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드디어 정치경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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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드디어 정치경쟁이 시작되었다.
  • 법률저널
  • 승인 2012.09.2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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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민주주의, 휴머니티

 

신희섭 베리타스 법학원 

  

2012년 9월 19일 3시 드디어 안철수 교수가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주변의 여러 사람들의 소중한 의견을 들었고 이들을 스승으로 삼았으며 자신에 대한 국민들이 가진 정치개혁의 열망을 알았다고 했다. 그것이 자신의 입장을 정하게 했다고 하였다. 대통령에 출마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정치경쟁이 시작되었다.
  

안철수 교수 혹은 원장은 안철수 대통령후보로 입장이 달라졌다. 이러한 입장 표명에 대해 환호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고 실망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정치라는 것이 가치를 둘러싼 투쟁이기 때문에 이 투쟁과정에서 지지자와 반대자들이 다투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다. 이글을 쓰고 있는 19일 3시 현재 이후 각 언론들과 시민단체들이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안철수 대통령후보자에 대해 일제히 포성을 울릴 것이다.
 

오랜 기다림과 모호함 뒤에 그는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심리적으로 지칠만큼 지친 상태에서 발표된 이 선언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들이 나올 것이다. 왜 구세군아트홀에서 했는가 부터 왜 19일인지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들이 나돌 것이다. 정치이야기를 확대재생산하기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과 매체들이 있으니까 이 상황의 본질과 관계없는 이런 이야기로 정치적 의제를 마치 연예기사화로 만들 것이다.
 

안철수 원장의 대선출정보고는 최근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주제가 되었다. 한국 정치라는 큰 틀에서 볼 때 분기점이 될 만한 여러 가지 일들이 앞으로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안철수 원장의 출마선언은 대선을 3자 구도로 만들었다. 한국정치에서 의미 있는 3자 구조가 나타난 마지막 선거는 16대 대선이다. 월드컵의 열기 속에서 정몽준 후보가 혜성같이 등장하여 노무현 민주당후보와 후보단일화를 했을 때이다. 15대 대선에서는 이인제 후보가 3자 구도를 만들었다. 이인제 후보는 1997년 12월 대선에서 492만 표(19.2%)를 얻었고 결국이 지지율로 보수 진영의 표는 갈렸다.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에게 불과 39만 표(1.6%) 차이로 패하는 데 이인제 후보의 출마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14대 대선에서도 제 3의 후보로 정주영후보가 등장했다. 국민당을 창당한 정후보는 388만표(16.3%)를 얻었다. 13대 대선에서는 ‘1노 3김’으로 갈려서 민주화의 첫 번째 선거에서 민주파인 김영삼-김대중 양김이 승리하지 못하였다. 물론 지난 17대 대선에서도 이회창 후보는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15.1%(355만표)를 얻었다. 하지만 워낙에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선전을 했기 때문에 제 3 후보로서 빛을 보지는 못했다.
  

한국 정당정치에서 제3의 후보가 등장하여 3자 경합이 되는 것은 특이한 방식으로 대선의 결과를 변화시킨다. 정몽준 후보가 선거전날밤에 갑작스럽게 지지를 철회한 것이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번 대선 역시 그런 점에서 3자 구도가 지속될 것인지 아니면 야권통합으로 진행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만약 3자 경쟁이 지속되어 선거가 3자 경쟁으로 치루어지면 어떻게 될까? 안철수 후보에 지지를 보내는 이들이 여권에 반대하는 입장이며 보수보다는 진보적 성향이 더 강하기 때문에 보수진영 박근혜 후보의 당선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누가 나오든지 관계 없이 보수적 입장을 지지하는 40%대에 달하는 지지층이 포진해 있기 때문에 확고한 진보층 30%대와 중도적 입장의 30%가 투표를 얼마나 하든지 관계없이, 표가 문재인후보와 안철수후보로 갈리게 되어 선거에서 보수를 대표하는 박근혜 후보가 당선될 것이다.
 

그렇다면 야권통합을 이룩하면 결과는 달라질까? 잠정적인 결론은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이다. 하지만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안철수 후보의 등장이라는 이 흥행카드를 과연 민주당이라는 조직이 잘 활용하지 못할 것 같아서이다. 지난 선거 정치에서 민주당은 “정당은 정권장악을 목표로 하는 조직이다”라고 하는 정치학 교과서의 주장과는 반대로 행동했다. 내홍과 전략부재로 민주당은 정권교체의 이 카드를 깜짝 이벤트로 사용하고 말 것 같다. 문재인 후보를 순회경선제도를 사용해서 선출한 민주당입장에서 안철수후보와 1대 1 담판을 통한 통합을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동안의 민주당원들과 지지자들의 노력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삼자 경쟁구도를 양자 경쟁구도로 변화하는 것에 있어서 어떤 전략을 구상할 것인가가 이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이 문제의 본질은 통합을 통한 권력창출로 갈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지지자들의 선호와 의사를 존중하여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와 거리를 두면서 차별화할 것인가에 있다. 정치는 권력투쟁이다. 일차적으로 권력투쟁이고 이차적으로 유권자와 사회선호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과연 도덕적인 정치와 정치개혁을 외치는 안철수 후보 진영이 권력정치로 쉽게 넘어오게 될 것인가가 이 문제의 핵심이다.
  

