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현 교수의 형사교실] 통신의 비밀을 침해하는 보도행위가 ‘정당행위’로 인정되기 위한 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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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현 교수의 형사교실] 통신의 비밀을 침해하는 보도행위가 ‘정당행위’로 인정되기 위한 요건
  • 법률저널
  • 승인 2012.04.2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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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1.3.17.선고 2006도8839 전원합의체 판결

이창현 한국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 사건 개요


 가. 공소사실 요지


(1) 피고인 1은 문화방송(주)의 보도국 기자로서, 누구든지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의 규정에 위반하여 지득한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내용을 공개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위 방송의 보도국장 및 소위 ‘안기부 X파일’ 관련 특별취재팀 기자들과 공모하여, 2004.12.5. 불교방송 부근 상호불상 커피판매점에서 재미교포인 A로부터 전 국가안전기획부 직원들이 1997.4.9.경, 같은 해 9.9.경, 같은 해 10.7.경 등 3회에 걸쳐 서울의 호텔 일식집 등지에서 당시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장과 당시 중앙일보 사장이 ‘정치권 동향 및 대권후보들에 대한 정치자금 제공’ 등에 대하여 논의한 대화를 도청하여 작성한 녹취보고서 3건을 전달받아 그 내용을 확인하고, 같은 달 30.경 서울 동작구 소재 A의 부친 집 앞 도로에서 위 녹취보고서 중 1997.9.9.자 대화내용을 녹음한 테이프 복사본을 전달받아 독자적으로 그 녹취록을 작성하고 보도국장 등에게 보고하여 전문업체를 통하여 위 녹음테이프에 대한 성문분석을 마침과 동시에 잡음이 제거된 마스터 CD를 제공받는 등 사전준비를 하다가, 위 도청자료의 보도를 위한 소위 ‘안기부 X파일’ 관련 특별취재팀이 발족되자 위 마스터 CD와 녹취록을 위 특별취재팀에 제공한 다음, 2005.7.22. 문화방송 사옥에서 방송된 ‘9시 뉴스데스크’ 프로그램에 취재기자로 출연하여 별지 범죄일람표 순번 4 기재와 같이 위 도청자료의 입수경위와 내용을 설명하는 등, 별지 범죄일람표 기재와 같이 2005.7.21.경부터 같은 달 27.경까지 17회에 걸쳐 위 녹취보고서와 녹음테이프의 내용을 보도하여 통신비밀보호법에 규정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지득한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내용을 공개하고,

 

(2) 피고인 2는 월간조선의 편집장으로서 월간조선 기자 등과 공모하여, 2005.5.하순경 월간조선 사무실에서 전 안전기획부 직원들이 도청, 제작한 녹음테이프와 녹취보고서 등이 존재한다는 풍문을 듣고 편집부 소속 차장에게 위 도청테이프를 확보하도록 지시하여 문화방송 소속 성명불상 기자로부터 위와 같은 녹취록과 녹취보고서 3건을 입수한 후 같은 해 8.초순경 월간조선 사장과 논의하여 위 녹취록과 녹취보고서 전문을 공개하기로 결정한 다음, 같은 달 15.경 편집국 소속 기자로 하여금 같은 달 17.경 발간된 2005년 9월호 월간조선 94쪽부터 125쪽에 ‘유령처럼 떠돈 안기부 X파일 전문 공개’라는 제목과 함께 “(이름 생략) : 아, 한○○ 이야기 들으셨어요, (이름 생략) : 못들었는데요, (이름 생략) : 어저께 보고를 받았는데 허 아무개, 허사장이 문제삼겠다고 굉장히 주사를 부린 모양이야 --” 라는 대화 등 위 녹취록과 녹취보고서의 내용 전문을 게재하도록 하여 통신비밀보호법에 규정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지득한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내용을 공개하였다는 것이다.

 

 나. 적용법조


*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통신 및 대화비밀의 보호) ① 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


* 통신비밀보호법 제16조 (벌칙) ①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1. 제3조의 규정에 위반하여 우편물의 검열 또는 전기통신의 감청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한 자
 2. 제1호의 규정에 의하여 지득한 통신 또는 대화의 내용을 공개하거나 누설한 자

 

