟁의 논리가 작동하는 경제문제에서 이 책의 저자인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교수는 매우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경쟁의 논리에서는 강자와 약자가 구분되고 승자와 패자가 구분된다. 그런데 한미 FTA의 당사자인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과연 한국은 정말로 약자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미국은 과거 다변화된 경제산업구조에서 현재는 단순 경제산업구조로 바뀌었다. 그리고 금융을 중심으로 하면서 산업기반이 줄어들고 있고 몇 가지 산업은 무너져 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은 점차 자신들의 무너진 산업을 외국의 수출품으로 대체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대외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자부심인 자동차산업에서 독일메이커들과 일본메이커들과 한국메이커들의 선전과 시장 점유율 증대가 상징적인 사례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한국과 미국은 경제규모만으로 약자와 강자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닐 수 있다. 특히 미국인들은 한국이 과거 약자의 이미지를 통해서 여전히 특정시장에서 우월한 지배력을 보유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을 하고 있다고 본다. 이것이 극단적으로 나쁘게 진행되면 속임수가 되는 것이다. 이점에서 히로쿠니 교수가 지적한 무역의 문제점을 들여다보면서 국내적인 조정과 정책적 고려가 필요한 것이다.
 

국제적 경쟁문제를 넘어서 국내적 경쟁문제로 눈을 돌려보면 두 가지 점을 동시에 보아야 한다. 경제영역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에는 경쟁이라는 인간의 필연적 조건이 가혹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 하나고 중소기업이 무너지고 자영업자들이 설자리를 잃게 된다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이 책의 비유처럼 어느 날 티라노사우르스가 출현했을 때 공룡의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에서 이것이 공정한가 공정하지 않은가를 과연 따져볼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티라노사우르스가 모든 공룡을 다 집어 삼키게하여 공룡생태계를 붕괴시키게 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핵심 쟁점은 공룡과 같은 거대기업이 경쟁력을 갖추고 성장하면서 중소기업들이 무너져 가는 상황에서 어떻게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최근 학교 앞의 문방구들이 30년 이상 일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의 공동구매와 대형마트와 인터넷시장으로 인해 이제 할 일이 없어진 것을 보면서 “30년 이상 해온 일을 접어야만 하는가?”라는 기준으로만 이런 문제들을 접근할 수는 없다. 감성적으로만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다른 이들 사이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국가가 이를 정당화하는 논리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감정을 넘어선 이성적인 접근이 병행되어야 국가의 중소기업과 영세사업에 대한 지원과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따라서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정당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정치학을 공부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금을 내며 공동체 운영에 관심을 가진 이들을 설득하고 이들의 인식과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정치학의 제도공학만이 아니라 정치철학적 접근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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