모든 정치세력은 권력을 추구한다. 하지만 모든 세력이 명분을 동일하게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마키아벨리식의 적나라한 권력추구자가 있는가 하면 칸트처럼 교묘하게 자신의 지식으로 권력을 추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 후보 측도 권력을 추구할 것이고 정권교체로 나서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 교수가 항상 주장하는 국민들의 요구라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시대의 흐름과 시대정신으로 표현되는 유권자들의 요구가 결국은 통합의 관건이다. 즉 명분있는 권력추구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통합이라는 상황을 고려할 때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처럼 조직과 인물이 연대하는 상황이 다시 벌어질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단일화를 할 것인가는 이정도가 되면 기술적인 문제가 된다. 결국 여론조직화와 지지층 확보에서 각자의 계산에 따른 단일화방식이 주장될 것이고 조정될 것이다. 이 과정까지 가는 동안에 얼마나 지지층을 불러모으면서 선거를 쟁점화하는가와 통합시기를 언제로 잡는지가 통합진영이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우리를 흥미롭게 만들 것은 안철수 후보가 지금까지 보여준 ‘수동형리더’의 모습이 과연 이 과정에서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안철수 후보는 국민들이 자신을 나오게끔 만들었고, 국민들의 열망이 시대정신과 흐름을 만들었고, 자신은 이 시대의 흐름에 있어서 하나의 의미있는 도구가 되겠다고 했다. 자신의 거취는 국민의 열망이 만들 것이고 자신이 대통령이 될지 여부 역시 국민의 판단에 달렸다고 했다. 통합 역시 기성정당의 변화와 혁신이라는 첫 번째 조건과 국민의 동의라는 두 번째 조건에 달렸다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정치적이지 않은 리더를 만난다. 추종자가 만드는 리더. 추종자의 의지에 복종하는 리더. 추종력을 따르는 리더십.
  

이것은 종교적 리더십이다. 리더는 말 그대로 이끄는 자이다. 이끌리는 자는 리더가 될 수 없다. 리더는 추종자들의 의견을 경청하되 자신이 판단을 하는 자이다. 추종자들이 판단을 하게 한다면 리더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며 그럴 때 왜 추종자는 추종자로 남아있겠는가? 이것은 열반의 경지에 오른 성자가 보여줄 수 있는 희생정신이지 리더십이 아니다.
  

말 자체로 형용모순(oxymoron)인 ‘수동형리더십’ 혹은 ‘추종자형리더십’은 정치적이지 않다. 그러나 이것을 정치적으로 만든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인민민주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인민이 지배하는 세상을 그리면서 이들이 지배하기 위해 계급적 왜곡을 해소하고자 하였고 이를 위한 전위조직으로서 정당을 최전선에 배치하였다.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 속에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없는 안타까운 처지의 인민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들은 스스로 메시아가 되기로 마음먹었고 메시아들의 단체인 공산당을 구축했다. 그리고 이들은 ‘인민을 위해(for the people)’ 독재를 마음 먹고 ‘인민의(of the people)’정치를 삭제했다. 따라서 인민민주주의자들이 주장했던 인민을 위한 리더십 역시 권력추구를 위한 메시아버전류의 왜곡이다.
 

안철수 후보가 통합을 고려하면서 민주당과 연대를 모색할 때 고민하게 될 본질적인 문제는 추종자지향적인 정치가 순수한 정치현상인 권력과 만나게 된다는 것에 있다. 권력을 얻어서 추종자들과 추종하지 않는 자들을 통합으로 나가게 할 수 있다. 그것이 정치의 기본적인 덕목이니까. 하지만 추종자들에 의해서 결정되어 권력으로 나갈 수는 없다. 그 상황이 되면 이미 리더는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시대의 아픔과 문제를 해결하기 기대하는 사람들이 시민들이고 추종자들이다.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면 지지자과 추종자들은 이제 수동적이고 반응적인 모습이 아닌 새로운 모습을 리더에게서 기대한다. 그러한 기대는 지금까지 출마를 기다리던 모습과는 다른 것이다. 이제 지지자들은 안철수 후보가 순수한 형태로 권력을 추구하고 그 권력의 무서움을 알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기대의 숭고한 순간이 국민이 떠밀어야 무엇을 결정하는 모습으로 비쳐지면, 그동안 보여주었던 종교적 희생버전의 이념정치와 현실정치는 분리되어버릴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출마회견의 마지막에 자신이 좋아한다는 SF 소설작가인 윌리엄 깁슨을 인용했다. “미래는 이미 와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이제 중요한 결정한 그에게도 다시 결단을 해야 하는 미래는 이미 와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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