 다. 사건경과 


(1) 1심은 방송사 기자인 피고인 1에 대해서 과거 국가안전기획부 직원들이 불법적으로 도청, 제작한 녹취보고서와 녹음테이프를 입수하여 그 대화내용을 보도한 것이 통신비밀보호법 제16조 제1항 제2호의 구성요건에는 해당하지만 그 보도경위와 내용 등에 비추어 보도 목적의 정당성, 법익의 균형성, 수단의 상당성 및 비례성 등의 요건을 모두 충족하여 피고인의 행위가 위법성조각사유에 해당하여 죄가 되지 아니한다며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고, 시사 월간지 기자인 피고인 2에 대해서는 과거 국가안전기획부 직원들이 불법적으로 도청, 제작한 녹취록과 녹취보고서의 내용 전문을 월간지에 게재한 행위가 목적의 정당성은 인정될지라도 수단, 방법에 있어서 상당성 내지 비례성을 결여하여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아 통신비밀보호법위반죄가 성립한다고 보고 징역 6월 및 자격정지 1년의 형을 선고하여야 할 것이나 피고인 2가 월간조선의 편집장으로서 위 녹취록 및 녹취보고서의 전문을 게재한 기사를 게재하게 된 목적의 일단에는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도 일부 작용한 점, 당시의 상황은 이미 위 녹취록 및 녹취보고서의 주요한 내용은 다른 언론매체에서 모두 공개한 뒤여서 피고인에게 큰 위법성의 인식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점, 위 녹취록 및 녹취보고서를 최초로 입수한 피고인 1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점 등 제반 정상을 참작하고 피고인에게 개전의 정상이 현저하므로 형법 제59조 제1항에 의하여 위 형의 선고를 유예하였다.


이에 검사는 피고인 1의 보도행위에 위법성의 조각이 인정될 여지가 없고, 피고인 2에 대한 선고유예가 지나치게 가벼워서 부당한 양형이라는 이유로 항소하였고, 피고인 2는 자신의 편집행위 역시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이유로 항소하였다.
 
(2) 항소심(원심)은 피고인 1에 대하여 검사의 항소가 이유있다며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6월 및 자격정지 1년으로 정한 후 ① 보도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나 목적에서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는 점, ② 문화방송의 보도 여부나 보도 내용에 관한 결정이 종국적으로는 피고인 1 개인이 아닌 방송국 내지 보도국의 의사결정체계를 통해 이루어진 점, ③ 다른 언론매체의 선제 보도가 보도 결정을 직접 촉발하였으며, ④ 당사자들의 실명을 거론한 보도 역시 다른 언론매체의 보도 이후 이루어진 점, ⑤ 다른 언론매체도 유사한 보도를 하였으나 유독 위 피고인과 피고인 2만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죄로 기소된 점 등 여러 정상을 참작하여 형법 제59조 제1항에 따라 위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피고인 2에 대하여는 그 출판행위 역시 유죄로 인정되고, 또한 ① 편집에 이르게 된 동기나 목적에서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는 점, ② 이미 녹취록 및 녹취보고서의 주요한 내용을 다른 언론매체에서 모두 공개한 이후에 월간조선의 보도가 이루어졌고, ③ 이러한 상황에서 의혹과 불신의 확대를 방지하기 위해 전문게재가 필요했으며 보도원칙을 준수하였다는 위 피고인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고 인정되는 점, ④ 다른 언론매체도 유사한 보도를 하였으나 유독 위 피고인과 피고인 1만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죄로 기소된 점에 비추어 피고인 2에 대한 선고유예는 적절하다고 인정된다며 피고인 2의 항소와 위 피고인에 대한 검사의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4항에 따라 이를 모두 기각하였다. 이에 대해 피고인들은 정당행위에 관한 법리오해 등을 이유로 상고하였다.
 
2. 쟁 점

 

불법 감청 · 녹음 등에 관여하지 아니한 언론기관이 그 사정을 알면서 이를 보도하여 공개하는 행위가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로 인정되기 위한 요건은 무엇인지가 문제된다. 

 

3. 판결이유 정리 (다수의견 : 대법관 8인 의견)


가. 통신비밀보호법은 같은 법 및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한 우편물의 검열 또는 전기통신의 감청,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의 녹음 또는 청취행위 등 통신비밀에 속하는 내용을 수집하는 행위(이하 ‘불법 감청·녹음 등’이라 함)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행위를 처벌하는 한편(제3조 제1항, 제16조 제1항 제1호), 불법 감청·녹음 등에 의하여 수집된 통신 또는 대화의 내용을 공개하거나 누설하는 행위를 동일한 형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16조 제1항 제2호). 

