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현 교수의 형사교실] 재심사유로서의 증거의 신규성과 명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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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현 교수의 형사교실] 재심사유로서의 증거의 신규성과 명백성
  • 법률저널
  • 승인 2011.10.2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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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2009.7.16.자 2005모472 전원합의체결정

이창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 사건 개요

가. 피고인은 흉기 그밖의 위험한 물건을 지닌 채 피해자(여, 21세)를 강간한 특수강간 등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4조 제1항)로 공소제기가 되어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그 판결이 확정되었다.

나. 위 판결의 사실인정에 기초가 된 증거들 중에 범인의 침입경로인 피해자의 주택 난간과 배관에서 채취된 지문이 피고인의 지문과 일치하고 피고인의 주거에서 범행에 사용된 것과 같은 종류의 도구가 발견된 사실 등이 피고인에게 유죄가 인정된 유력한 증거가 된 한편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장의 감정의뢰회보’에 의하면 피해자의 체내에서 채취한 가검물에서 정액 양성반응이 나타났을 뿐 정자는 검출되지 않았다고 하며, 이와 관련된 ‘검찰주사의 수사보고서’에는 위 감정의뢰회보에 비추어 범인은 무정자증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다. 이후 피고인은 위와 같이 확정된 유죄판결은 범인이 무정자증임을 전제로 하고 있으나 자신은 무정자증이 아니라고 하면서 유죄판결 확정 이후의 정액검사결과를 증거로 제출하면서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였다.

라. 이에 대해 법원은 위 정액검사결과는 재심대상판결의 소송절차에서 제출할 수 없었던 증거라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라고 보기 어려워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의 재심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재심청구 기각결정을 하였고, 피고인은 대법원에 재항고를 하게 되었다. 

2. 쟁 점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의 재심사유인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와 관련하여 그 증거가 법원뿐만 아니라 재심을 청구한 피고인에게도 새로워야 하는지 여부와 ‘무죄 등을 인정할 명백한 증거’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 함께 평가하여야 할 기존 증거의 범위

3. 판결이유 정리

가. 증거의 신규성

(1) 다수의견

(가)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에서 정한 무죄 등을 인정할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란 재심대상이 되는 확정판결의 소송절차에서 발견되지 못하였거나 또는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제출할 수 없었던 증거를 새로 발견하였거나 비로소 제출할 수 있게 된 때를 말한다.

(나) 증거의 신규성을 누구를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에 대하여 위 조항이 그 범위를 제한하고 있지 않으므로 그 대상을 법원으로 한정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심은 당해 심급에서 또는 상소를 통한 신중한 사실심리를 거쳐 확정된 사실관계를 재심사하는 예외적인 비상구제절차이므로 피고인이 판결확정 전 소송절차에서 제출할 수 있었던 증거까지 거기에 포함된다고 보게 되면 판결의 확정력이 피고인이 선택한 증거제출시기에 따라 손쉽게 부인될 수 있게 되어 형사재판의 법적 안정성을 해치고, 헌법이 대법원을 최종심으로 규정한 취지에 반하여 제4심으로서의 재심을 허용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다) 따라서 피고인이 재심을 청구한 경우 재심대상이 되는 확정판결의 소송절차 중에 그러한 증거를 제출하지 못한 데 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그 증거는 위 조항에서의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에서 제외된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다.

(2) 별개의견 (대법관 6인 의견)

(가)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는 그 문언상 ‘누구에 의하여’ 새로 발견된 것이어야 하는지 그 범위를 제한하지 않고 있는데, 다수의견과 같이 그 증거가 법원이 새로 발견하여 알게 된 것임과 동시에 재심을 청구한 피고인에 의하여도 새로 발견된 것이어야 한다고 보는 것은 피고인에게 명백히 불리한 해석에 해당하며, 법적 안정성의 측면만을 강조하여 위 조항에 정한 새로운 증거의 의미를 제한 해석하는 것은 위 조항의 규정 취지를 제대로 반영한 것이 아니다.

(나) 또한 다수의견이 예정하는 피고인의 귀책사유 때문에 신규성이 부정된다는 이유로 재심사유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면 정의의 관념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법원이 종전 소송절차에서 인식하였는지 여부만을 기준으로 하여 새로운 증거인지 여부를 판단하고 그에 의하여 판결확정 후에도 사실인정의 문제에 한하여 이를 재론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법원을 최종심으로 규정한 헌법의 취지에 반한다고 할 수는 없다.

