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현 교수의 형사교실] 범인식별절차에서의 목격자 진술의 신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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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현 교수의 형사교실] 범인식별절차에서의 목격자 진술의 신빙성
  • 법률저널
  • 승인 2011.10.14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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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2008.1.17.선고 2007도5201 판결

이창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 사건 개요 

가. 2006.8.3. 부산 동구 좌천4동에 있는 피해자(여, 9세)의 집에서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주거침입강간등) 사건이 발생하였다. 피해자는 사건 당일에 부산 연제구 거제동에 있는 부산의료원 내 부산여성 · 학교폭력 피해자 원스톱지원센터에서 피해 경위를 진술하면서 범인의 인상착의에 관하여 “범인의 얼굴은 넓적하고 사각형(턱을 가리키며)이고, 흑인만큼은 아니지만 지나가면 표가 날 정도로 얼굴과 팔 등이 검은 편이었으며, 눈은 조금 작고 쌍꺼풀이 있었으며, 눈과 이마에 주름이 있었고, 머리는 짧았으나 단정하지는 않았으며, 옷은 회색 반팔 면티에 긴 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신장은 피해자의 어머니(163㎝) 정도로 작았으며, 체격은 뚱뚱해 보였고, 나이는 피해자의 아버지(42세)보다 많아 보였으며 얼굴에 점은 없었다”고 진술하였다.

나. 탐문 수사를 하던 경찰은 사건 발생 4-5일 후에 용의자 인적사항을 확보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수법영상시스템’을 활용하여 300여 명을 확인하게 하였으나 용의자를 발견하지 못하였고, 그 후 피해자가 이 사건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이유로 경찰서에 출석하여 용의자의 사진을 확인하는 것을 거부하자, 경찰은 피해자의 어머니가 의심한 중부산 케이블방송 동구점 직원들과 피고인을 비롯한 부산동부경찰서 관내 성폭력 우범자 총 47명의 주민등록 화상사진을 컴퓨터휴대용 저장장치(USB)에 저장한 후, 2006.8.28. 12:30 무렵 피해자 집에서 피해자의 어머니 입회 아래 컴퓨터 화면을 통해 피해자를 상대로 확인하게 하였는데, 피해자가 “피고인의 사진이 범인과 아주 많이 닮았다”고 진술하였다.

다. 이에 경찰은 부산지방법원으로부터 피고인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연고지 및 배회처를 상대로 수사하던 중 2006.10.11. 23:15 무렵 부산 동구 초량3동에 있는 고시텔 내에서 피고인을 체포하여 범행을 추궁하였으나, 범행 일체를 부인하여 피고인을 상대로 진술조서를 작성 후, 피고인 동의 아래 자연스러운 모습을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하여 2006.10.12. 07:30 무렵 피해자의 집에서 피해자의 어머니 입회 아래 피해자에게 확인하게 하자, 피해자가 “피고인이 자신에게 피해를 입혔던 범인이 맞다”고 진술하였다.

라. 그 직후인 같은 날 아침 무렵 부산동부경찰서 숙직실에서, 유리를 통해 피해자만 피고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상태에서 혼자 있는 피고인이 범인인지 여부를 확인하게 하여 피해자가 “범인이 맞다”고 하자, 이를 비디오카메라로 녹화하기 위하여 같은 날 08:10 무렵 범인식별실에 피고인을 포함하여 평복을 입은 3명을 의자에 동시에 앉힌 상태에서 피해자의 어머니 입회 아래 피해자로 하여금 피해자만 피고인을 볼 수 있는 특수유리를 통해 범인 여부를 확인하게 하자, 피해자는 “피고인이 범인이 맞다”고 진술하였다.

마. 위 사건을 송치받은 검사는 피고인을 범인으로 판단하고 ‘피고인이 2006. 8.3. 11:20 무렵 부산 동구 좌천4동에 있는 피해자(여, 9세)의 집에서 잠겨 있지 않은 대문을 통해 집안으로 침입한 다음 작은 방 책상의자에 앉아 컴퓨터로 게임을 하고 있던 피해자를 강간하고 이로 인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약 2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질벽열상 등을 입게 하였다.’는 공소사실로 피고인을 기소하였다.

