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전쟁, 민주주의, 휴머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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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전쟁, 민주주의, 휴머니티
  • 법률저널
  • 승인 2011.11.1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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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의 사회

신희섭 베리타스

길거리를 걷는 이들을 보라. 2명 중의 한명은 핸드폰을 보고 걷고 있다. 지금의 시대를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핸드폰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핸드폰으로 음악을 듣고 메시지를 전달하고 통화를 하고 동영상을 보고 인터넷을 한다. 게다가 핸드폰의 발전 속도는 놀라운 지경이다. 핸드폰시장이 크기 때문에 기업들이 집중적으로 투자를 해서 1년이 채 안되어 새로운 유형의 핸드폰이 나온다.

이렇게 핸드폰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두 가지 측면을 가진다. 나이가 적을수록 핸드폰에 적응이 빠르기 때문에 새로운 핸드폰과 새로운 기능에 대한 수요가 있다. 반면에 연령대가 높아지면 새로운 변화에 쉽게 적응하기도 어렵고 그럴 필요도 크게 못 느낀다. 따라서 변화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정말 ‘스마트’폰의 시대이다. 누군가가 스마트폰이 왜 스마트한지 아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폰이 스마트해서가 아니라 사용자를 스마트한 인간으로 만들기 때문에 스마트 폰이라고 했다. 사용하는 사람이 스마트하지 않으면 전화기를 스마트하게 다루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즉 ‘스마트’폰은 스마트한 인간을 만드는 폰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전화기를 하나 사면 매뉴얼이 거의 책에 가깝다. 그렇지 않아도 얻어야 할 정보가 많은데 전화기마저 너무 큰 정보를 원한다.

사람을 스마트하게 만든다는 ‘스마트’폰이 많은 것을 변화시키고 있다. 얼마 전 모 대학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여학생이 한 명 숨졌다. 사고가 나기 어려운 장소에서 학내셔틀버스가 이 학생을 치고 지나갔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운전기사도 전화기를 이용하고 있어서 학생이 지나가는 것을 못 보았고 학생도 전화기를 이용하느라고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못 보았다고 한다. 두 사람 중 한사람만이라도 전화기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았다던 발생하지 않을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찰나의 순간에’ 너무 아까운 생명이 우리 곁을 떠나가 버렸다.

거리를 보고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폰에 빠져 걷고 있다. 음악을 들으면서 폰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들은 저래도 될까 하는 걱정을 불러온다. 들리지도 않고 보지도 않으며 위험천만한 거리를 걷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도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치면서 운전을 한다. 수많은 찰나의 순간들이 지나친다. 오늘은  운이 좋아서 사고 없이 지날지 모르지만 언제 그 찰나의 순간이 닥칠지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위험한 사회를 더 위험하게 만든다.

핸드폰이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미친 영향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핸드폰이 대중화되기 전인 시대에는 약속을 잡으면 반드시 그 시간에 그 자리에 가야 했다. 그래서 약속장소와 시간이 구체화되었고 혹시 약속을 지키지 못할 일이 생기면 미리 연락을 해야 했다. 그런데 핸드폰은 약속장소와 시간의 구체성을 떨뜨린다. 그 근처에 가서 전화를 하면 되기 때문에 약속은 모호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핸드폰으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리도 줄었다. 자주 문자와 전화를 하게 되었고 사람들이 가지는 외로움의 상당부분을 잊게 해주었다. 게다가 통신과정에서 많은 정보들을 공유하게 되면서 인간의 판단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많은 일들을 핸드폰으로 처리하면서 정보의 이용을 개인화하였고 저렴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핸드폰은 이제 일상의 한부분이 되었다.

그러나 모든 사물이 그렇듯 앞면이 있으면 뒷면도 있는 법이다. 핸드폰은 개인에게 수없이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시간의 무료함을 달래주지만 사회적 차원에서 볼 때 사용자를 지나치게 개인화시킨다. 특히 스마트폰의 시대가 되면서 개인들은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뭉친다. 스마트폰 사용자 네 사람이 만나서 서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이용하면서 식사를 하고 성의 없는 대화를 한다. 정작 실제 만난 사람과는 소홀하게 되면서 끊임없이 들어오는 정보와 문자에 답을 하느라고 분주하다. 이것이 지나치면 스마트폰의 노예가 된다. 폰이 없으면 불안하고 왠지 무슨 일이 생길 것 같고.

