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놓아 울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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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놓아 울 그 날까지
  • 법률저널 편집부
  • 승인 2003.03.12 1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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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철
46회행시합격·재경직·서울대행정대학원 在


I. 들어가며 : 아버지 앞에 이 글과 합격증서를 바칩니다


오늘 합격증서를 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전 맘이 무겁고 텅빈 느낌입니다

2차 시험에 합격했다는 행정자치부의 합격자 명단을 보시고 엉엉 우시던 아버지가 지금은 저희가족의 곁에 안 계시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하늘 나라 어디에선가 기뻐하시고 계실 아버지께 이 글과 합격증서를 바칩니다.


II. 수험생활


4년(행정고시 43회부터 46회까지)이 넘는 저의 수험생활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저의 글이 공부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1순환 (43회-44회)


고시와 거리가 멀었던 제가 고시에 뛰어들었던 것은 공익시절(성북구청 주차단속) 만났던 상진형(외무고시합격), 정진형(사시 공부중), 사시 공부를 하고 있던 성신(고등학교 동창)의 권유와 제대 후 목표를 세우고 무엇인가를 이루어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 가장 큰 문제는 정보의 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시잡지 합격기에 적혀있던 책과 그 당시 공부하고 있던 친구(정관)의 조언을 듣고 책을 구입했습니다. 그 때 샀던 책이 이준구 선생님의 미시경제학과 재정학이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고시에 별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과목이 불안하였는데, 영어가 가장 불안하였습니다. 전 외고출신임도 불구하고, 영어를 못 해서 사람들은 저를 애고생이라고 놀리기도 했습니다. 원래 1차를 한 번 정도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수월하게 붙었습니다(43회) 이것이 저의 불행(?)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릅니다

2차 과목 수업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신림동 강의 위주로 공부를 했으며(그때는 완전히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와룡헌(성균관대 행정고시반)의 교수님 특강이 있으면 가서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공이 대단하신 교수님의 강평이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여건이 되시는 분들은 교수님의 강의 내지 강평을 듣을 것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44회(2000년)가 있던 4월까지는 무식하게 공부를 했습니다.

그 당시 같이 밥을 먹던 준호(현행정자치부 사무관)는 이런 저를 보고 "탱크"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습니다. 학교와 학원에서도 성적이 괜찮게 나와서 1순환에 붙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사건이 시험 100전에 발생하였습니다.

6년간 사귀던 여자친구와의 이별이었습니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50일동안, 공부도 안 하고, 하루에 한 끼도 안 먹고 매일 한숨만 쉬던 저를 보시고 참다 못하신 어머니는 울면서 너 같은 아들 필요 없다고 집에서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집에서 나와, 신림동 고시원에서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내가 부모님한테 몹쓸 일을 했구나, 정신차리자!. 시험은 50일 밖에 안 남았다.' 그러나, 의자에 앉을 힘조차 없었습니다. 그 당시 50일동안 몸무게가 10킬로나 빠졌습니다. 남은 50일간은 사투에 가까운 싸움이었습니다. 50일 동안 링거를 7대 맞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두 달을 날렸지만, 비교적 시험은 무난히 본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0.5점차의 불합격이었습니다. 정말 아쉬웠습니다. 여자친구가 참으로 원망스러웠습니다


(2) 1.5순환(45회)


동차합격을 목표로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작년과 같은 불행한 일만 없다면 올해는 붙을거라고 부모님, 친구, 선배, 후배, 저조차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친 교만이었습니다

2000년 12월까진 2차 선택과목 위주로 공부를 했고, 2001년 1월부터 1차 공부를 했습니다.

1차 공부량은 많지 않았으나, 비교적 괜찮은 성적으로 붙었습니다(커트라인 73.5였는데, 80점이 넘었습니다)

1차 시험을 보고 한 100일 동안만 죽었다는 생각으로 신림동으로 다시 들어왔습니다. 학원에서 시험을 보면서 서브노트를 만들면서 정리했습니다. 공부량은 제가 공부했던 기간 중에 가장 많았던 것으로 생각되어집니다. 하루에 13-14시간 공부한 날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불의의 일격을 회계학에서 맞았습니다

44회때 회계학은 60점이 넘어서 이론위주로 공부를 했는데, 공부하지도 않았던 분개와 계산 문제가 나왔습니다. 결과는 불합격.

아마도 교만했던 저에게 겸손해지라는 하나님의 가르침이었던 것 같습니다


(3) 2순환(46회)

2001년 12월까진 고시반 특강을 듣긴 했으나, 정말 공부하기가 싫었습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 신림동 생활이 되기를 바라며, 신림동에 12월 30일 방을 잡았습니다

2002년 3월까지 학원GS 강의를 들으면서 서브를 재정비했습니다.

2번 떨어지고 나니, 자신감이 급격히 떨어졌고, 나이를 먹어서인지 기억력이 점점 떨어져 갔습니다. 불안이 밀려왔습니다. 그 때 내가 찾아간 곳이 교회였습니다.

교회가서 기도를 하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그러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공부도 잘 되는 것이었습니다. 조용기, 명성훈 목사님 설교에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또한, 고시 공부에 찌든 저에게 새로운 활력을 준 것은 행정대학원 생활이었습니다.

골방에 들어 앉아 혼자만 생활하던 저에게 그들과의 대화는 많은 힘을 주었습니다.

3월 이후에는, 고시반 친구들(의택, 정주, 상훈, 경일)과 학교, 학원 모의고사를 본 후 답안지를 돌려 보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들과 나누었던 공부 외의 많은 얘기들은 고시의 추억거리로 남아 있습니다. 마무리는 그 동안 만들었던 서브와 모의고사 강평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했습니다. 시험을 보름 정도 남기고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시험 기간 중에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것이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는 것 중 하나입니다. 경험상으로 볼 때, 시험 기간 중에 잠을 충분히 자는 것이 머리 회전에 좋은 것 같습니다.

시험은 특별히 망친 것은 없어 보였으나, 2번의 양치기 노릇을 했기에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부모님, 친구들에게조차 시험에 대해서 일체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합격이었습니다. 부모님께 30 평생에 큰 효도를 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큰 불행이 다가왔습니다. 아버님이 금년 1월 3일에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면서 살고 싶었는데 ....

지금 저는 제 생애 가장 어려운 시기(정신적, 물질적)에 놓여 있습니다.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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