2. 쟁 점

용의자의 인상착의 등에 의한 수사기관의 범인식별절차에서 범인 여부를 확인하는 목격자 진술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한 절차적 요건 및 그 적용 범위

3. 1심 및 항소심의 판결 내용 

가. 1심에서는 피고인에게 유죄가 선고되었으나 항소심에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의 사정을 종합하여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인 피해자의 진술은 그 신빙성이 낮고 검사가 제출한 나머지 증거들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며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이 사건 공소사실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입증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하여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다.

나. 즉, ① 특수유리를 통해 피고인을 대면한 피해자가 범인식별절차에서 피고인을 범인으로 지목한 진술은 피고인을 포함한 3명을 동시에 앉혀 놓은 상태에서 범인을 지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기는 하였으나, 그 직전에 피고인만의 모습을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한 동영상을 피해자에게 보여주고 범인 여부를 확인하게 하였고, 다시 피고인 혼자만 있는 상태에서 피해자로 하여금 범인 여부를 확인하게 하여 피해자가 “피고인이 범인이 맞다”고 진술하였다는 것이므로, 피고인을 범인으로 지목한 피해자의 이러한 진술들은 범인식별 절차에서 신빙성을 높이기 위하여 준수하여야 할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상태에서의 진술이다.

다. ② 피해자가 사건 발생일로부터 25일이 지난 무렵 용의자들 사진 중에서 피고인의 사진을 보고 범인과 아주 많이 닮았다고 진술하였으나, 이는 피고인의 신체적 특성이나 특별한 인상착의를 근거로 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피해자는 범인의 얼굴과 팔 등이 지나가면 표가 날 정도로 검은 편이었다고 사건 당일 진술하였는데, 피해자에게 제시되었던 피고인의 사진을 보면, 그 얼굴색이 피해자의 진술처럼 표가 날 정도로 검은 편이라고는 보이지 아니하고, 달리 범행 당시 피고인의 얼굴과 팔 등이 피해자의 진술처럼 매우 검은 편이었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도 없어서 피해자가 진술한 범인의 인상착의와 용의자로 제시된 피고인의 사진상의 인상착의가 과연 동일한 지에 대해서도 분명하지 아니하다.

라. ③ 피해자는 범인의 얼굴에 점은 없었다고 사건 당일 진술하였으나, 원심의 검증 결과에 의하면 피고인의 왼쪽 볼에 사마귀 같은 점이 있는 사실이 인정된다. ④ 피고인이 종전에 피해자와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든가 피해자의 진술 외에도 피고인을 범인으로 의심할 만한 다른 정황이 존재한다든가 하는 등의 부가적인 사정이 없다.

4. 대법원 판결이유 정리

가. 용의자의 인상착의 등에 의한 범인식별 절차에 있어 용의자 한 사람을 단독으로 목격자와 대질시키거나 용의자의 사진 한 장만을 목격자에게 제시하여 범인 여부를 확인하게 하는 것은 사람의 기억력의 한계 및 부정확성과 구체적인 상황하에서 용의자나 그 사진상의 인물이 범인으로 의심받고 있다는 무의식적 암시를 목격자에게 줄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인하여, 그러한 방식에 의한 범인식별 절차에서의 목격자의 진술은, 그 용의자가 종전에 피해자와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든가 피해자의 진술 외에도 그 용의자를 범인으로 의심할 만한 다른 정황이 존재한다든가 하는 등의 부가적인 사정이 없는 한 그 신빙성이 낮다고 보아야 한다.