(다) 따라서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에서 무죄 등을 인정할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에 해당하는지는 재심을 청구하는 피고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재심 개시 여부를 심사하는 법원이 새로이 발견하여 알게 된 것인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나. 증거의 명백성

(1) 다수의견

(가)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에 정한 ‘무죄 등을 인정할 명백한 증거’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법원으로서는 새로 발견된 증거만을 독립적 · 고립적으로 고찰하여 그 증거가치만으로 재심의 개시 여부를 판단할 것이 아니라, 재심대상이 되는 확정판결을 선고한 법원이 사실인정의 기초로 삼은 증거들 가운데 새로 발견된 증거와 유기적으로 밀접하게 관련되고 모순되는 것들은 함께 고려하여 평가하여야 하고, 그 결과 단순히 재심대상이 되는 유죄의 확정판결에 대하여 그 정당성이 의심되는 수준을 넘어 그 판결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의 개연성이 인정되는 경우라면 그 새로운 증거는 위 조항의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

(나) 만일 법원이 새로 발견된 증거만을 독립적 · 고립적으로 고찰하여 명백성 여부를 평가 · 판단하여야 한다면, 그 자체만으로 무죄 등을 인정할 수 있는 명백한 증거가치를 가지는 경우에만 재심 개시가 허용되어 재심사유가 지나치게 제한되는데, 이는 새로운 증거에 의하여 이전과 달라진 증거관계 아래에서 다시 살펴 실체적 진실을 모색하도록 하기 위해 ‘무죄 등을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를 재심사유의 하나로 정한 재심제도의 취지에 반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새로 발견된 증거의 증거가치만을 기준으로 하여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인지 여부를 판단한 대법원 1990.11.5.자 90모50 결정, 대법원 1991.9.10.자 91모45 결정, 대법원 1999.8.11.자 99모93 결정 등은 위 법리와 저촉되는 범위 내에서 이를 변경하기로 한다.
 
(2) 별개의견 (대법관 5인 의견)

(가)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에 정한 ‘무죄 등을 인정할 명백한 증거’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 고려하여야 할 구 증거의 평가 범위를 다수의견과 같이 제한할 것이 아니라 새로 발견된 증거와 재심대상인 확정판결이 그 사실인정에 채용한 모든 구 증거를 함께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평가 · 판단하여야 한다.

(나) 다수의견과 같이 새로운 증거가 무죄 등을 인정할 ‘명백한 증거’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 새로운 증거만을 독립적 · 고립적으로 고찰할 것은 아니라고 해석한다면, 재심대상인 확정판결이 사실인정에 채용한 구 증거들 중에서 새로운 증거와 유기적으로 밀접하게 관련 · 모순되는 것들로 그 범위를 제한할 것은 아니다. 

새로 발견된 증거와 확정판결이 채용한 구 증거들 사이의 밀접한 관련성이나 모순성은 실제 각 사안에서 구체적 · 개별적으로 판단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는바, 무죄 등을 인정할 명백한 증거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법원이 각 사안에 따라 새로운 증거와 확정판결이 채용한 증거들을 함께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타당하다.

다. 원심 결정에 대한 판단

(1) 다수의견

(가) 원심은, 첫째 무죄를 인정할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데에 있어서 먼저 피고인이 무정자증이 아니라는 증거가 재심대상판결의 소송절차에서 발견되지 못한 것이었는지 여부를 살핀 다음, 그 당시 재항고인이 그러한 증거를 발견하여 알고 있었는데도 고의 또는 과실로 이를 제출하지 아니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인정될 때 이를 이 사건 조항에서 정한 재심사유가 되는 신규성 있는 증거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어야 할 것인바, 위 정액검사결과가 그 소송절차에서 발견되지 못한 것이었는지를 살펴보지도 아니한 채 만연히 제출할 수 없었던 증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원심결정에는 이 사건 조항에서 정한 증거의 신규성 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나머지 그 발견 여부 및 제출하지 못한 데 대한 피고인의 고의 · 과실 여부 등에 관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잘못이 있다.

(나) 둘째, ‘무죄 등을 인정할 명백한 증거’에 해당하는지는 재심대상판결을 선고한 법원이 사실인정의 기초로 삼은 증거들 중에서 위 정액검사결과와 유기적으로 밀접하게 관련되고 모순되는 증거들은 함께 고려하여 평가하여야 할 것임에도, 이와 달리 원심이 그러한 증거들을 제쳐 두고 위 정액검사결과의 증거가치만을 기준으로 증거의 명백성 여부를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고 할 것이다.