스마트폰이 전화기속으로 개인들을 빨아들이면 사람이 만나는 장소에서 사람이 아니라 스마트폰들이 만나게 된다. 조금 과도하게 해석하자면 폰 속의 세상에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폰을 중심으로 서로 위로 받는다고 할까.

그런데 왜 이 문제를 이렇게 키워서 설명할까? 스마트폰에 집중한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현상을 하나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나 아렌트가 이야기한 사사화(私事化 :privatization)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녀가 이 개념을 이야기 했을 때 그녀의 관심은 “왜 사람들이 전체주의에 빠지게 되는가?”이었다. 히틀러치하의 독일인들을 보면서 왜 개인들이 개인의 주체성을 포기하고 집단에 자신을 맡기는 것일까를 고민하면서 공화주의자인 아렌트는 “개인들이 소극적인 자유를 찾아 친밀성의 내면으로 도피하면서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고 탈사회화되는 것”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복잡한 세상에서 오로지 자신의 문제에 매달리면서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를 무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사화라는 개인화가 진행되면 공동체의 가치는 무너지게 된다. 개인적 자유만을 찾아다니는 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것이 파시즘이다. 정치에 그리고 사회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 개인적 만족감을 주면서 끊임없이 사회화를 거부하게 하고 그래서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정치적 가치를 망각하게 만들면서 독일인들은 유태인학살을 통해서 자신들이 가진 공포심과 불만을 개인적으로 해결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개인적 만족감이 사회적 수준에서 체계적 약탈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아렌트의 사사화에서 중요한 것을 배울 수 있다. 개인화의 진행으로 누군가는 이득을 본다는 것이다. 독일인들이 자신들의 개인적인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집단적인 의식에 빠져있을 때 히틀러는 그 속에서 인형처럼 의식이 거세된 독일인들을 조종하면서 권력을 행사했다. 그리고 독일인 개인들에게 만족감과 공포심을 끊임없이 부여했다. 그래서 사사화라는 개인화는 권력을 인민들 자신의 손에서 조종자의 손으로 넘겨준 것이다. 즉 통제하는 주체적 개인에서 통제당하는 대상으로 스스로 넘어가버린 것이다. 개인들의 주체성 상실과 권력 상실은 히틀러라는 또 다른 권력의 집중을 가져왔다.

심각한 개인화를 경험하고 있는 이 시대도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정치권은 이런 현상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한나라당에서는 SNS를 금지시키는 법을 만들겠다고 한다. 핸드폰시대의 의사소통통로를 막아서 진보 쪽으로 쏠리는 표심을 원천봉쇄하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핸드폰의 시대이다. 그리고 핸드폰을 통해서 개인들이 연결되어 있고 그것이 시대의 흐름이다. 그런데 투표율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여 핸드폰시대를 뒤집어 보려는 발상은 상상을 초월하는 반동(reactionary)적인 사고방식이다.

지금 문제의 본질은 핸드폰과 SNS가 아니다. 이것은 도구이다. 이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도구 속에 너무 들어가 버렸다는 것을 보아야한다. 개인들이 핸드폰에 탐닉하면서 이미지 중심의 시대는 더욱 이미지 중심의 시대로 가게 된 것이다. 특히 핸드폰을 통해서 짧게 전달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개인들에게 여과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개인들이 지나치게 개인화되면서 이렇게 들어오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과 사회를 통해서 걸러내는 여과장치를 무시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들어온 이야기를 믿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믿게 된 이야기는 SNS를 타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되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화된 폰의 세상 속에서 믿게 된 이야기들이 전달되면서 하나의 전설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돌아가는 세상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은 사람들의 사사화속에서 자신들의 권력을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비밀스럽게 자신들의 권력을 행사한다. 주체의 상실이 가져온 또 다른 주체의 부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현상의 본질에는 결국 권력이 있다. 핸드폰의 사회를 잘 꿰뚫어 보고 있는 권력자들의 정치가 있다.

SNS의 금지는 이 문제의 답이 아니다. 답은 개인의 주체로의 복귀에 있고 그 주체의 복귀를 사회가 어떻게 이루어 줄 수 있게 하느냐에 있다. 사사화의 해법을 우리는 공공성과 공공성을 강조하는 공동체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적 공화주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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