나. 범인식별 절차에 있어 목격자 진술의 신빙성을 높게 평가할 수 있게 하려면, ① 범인의 인상착의 등에 관한 목격자의 진술 내지 묘사를 사전에 상세히 기록화한 다음, ② 용의자를 포함하여 그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여러 사람을 동시에 목격자와 대면시켜 범인을 지목하도록 하여야 하고, ③ 용의자와 목격자 및 비교대상자들이 상호 사전에 접촉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하며, ④ 사후에 증거가치를 평가할 수 있도록 대질 과정과 결과를 문자와 사진 등으로 서면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여야 할 것이고, 사진제시에 의한 범인식별절차에 있어서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원칙에 따라야 한다(대법원 2001.2.9. 선고 2000도4946 판결, 대법원 2004.2.27.선고 2003도7033 판결, 대법원 2007.5.10.선고 2007도1950 판결 등 참조).

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은 동영상제시 · 가두식별 등에 의한 범인식별 절차와 사진제시에 의한 범인식별 절차에서 목격자가 용의자를 범인으로 지목한 후에 이루어지는 동영상제시 · 가두식별 · 대면 등에 의한 범인식별 절차에도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라. 이에 따라 항소심의 판단은 위와 같은 용의자의 인상착의 등에 의한 범인식별 절차에 관한 법리와 사실심 법관의 합리적인 자유심증에 따른 것으로서 기록에 비추어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주장하는 바와 같은 채증법칙 위배 등의 위법이 없어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상고를 기각하기로 한다.

마. 한편, 대법원 2009.6.11.선고 2008도12111 판결에 의하면 피해자가 길가에서 범인으로부터 강제추행치상을 당한 직후 범인을 뒤쫓아 가던 중 때마침 순찰활동 중이던 경찰차에 탑승하여 경찰관들과 함께 범인을 추적하다가 골목길에서 범인을 놓친 직후 골목길에 면한 집을 탐문하여 용의자를 확정한 경우와 같이 범죄 발생 직후 목격자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상황에서 현장이나 그 부근에서 범인식별절차를 실시하였을 때에는 목격자에 의한 생생하고 정확한 식별의 가능성이 열려 있고 범죄의 신속한 해결을 위한 즉각적인 대면의 필요성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용의자와 목격자의 일대일 대면도 허용된다고 한다.

5. 검 토

피해자나 목격자가 피고인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그 지목하는 진술이 사실상 유일한 직접적 증거인 경우에 비록 피해자 등에게 아무런 악의가 없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기억력이나 그 정확성에는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주변의 영향을 받아서 다른 기억이 혼입된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수사과정에서 수사기관의 어려움을 충분히 예상할 수는 있으나 범인식별절차에서 판례가 요구하는 절차적 요건을 엄격히 준수하여야 하는 것이다.

위 사건에서는 47명의 사진을 미리 피해자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에 나중에 피고인과 다른 3명을 동시에 앉힌 상태에서 특수유리를 통해 확인한 조치는 별로 의미가 없고 오히려 피해자가 사건 당일 진술한 범인의 인상착의와 피고인의 사진상의 인상착의가 동일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 더욱 문제가 될 것 같다.


형사소송법상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하며 따라서 피해자나 목격자의 진술에 신빙성을 높여서 증명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범인식별절차에서 ① 우선 목격자에게 사전에 범인의 인상을 자세히 진술하도록 하여 기록화하고, ② 이를 기초로 그와 비슷한 용모를 지닌 자 여러명을 사진 또는 실물로 동시에 대면시켜 범인을 지목하도록 하고, ③ 그 과정에서 용의자와 목격자 및 비교대상자들이 사전에 접촉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하고, ④ 증거가치의 평가를 위하여 대질과정과 결과를 서면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여야 하겠으며, 만일 그렇지 않으면 비록 피고인이 범인이라는 의심이 많이 든다고 할지라도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피고인을 범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쨌든 피고인은 자칫 잘못된 범인식별에 의해 억울한 형벌을 받고 천추의 한이 될 가능성이 언제나 있는 것이므로 이를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서라도 범인식별절차에서의 요건을 철저히 지켜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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