이와 같이 통신비밀보호법이 통신비밀의 공개·누설행위를 불법 감청·녹음 등의 행위와 똑같이 처벌대상으로 하고 법정형도 동일하게 규정하고 있는 것은, 통신비밀의 침해로 수집된 정보의 내용에 관계없이 정보 자체의 사용을 금지함으로써 당초 존재하지 아니하였어야 할 불법의 결과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취지이고, 이는 불법의 결과를 이용하여 이익을 얻는 것을 금지함과 아울러 그러한 행위의 유인마저 없애겠다는 정책적 고려에 기인한 것이다.


 나. 불법 감청·녹음 등에 관여하지 아니한 언론기관이, 그 통신 또는 대화의 내용이 불법 감청·녹음 등에 의하여 수집된 것이라는 사정을 알면서도 이를 보도하여 공개하는 행위가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하기 위해서는, 첫째 보도의 목적이 불법 감청·녹음 등의 범죄가 저질러졌다는 사실 자체를 고발하기 위한 것으로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통신 또는 대화의 내용을 공개할 수밖에 없는 경우이거나, 불법 감청·녹음 등에 의하여 수집된 통신 또는 대화의 내용이 이를 공개하지 아니하면 공중의 생명·신체·재산 기타 공익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한 경우 등과 같이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경우에 해당하여야 하고, 둘째 언론기관이 불법 감청·녹음 등의 결과물을 취득할 때 위법한 방법을 사용하거나 적극적·주도적으로 관여하여서는 아니 되며, 셋째 보도가 불법 감청·녹음 등의 사실을 고발하거나 비상한 공적 관심사항을 알리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부분에 한정되는 등 통신비밀의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넷째 언론이 그 내용을 보도함으로써 얻어지는 이익 및 가치가 통신비밀의 보호에 의하여 달성되는 이익 및 가치를 초과하여야 한다.


여기서 이익의 비교·형량은, 불법 감청·녹음된 타인 간의 통신 또는 대화가 이루어진 경위와 목적, 통신 또는 대화의 내용, 통신 또는 대화 당사자의 지위 내지 공적 인물로서의 성격, 불법 감청·녹음 등의 주체와 그러한 행위의 동기 및 경위, 언론기관이 불법 감청·녹음 등의 결과물을 취득하게 된 경위와 보도의 목적, 보도의 내용 및 보도로 인하여 침해되는 이익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정하여야 한다.


 다. 위와 같은 사실관계와 법리에 비추어 방송사 기자인 피고인 1의 이 사건 통신비밀 공개행위가 형법 제20조 소정의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는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하여 살펴본다.


