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北송금 ‘통치행위’ 아니다
상태바
對北송금 ‘통치행위’ 아니다
  • 이경재
  • 승인 2003.02.05 15: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경재 변호사


2000년 6월 15일. 전 세계의 이목은 한반도의 북쪽 중심지 평양에 집중되었다. 남북 정상이 반갑게 포옹하고 환호하는 평양 거리의 붉은색 물결이 긴급 뉴스로 시시각각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추진한 햇볕정책의 상징적 성과였고, 우리 국민에게는 남북교류와 민족 통일이 급물살을 탄듯한 짜릿한 행복감을 안겨주었다. 이 대사건은 그후 김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는 데 큰 몫을 했다.

2002년 12월.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강력한 자제 촉구에도 불구하고 핵 재처리시설 감시장치를 철거했다. 국제 사회의 일치된 권고마저 무시한 채 독자적인 핵프로그램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2003년 벽두부터 북한 핵문제는 이라크 무장해제 문제와 더불어 세계의 양대 위협으로 대두되고 있다.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북한의 이런 행태로 인해 어디서 그 성과와 계속 추진의 논리를 찾을 것인지 퇴색하고 빛을 잃었다.


이런 와중에 감사원이 30일 “현대상선이 남북 정상회담 직전 산업은행에서 대출받은 4000억원 중 2억달러 상당(2235억원)을 대북관련 사업자금 명목으로 북한에 지급했다”고 발표했다. 야당의 주장과 항간의 의혹이 사실로 굳어진 것이다. 뜻있는 국민들은 북측에 의해 우리가 기만당한 게 아닌지 불쾌감마저 호소하고 있다. 특히 송금 당시 국정원장은 임동원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로서 남북 정상회담 성사의 주역이어서 김 대통령이 관련되었을 가능성을 지적하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은 대북지원을 사법심사 대상이 아닌 통치행위로 다뤄 줄 것을 요청했다. 차기 정부의 비서실장 내정자도 청와대 개입이 사실이라 가정하더라도 통치권 차원의 행위였다면 덮어야 한다고 언급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민족 통일을 위해서는 정상회담이 필요 불가결한 만큼 이를 성사하기 위한 조치들은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해당하여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른바 통치행위는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한 국가행위로서 사법적 심사의 대상으로 삼기에 적절치 못한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 이 같은 통치행위 주장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 권력의 독재화와 전단을 호도하기 위한 헌법 논리로 자주 악용되어 왔다. 지금도 독재국가에서는 통치행위 이론을 권력 유지를 위한 도구로 애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통치행위를 인정할 것인가, 인정한다면 그 한계선을 어떻게 그을것인가는 헌법학의 주요 논쟁 대상이다. 그러나 그 논의의 방향은 통치행위를 부정하거나, 인정하더라도 그 대상을 최소화하는 쪽이다. 통치행위를 광범위하게 인정한다면 대통령의 권력 남용과 국정 전단을 막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조에 따라 헌법재판소는 1996년 판결을 통해‘이른바 통치행위를 포함한 모든 국가작용은 비록 그 행위가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하여 행해지는 국가 작용이라 하더라도 헌법재판소의 심판 대상이 된다’고 판시하고 있다.

모든 국가기관의 행위는 헌법과 법령에 정한 요건과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고 이에 위배될 때에는 법적 책임을 진다는 대전제가 법치주의의 근간이다.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법 위에 존재할 수 없으며 법 앞에서 다른 국민과 동일한 기준에서 심판받아야 한다는 것이 법의 기본 원리다.

대북 송금 역시 적법 절차에 따라 정당한 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만약 현대상선의 대북 거액 송금이 남북 교류협력 관련 법규를 도외시하고 오로지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탈법적 방법으로 이루어졌다면 이러한 행위는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범죄행위를 통치행위로 강변할 논거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검찰은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여 성역 없이 엄정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통일의 길도 정당한 목적과 적법한 방책으로 개설되어야 한다.  /이 글은 필자가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