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전쟁, 민주주의, 휴머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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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3.23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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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정치사상과 고대 정치철학은 다른가? (3)1)

신희섭 베리타스 법학원

지난 시간에는 근대 철학의 시기까지 이야기 했다. 이번시간에는 근대와 현대 철학과 종치철학과의 관계를 이야기 한다.

철학적 측면에서 볼 때 16세기의 자연과학의 발전은 의미심장하다. 자연과학의 발전은 인간이 이제 신의 영역이라고 믿고 있던 자연이 부여하는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였다. 인간은 이제 플라톤식의 개념으로 ‘제작자’가 되어서 자연이라고 하는 ‘질료’를 주무를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주체’와 ‘대상’의 관점에서 자연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주체는 이제 대상을 극복해가면서 더 나은 조건을 만들 수 있게 된다. 과거에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던 수동적인 인간에서 개혁적인 인간으로의 인식의 전환은 인간 역사를 받아들이던 것에서 만들어가는 것으로 변화시킨다. 인간이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과거보다는 더 나은 상태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에 대한 단계론적 인식 즉 계간처럼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간다는 사고방식으로 가져온다. 따라서 과거는 이제 부정되거나 극복될 대상이지 인간에게 진리의 가져다주는 보고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뉴튼이 아인슈타인에 의해서 부정되었듯이 과거 진리는 부정되게 된다.

인간의 지식의 축적과 그에 따른 인간의 발전이라는 것을 단계적이고 혁명적으로 보면서 이를 이론화 한 사람이 과학철학자인 토마스 쿤(T. Khun)이다. 쿤은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으로 어떤 과학적 지식과 가정들이 사회를 지배하는 주류이론으로서 ‘정상과학(normal science)’가 되고 이것이 더 이상 현상을 설명할 수 없는 단계가 될 때 패러다임으로서의 유용성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보면서 인간 지식의 발전을 계단식으로 그렸다.

헤겔의 변증법논리와 같이 인간의 지식의 단계적 발전을 상정하는 이런 진보적 관점은 과거 플라톤 시대의 본질론과의 이별을 의미한다. 본질론에 따르면 인간과 지식과 공동체는 근본적인 것이 있고 이는 변화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근대의 철학은 이를 부정한다. 계몽주의 관점과 실증주의 관점으로 전환 된 근대의 철학은 이제 무엇이 맞는지를 이성으로 입증하고 논리적 구조를 넘어 구체적인 현실로 검증해야 한다. 플라톤이 이야기한 이데아가 문제가 아니고 질료들의 구체적인 관계가 중요하게 된 것이다.

진보사상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진보 사상은 인간이 세상의 중심에 있고 중심에 있는 인간에 의해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과학의 도움을 받아서 세상이치를 알게 된다면 더 나은 경제활동을 가져올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실제로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을 통해 인류를 기아와 질병에서 구해내면서 17세기를 넘어서면서 인류의 인구를 자연증가율을 넘어서게 된다. 이런 위대한 인간의 업적은 사회제도들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고 그래서 근대프로젝트가 만들어진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와 민족국가를 구성하겠다는 근대 기획은 궁극적으로 인간 발전을 가져와서 인간완성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런 진보시대의 탄생은 어떻게 진보를 달성하고 시기를 앞당길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견해의 차이를 가져왔다. 개인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자유주의나 계급구조를 파괴함으로서 인간소외를 극복해보겠다는 사회주의나 지도자에 대한 믿음과 민족에 대한 열정이 세상을 바굴 것이라는 전체주의사상이나 모두 진보 사상의 자식들이다. 다만 이들은 아주 강렬하게 세상을 바꾸겠다는 계몽적인 사고로 자신들을 세상에 대한 구원자로서 자신의 위치에 올림으로서 이제 신의 영역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이런 구원자들 간의 논쟁은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체현된다.

현대 정치사상은 그래서 이데올로기의 영역이 되버렸다. 이제 과거 정치철학이 다루면 정치의 본질 공동체의 본질 권력의 본질과 인간의 본질은 어떻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인지와 어떤 동력이 더 중요한지 그리고 설명의 타당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를 두고 다투게 되었다. 정치철학과 정치사상이 구분지어지게 되었다. 게다가 정치사상은 계몽에 대한 자신들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현실정치에서 그 제도들을 구현한다. 시민사회를 만들고 시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를 뽑아내고 인민의 의견을 결집하기 위한 정당을 구축하는 일련의 제도적 실험은 이제 과연 어느 이론이 타당한 이론인가를 구체적으로 겨루게 되는 경합장으로 인간과 제도를 내몰았다. 그리고 그 실험에서 사회주의국가들과 전체주의 국가들은 ‘열전(hot war)'과 ’냉전(cold war)‘에 의해 붕괴하였다. 이 시점에 후쿠야마가 자유민주주의 만세를 외친 것은 학자로서 굉장히 빠른 몸놀림을 보여준 것이다.

인간이 주체가 되고 자연이 대상이 된 근대는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과연 주인이 맞는가의 문제제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과연 우리는 자연을 대상을 볼 수 있는가와 자연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는가라는 고민에서 현대인들은 자유롭게 “그렇다!” 라고 답하지 못한다. 원자를 발견하고 이를 가공해서 엄청난 폭발력을 만들었고 이것을 이데올로기의 대립구조에 밀어넣었던 인간들은 어쩌면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1962년 쿠바에 소련제 l사일이 배달되던 때에 들었던 것은 그래도 행운인지 모른다. 공멸의 위험을 피하면서도 베트남에서 왜 전쟁을 하는지 그리고 민주주의 국가가 어떻게 국민을 기만할 수 있으며 닉슨과 같은 지도자 어떻게 불법으로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는지 등은 우리 인간에 대한 신뢰와 희망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요구했다.

현대 정치사상은 이러한 기존 사고들의 재구성과 비판적 검토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불확실성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리고 이 불확실성은 포스트 모더니즘 그리고 좀 더 넓게 후기 실증주의의 견지에서 설명되어지고 있다. 이 포스트한 사상체계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쩌면 우리 인간이 발전하지 못하고 과거처럼 역사적 순환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게 한 것이다. 또한 인간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우리 인간의 이성이 가지는 한계와 그에 따른 변화와 발전에 대한 회의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다시 시작할 때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철학과 정치철학과 정치사상은 무엇이 다른가?  철학은 본질을 다루고 정치철학은 정치에 관한 본질 즉 공동체와 국가를 다룬다. 정치사상은 본질보다는 “어떻게?”라는 문제를 다룬다. 이렇게 구분되는 철학, 정치철학, 정치사상도 사실은 같은 틀 안에서 움직인다. 인간이 무엇이 본질인지를 아고 이속에서 인간자신과 자신의 공동체를 고민하고 이것을 어떻게 나아지게 할 것인가를 주도면밀하게 숙고한다는 점에 이들은 한 틀에 있는 것이다.  

각주)-----------------
이 칼럼은 111회 칼럼이다. 정치학의 사상부분에 대한 리마인드를 위해서 지난 칼럼을 다시 제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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