첫째, 이 사건 도청자료는 국가기관이 자신들의 대화를 공론화시키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던 사인들 사이에 은밀히 이루어진 대화를 불법으로 녹음한 것이다. 그런데 위 피고인이 이 사건 도청자료를 입수하고 그 성문분석을 통해 원본임을 확인하는 한편, 그 출처에 대한 추적과 그 내용의 보도에 관한 법률자문 등을 통해 그 녹음과정 및 실명공개의 불법성을 확인하고도 그 수록 내용을 실명으로 보도하기까지의 제반 경위와 사정에 비추어 보면, 우선 위 피고인이나 문화방송이 국가기관에 의하여 불법 녹음이 저질러졌다는 사실 자체를 고발하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이 사건 도청자료에 담겨 있던 대화 내용을 공개한 것이 아니라, 그 대화의 당사자나 내용 등이 공중의 관심을 끌만한 사안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에 공개를 한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굴지의 재벌그룹 경영진과 유력 중앙일간지 사장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자금을 지원하는 문제나 정치인과 검찰 고위관계자에게 이른바 추석 떡값을 지원하는 문제 등을 논의하였다는 것은 그 진위 여부를 떠나 논의 사실 자체만으로도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사회성을 갖춘 공적인 관심사항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위 대화의 내용은 앞으로 제공할 정치자금 내지 추석 떡값을 상의한 것이지 실제로 정치자금 등을 제공하였다는 것이 아닐 뿐더러, 이 사건 보도가 행하여진 시점에서 보면 위 대화는 이미 약 8년 전의 일로서 그 내용이 보도 당시의 정치질서 전개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고, 제15대 대통령 선거 당시 기업들의 정치자금 제공에 관하여는 이 사건 보도 이전에 이미 수사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위 대화 내용의 진실 여부의 확인 등을 위한 심층·기획 취재를 통해 밝혀진 사실 및 그 불법 녹음 사실을 보도하여 각 행위의 불법성에 대한 여론을 환기함으로써 장차 그와 유사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그러한 사실확인 작업도 없이 곧바로 불법 녹음된 대화 내용 자체를 실명과 함께 그대로 공개하여야 할 만큼 위 대화 내용이 ‘공익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한 경우’로서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둘째, 피고인이 이 사건 도청자료가 불법 녹음이라는 범죄행위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녹음테이프를 입수하기 위하여 미국으로 건너가 녹음테이프의 소지인을 만나 취재 사례비 명목의 돈으로 1,000달러를 제공하고 앞으로 1만달러를 추가로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단순히 국가기관에 의한 불법 녹음의 범행을 고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불법 녹음된 대화의 당사자나 내용의 공적 관심도에 착안하여 그 내용을 공개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그 자료의 취득에 적극적·주도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셋째, 피고인이나 문화방송은 국가기관이 재벌 경영진과 유력 언론사 사장 사이의 사적 대화를 불법 녹음한 일이 있었다는 것과 그 대화의 주요 내용을 비실명 요약 보도하는 것만으로도 국가기관의 조직적인 불법 녹음 사실 및 재계와 언론, 정치권 등의 유착관계를 고발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화 당사자 등의 실명과 대화의 상세한 내용까지 그대로 공개함으로써 그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을 일탈하였다. 더욱이 이 사건 보도가 나가기 전에 법원이 이 사건 도청자료의 전면적인 방송 금지가 아닌 녹음테이프 원음의 직접 방송, 녹음테이프에 나타난 대화 내용의 인용 및 실명의 거론을 금지하는 내용의 가처분결정을 하였는바, 그 취지는 이 사건 도청자료와 관련된 내용의 보도는 허용하되 대화 당사자들에 대한 통신비밀의 침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실명의 거론이나 구체적인 대화 내용의 보도를 금지한 것이다. 이처럼 법원이 서로 상충하는 통신의 비밀과 언론의 자유가 조화를 이루면서 최대한 충실하게 보장될 수 있도록 상당한 방법을 제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이나 문화방송이 이를 따르지 아니하고 대화 당사자들의 실명과 구체적인 대화 내용을 그대로 공개한 행위는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을 결여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넷째, 이 사건 보도가 국가기관의 조직적인 불법 녹음행위를 폭로하고 아울러 재계와 언론, 정치권 등의 유착관계를 고발하여 공공의 정보에 대한 관심을 충족시켜 주고 향후 유사한 사태의 재발을 방지한다는 점에서 공익적인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앞에서 본 것처럼 이와 같은 공익적 효과는 비실명 요약보도의 형태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 대화의 내용이 이를 공개하지 아니하면 공익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한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도 어려운 이상, 이 사건 대화 당사자들에 대하여 그 실명과 구체적인 대화 내용의 공개로 인한 불이익의 감수를 요구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또한 이 사건 대화 당사자들이 비록 국민의 경제적·사회적 생활 등에 영향을 미치는 소위 공적 인물로서 통상인에 비하여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제한된다고 하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개인 간의 대화가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불법 감청 내지 녹음되고 공개될 것이라는 염려 없이 대화를 할 수 있는 권리까지 쉽게 제한할 수는 없다. 이상과 같은 사정에 앞서 본 이 사건 대화가 불법 녹음된 경위, 위 피고인이 이 사건 도청자료를 취득하게 된 경위, 이 사건 보도의 목적과 내용, 방법 등 이 사건 보도와 관련된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보도에 의하여 얻어지는 이익 및 가치가 통신비밀이 유지됨으로써 얻어지는 이익 및 가치보다 결코 우월하다고 볼 수 없다.


결국 위 피고인이 이 사건 도청자료를 공개한 행위는 형법 제20조 소정의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할 것이다. 만약 이러한 행위가 정당행위로서 허용된다고 한다면 장차 국가기관 등이 사인 간의 통신이나 대화를 불법 감청·녹음한 후 소기의 목적에 부합하는 자료를 취사선택하여 언론기관 등과 같은 제3자를 통하여 그 내용을 공개하는 상황에 이르더라도 사실상 이를 막을 도리가 없게 된다.


같은 취지에서 원심이 위 피고인의 이 사건 통신비밀 공개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정당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4. 반대의견 정리 (대법관 5인 의견)


 가. 언론의 자유는 개인이 언론활동을 통하여 자기의 인격을 형성하는 개인적 가치인 자기실현의 수단임과 동시에 사회구성원으로서 평등한 배려와 존중을 기본원리로 공생·공존관계를 유지하고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사회적 가치인 자기통치를 실현하는 수단이 되는 핵심적 기본권이다.


