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소송법 제312조 1항 단서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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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소송법 제312조 1항 단서 유감
  • 서보학
  • 승인 2003.03.1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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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학
경희대 법대 교수

법무부가 마련한 형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의 국회상정이 반대여론에 부딪혀 새정부 출범 이후로 늦춰질 전망이다. 법개정의 주된 목적이 국민의 인권보장 강화였지만 변호인의 피의자신문참여를 법으로 보장한다는 것 외에는, 피의자 구속기간 연장, 참고인 강제구인제도 도입, 참고인의 허위진술 처벌 등 내용적으로는 사실상 수사권한을 강화시킨 것이어서 대법원, 변협, 국가인권위원회, 형사법학회 등이 반대의사를 표명한 것은 당연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충분한 논의와 의견수렴을 거쳐 진정으로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법개정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본고는 법개정의 필요성을 느끼는 또 하나의 토픽을 던지고자 한다. 바로 검사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문제이다. 형사소송법 제312조 1항 단서는 검사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를 성립의 진정과 진술의 특신상태가 인정되면 피고인의 법정부인에도 불구하고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 범행을 부인하는 법관면전진술보다 전문진술을 앞세워 피고인을 유죄로 판단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는 것이다. 비록 법조일원화가 주장된다고는 하나, 수사기관인 검사 앞에서의 진술을 법관면전진술보다 앞세울 수 있도록 한 제312조 1항 단서는, 피고인의 이익을 볼모로 지나치게 수사 및 재판의 편의를 지향한 것으로서 위헌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 헌법재판소는 '제312조 1항 단서는 피의자의 인권보호와 실체적 진실발견 및 재판의 신속한 진행 사이의 조화를 이루기 위한 것으로서 그 합리적 이유가 인정된다'는 이유로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적이 있다(헌재 1995.6.29, 93헌바45 전원재판부 다수의견 참조). 그러나 같은 판결에서 소수의견은 同조항 단서가 '소추기관인 검사에 의해 법관의 재판이 왜곡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고, 또한 수사기관인 검사로 하여금 자백확보에 주력하게 함으로써 헌법상의 고문금지, 불리한 진술거부권 등의 명문규정을 형해화할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로 위헌임을 밝히고 있다.

필자는 소수의견이 우리의 수사·재판현실을 정확히 직시한 것으로서 인권보호를 위해 타당한 견해라고 생각한다. 강압적인 밀실수사관행, 피의자·피고인을 공격하는 검사의 대립적 위치를 고려할 때 어떠한 경우에도 검사 앞 진술에 대해 법관면전진술과 동등한 또는 더 높은 증거자격과 신빙성을 부여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본다. 특히 우리 대법원이 검사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해 공판정에서 성립의 진정이 인정되면 특신상태는 반증이 없는 한 추정된다는 입장을 취하여 특신상태의 부존재에 대한 입증책임을 피고인에게 전가하고 있기 때문에(대판 1986.9.9, 86도1177 참조), 실무상 특신상태가 부인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앞의 헌법재판소판결의 소수의견도 특신상태가 없다는 이유로 증거능력이 부인된 예는 1995년까지 약 40년 동안 3-4건에 불과하다는 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특신상태가 인정된 검사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해 증명력을 부인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간다. 이러한 메카니즘에 따라서 일단 검사 앞에서 자백한 피고인은, 판사가 억울함을 풀어 줄 것이라는 기대 하에 법정에서 범행을 완강히 부인함에도 불구하고 거의 예외 없이 유죄로 판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헌법적 관점에서 볼 때에도, 수사단계에서 자백위주의 수사관행이 유지되어 피의자의 진술거부권 및 고문·가혹행위를 당하지 않을 권리가 침해당할 위험성이 매우 높고, 재판단계에서는 검사의 입증책임을 부당하게 덜어주고 열악한 위치에 처한 피고인을 차별하여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 또한 피고인의 법정진술 보다 전문진술을 앞세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공판정중심주의 및 구두변론주의를 침해하여 결국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헌법상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형사소송법의 대전제는 10명의 진범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1명의 억울한 범인을 만들지 않는 소극적 진실주의에 있다. 수사가 어려워지고 재판부담이 늘어난다고 해서, 제도적으로 인권침해적 수사관행을 조장하고 억울한 범인을 만들 수 있는 장치를 그냥 방치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인권보장을 위한 형사소송법의 개정이 논의되고 있는 이 때에 보다 예민한 인권감수성을 가지고 이 문제에 주목하여, 피고인의 법정부인에도 불구하고 검찰자백이 유죄의 증거로 사용되는 일이 없도록 법개정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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