(다) 그런데 피고인이 재심사유로 내세우고 있는 증거, 즉 자신이 무정자증이 아니라는 위 정액검사결과와 유기적으로 밀접하게 관련되는 증거로는 재심대상사건 기록상 재심대상인 확정판결의 사실인정에 기초가 된 증거들 가운데 국립과학수사연구소장의 감정의뢰회보와 검찰주사의 수사보고 등이 있는바, 위 감정의뢰회보의 내용은 피해자의 체내에서 채취한 가검물에서 정액 양성반응이 나타났을 뿐 정자는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위 수사보고는 이러한 감정의뢰회보에 비추어 범인은 무정자증으로 추정된다는 것인데, 위 감정의뢰회보의 내용과 같이 정액 양성반응이 있으나 정자가 검출되지 않은 이유에는 무정자증 이외에도 채취한 가검물의 상태나 그 보존 과정 등에서의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하여 정자가 소실되는 등의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으므로, 위 감정의뢰회보만으로 범인이 반드시 무정자증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고, 여러 가지 가능성 중의 하나로서 단순히 추측하는 내용에 불과한 위 수사보고 역시 별다른 증거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


피고인이 무정자증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자료에 불과한 위 정액검사결과는 위 증거들을 함께 고려하더라도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의 개연성이 인정되는 증거가치를 가지지 못하므로, 결국 이 사건에서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라) 따라서 원심이 피고인에 대한 위 검사결과가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 소정의 재심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결론에 있어서 정당하다.

(2) 별개의견

(가) 피고인이 재심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자신에 대한 정액검사결과는 재심대상판결이 확정된 후에 발견된 증거로서 법원에 대하여 새롭다고 할 것이므로 이 사건 조항에서의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에 해당한다고 할 것인바, 이와 달리 위 정액검사결과를 재심대상판결의 소송절차에서 제출할 수 없었던 증거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원심결정에는 이 사건 조항에서의 증거의 신규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할 것이다. 
         
(나) 원심이 위 정액검사결과와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이 사실인정에 채용한 구증거들을 함께 종합적으로 평가하지 아니한 채 위 정액검사결과의 증거가치만으로 무죄를 인정하기에 명백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피고인이 제출한 위 정액검사결과는 피고인이 무정자증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자료에 불과하여, 다수의견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구 증거 중 국립과학수사연구소장의 감정의뢰회보나 검찰주사의 수사보고만으로는 범인이 반드시 무정자증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이상, 별다른 증거가치를 인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이 그 사실인정에 채용한 구 증거 또는 그에 의하여 인정되는 사정들, 즉 범인의 침입 경로인 피해자 주택 난간에서 채취된 지문이 피고인의 지문과 일치되고, 피고인의 주거에서 범행에 사용된 것과 같은 종류의 도구가 발견되었다는 점 등을 종합하면, 이 사건은 이들 증거 등을 위 정액검사결과와 함께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보더라도 유죄의 확정판결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의 개연성이 인정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다) 위 검사결과가 무죄를 인정하기에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 있어서는 다수의견과 견해를 같이하므로, 결국 이 사건 재항고가 기각되어야 한다는 결론은 다수의견의 견해와 같다.

4. 검 토

증거의 신규성에 있어서 법원 이외에 당사자에 대하여도 신규일 것을 요하는가에 대하여 위 결정의 다수의견은 당사자가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하여 제출하지 않은 증거에 대하여는 신규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절충설)이고, 별개의견은 신규성은 법원에 대하여만 존재하면 된다는 입장(불필요설, 학자들의 다수의견)이다. 또한 증거의 명백성에 있어서 위 결정의 다수의견은 새로 발견된 증거의 증거가치만을 기준하여 판단하는 기존의 판례 입장(단독평가설)을 변경하여 새로 발견된 증거와 유기적으로 밀접하게 관련되고 모순되는 것들은 함께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는 입장(총합평가설)을 취하게 되었고, 별개의견은 새로운 증거와 유기적으로 밀접하게 관련 · 모순되는 것들로 범위를 한정할 필요가 없다며 평가범위를 더욱 확대하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위 결정은 증거의 명백성과 관련하여 새 증거와 함께 기존의 구 증거까지 포함하여 평가하도록 함에 따라 재심사유가 지나치게 제한되는 점을 크게 보완할 수 있게 되어 진일보하였다고 하겠으나 증거의 신규성에 있어서는 아직도 다수의견이 법적 안정성을 위해 재심이 판결 확정된 이후의 예외적인 비상구제절차자라는 점을 강조하여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위 결정의 별개의견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재심을 청구한 피고인이 재심대상인 확정판결의 소송절차에서 무죄 등을 인정하기에 명백한 증거를 발견하였으나 그 부주의로 제출하지 못하였고 그 확정판결을 한 법원이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직권으로 그 증거를 조사할 수 있었던 경우도 있을 수 있으므로 형사소송법의 최고이념인 실체적 진실주의에 따라 최소한 피고인이 고의로 증거를 제출하지 못한 경우로 한정하는 등의 논의와 비판이 계속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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