언론기관의 통신비밀 보도행위의 위법성 여부를 둘러싸고 우열관계를 가리기 어려운 기본권인 통신의 비밀 보호와 언론의 자유가 서로 충돌하는 경우에는 추상적인 이익형량에 의하여 양자택일식으로 어느 하나의 기본권만을 쉽게 선택하고 나머지를 희생시켜서는 안 되며, 충돌하는 기본권이 모두 최대한 실현될 수 있는 조화점을 찾도록 노력하되 개별 사안에서 언론의 자유로 얻어지는 이익 및 가치와 통신의 비밀 보호에 의하여 달성되는 이익 및 가치를 형량하여 규제의 폭과 방법을 정하고 그에 따라 최종적으로 보도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이익형량을 함에 있어서는 통신비밀의 취득과정, 보도의 목적과 경위, 보도에 의하여 공개되는 통신비밀의 내용, 보도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나. 불법 감청·녹음 등에 관여하지 아니한 언론기관이 이를 보도하여 공개하는 경우에, ① 그 보도를 통하여 공개되는 통신비밀의 내용이 중대한 공공의 이익과 관련되어 공중의 정당한 관심과 여론의 형성을 요구할 만한 중요성을 갖고 있고, ② 언론기관이 범죄행위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위법한 방법에 의하여 통신비밀을 취득한 경우에 해당하지 아니하며, ③ 보도의 방법에서도 공적 관심사항의 범위에 한정함으로써 그 상당성을 잃지 않는 등 그 내용을 보도하여 얻어지는 이익 및 가치가 통신비밀의 보호에 의하여 달성되는 이익 및 가치를 초과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는 형법 제20조 소정의 정당행위로서 이를 처벌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여기서 어떠한 경우에 통신비밀의 내용이 그 공개가 허용되어야 하는 중대한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는 일률적으로 정할 수 없고, 그 내용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과 파급효과, 통신 또는 대화 당사자의 사회적 지위·활동 내지 공적 인물로서의 성격 여부, 그 공개로 인하여 얻게 되는 공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정하여야 할 것이다.


다. 위 사안에서, ① 도청자료에 담겨 있던 대화 내용은 199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여야 대통령후보 진영에 대한 대기업의 정치자금 지원 문제와 정치인 및 검찰 고위관계자에 대한 이른바 추석 떡값 등의 지원 문제로서 매우 중대한 공공의 이익과 관련되어 있고, ② 위 대화가 보도 시점으로부터 약 8년 전에 이루어졌으나 재계와 정치권 등의 유착관계를 근절할 법적·제도적 장치가 확립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정치 환경 등을 고려할 때 시의성이 없다고 할 수 없으며, ③ 피고인이 위 도청자료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위법한 방법을 사용하지 아니하였고, ④ 보도 내용도 중대한 공공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만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⑤ 보도 과정에서 대화 당사자 등의 실명이 공개되기는 하였으나 대화 내용의 중대성이나 대화 당사자 등의 공적 인물로서의 성격상 전체적으로 보도 방법이 상당성을 결여하였다고 볼 수 없고, ⑥ 위 불법 녹음의 주체 및 경위, 피고인이 위 도청자료를 취득하게 된 과정, 보도에 이르게 된 경위와 보도의 목적·방법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볼 때 위 보도에 의하여 얻어지는 이익이 통신의 비밀이 유지됨으로써 얻어지는 이익보다 우월하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인의 위 보도행위는 형법 제20조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정당행위에 해당한다.

 

5. 검 토


유명한 ‘안기부 X파일 보도사건’에 관한 것으로 언론의 자유와 통신비밀의 보호가 충돌하는 경우의 문제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불법 감청 · 녹음 등에 관여하지 아니한 언론기관이 그 사정을 알면서 이를 보도하여 공개한 경우에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로 인정될 수 있느냐와 관련하여 다수의견은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서 위반되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는 범죄가 성립하고 예외적으로 여러 요건에 해당되는 경우에 한하여 정당행위가 인정된다는 입장이고, 소수의견은 언론의 자유로 얻어지는 이익 및 가치와 통신의 비밀 보호에 의하여 달성되는 이익 및 가치를 형량하여 정당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리하여 위 사건에서 다수의견은 피고인들의 보도행위에는 정당행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소수의견은 그 반대의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창현 교수는...
연세대 법대 졸업, 서울북부·제천·부산·수원지검 검사
법무법인 세인 대표변호사
이용호 게이트 특검 특별수사관, 아주대 법대 교수, 사법연수원 외래교수(형사변호사실무),
사법시험 3차 시험위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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