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가니’와 양형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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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가니’와 양형의 문제
  • 방희선
  • 승인 2011.10.28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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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희선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변호사

 

영화 ‘도가니’의 후폭풍이 거세다. 분노와 규탄의 광풍이 몰아치며 또 한바탕 사회적 공분을 쏟아 놓는다. 사안의 내용에 대한 비판은 물론 처리과정과 결과에 대한 비난도 드세다. 사실은 이미 오래 전 일이고, 그때도 사회 일각의 문제 제기가 있었건만 뒤늦게 재조명되어 새삼 이처럼 세상을 뒤흔드는 형국이다. 이런 현상은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번번이 목격되는 일로서 바람직한 공감의 측면도 있으나, 다른 한 편으로는 찰나적 분출의 한계와 아쉬움을 남기는 면도 있다.


과거 유사한 사건의 경우에도 그때마다 사회가 들끓는 충격과 분노가 분출되었음에도 계속 이런 사태가 생기는 건 우리의 사법제도와 양형의 문제라는 근본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의식수준은 이런 현상적 인식에만 머물러 있을 뿐 근본원인에 대한 진단과 논의에는 다가가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근래 세상을 공분케 한 여러 사건들의 경우를 보면서 왜 그런 결과가 계속 반복되는지 짚어 볼 필요가 있다. 가해자와 범행을 규탄하거나 사법기관의 미흡한 처리를 비판하고 법조인의 윤리를 탓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일인가.


그런 문제를 다루는 우리의 시스템과 제도 기능에 근본 원인이 있는 건 아닌지 차분히 파고드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한 가지 중요한 법 제도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재판과 양형을 추상적인 사법의 고유영역이라는 식의 도식적 관념을 고수한 채 다른 한편으로 양형의 결과를 탓하는 건 지극히 비현실적인 자기모순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범죄와 형벌을 정하는 건 국민의 대표자인 의회가 제정한 법률의 소관이며, 따라서 국민의 의사인 법률을 충실히 적용하는 게 양형이요, 재판이라는 과정임을 새롭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사법에 관한 맹목적인 전통관념 하에 양형판단은 전적으로 법원의 법관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이율배반적 사고를 유지해서는 영원히 풀지 못할 자기모순의 혼돈에 빠지고 말 뿐이다. 오히려 주권자인 국민의 법의식과 사고가 재판과 양형에 그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입법의 가교를 통한 국민참여형 재판이 확대되고, 국민(즉, 법)이 바라는 보다 구체적 형벌기준을 법원이 반영하도록 제도화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배심으로 표현되는 국민참여형 사법이며, 올바른 형벌부과를 위한 양형기준제의 도입이라는 원인요법인 셈이다.


국민과 유리된 사법, 사회와 단절된 채 고립된 성처럼 관료제의 틀 안에 갇혀 있는 판사들에게 변화하는 국민감정에 맞는 재판을 바라는 것이야 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의 궤변이 아닌가. 실상 이러한 괴리를 없애기 위해 많은 선진국에서 이미 도입 시행하고 있는 양형기준제를 우리만 모른 채 어둠 속을 헤매며 더듬거리고 있는 꼴이 아닌가.


사회를 뒤흔드는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분노와 질타를 쏟아 내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이 매번 같은 현상이 되풀이 되는 데는 이런 근본요인이 있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이젠 우리 모두 문제의 근원을 짚어 보고 올바른 진단으로 본질적 해법을 찾아가는 의식의 전환이 있기를 바란다.


이를 계기로 올바른 사법제도와 양형기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과 국민적 논의가 마련되어야 함을 지적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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