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전쟁, 민주주의, 휴머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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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전쟁, 민주주의, 휴머니티
  • 법률저널
  • 승인 2011.10.0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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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과 ‘좀비’들의 ‘가을’

신희섭 베리타스

2011년 10월 가을에 영화에서나 볼 것 같던 사람들이 나타났다. 돈을 입에 쑤셔 넣고 동공이 풀린 표정으로 시내를 활보한다. 그것도 백주대낮에 금융의 중심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의 가장 중심지에서. 그리고 그들은 외친다.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해적들도 활개를 친다. 자신들을 해적이라 부르며 환호성을 지른다. 자신들의 상징인 오렌지색 깃발을 흔든다. 그리고 이들도 외친다. “인터넷에 더 많은 자유를!(more Freedom for the Net!)”

먼 나라이야기 말고 우리 이야기로 고개를 돌려보자. 박원순 변호사가 민주당의 박영선 의원을 꺾고 서울 시장보궐선거의 야권통합후보가 되었다. 과거 집권당이자 대한민국 양대 정당의 한 축인 민주당이 한 사람의 시민운동가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내주는 치욕을 겪었다. 시민사회가 정치사회를 가뿐히 누르고 휘파람을 분다. 그리고 이들은 “시민사회를 통한 변화”를 이루고자 외친다.

자본주의 특히 금융계의 부도덕성과 실업문제를 이유로 시작된 뉴욕의 시위가 진화 확대해 가고 있다. 3주째 계속되고 있는 월가의 시위는 이제 좀비들이 등장하는 퍼포먼스로 진화했다. 게다가 뉴욕시립대학교 교수들과 미국통신노조의 지지도 확보했다. 헤지펀드계의 거물인 조지 소로스도 이들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한다. 백악관은 “오바마 대통령이 주시하고 있다”라고 밝히면서 사안의 중요성에 대한 지지를 보냈다. 이 시위를 주도 하고 있는 이들은 9%대의 높은 실업률로 인해 대학을 나오고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젊은이들이다.

독일에서는 2011년 9월 18일 베를린시 의회선거에 ‘해적당(Piratenpartei)’이 15명의 시의원을 배출했다. 지지율은 8.9%가 나왔다. 인터넷이용의 자유를 주장하는 해적당은 시의회 의석 152석 중 15석을 얻어서 제 5당이 되었다. 온라인 게시물 복제를 의미하는 ‘해적판’이라는 용어에서 따온 당명처럼 인터넷에서 정보의 자유를 주창하면서 자신들이 ‘정보의 바다속 해적’이라고 자임한다. 창당한지 5년 밖에 안 된 정당이고 전국당원이 1만 2천명에 불과하며 베를린 당원이라야 1,000명에 불과한 이 인터넷에 기반을 둔 정당은 녹색당, 자민당, 좌파당의 유권자들 표를 빼앗으며 엄청나게 부상하였다. 이 정당의 당원 평균연령은 29세로 주로 학생과 2,30대 청년층을 지지자로 긁어모아 활동을 하고 있다. 즉 이 현상의 주도층 역시 실업으로 시달리고 있고 젊은이들인 것이다.

한국의 시민사회에 희망은 안철수 신드롬에서 출발했다. 안철수라는 시대의 아이콘이 “서울시장은 변화를 할 수도 있는 자리라고 생각한다”는 말 한마디에 전국은 서울시장의 공석이 아니라 마치 새로운 대통령을 모시듯이 술렁였다. 그동안 대선지지율에서 독주를 해온 박근혜의원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안철수 vs. 박근혜’의 대선 대립구조에 대한 여론 조사까지 나왔다. 비록 안철수 교수는 후보출마를 고사했지만 박원순 변호사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고 진보진영의 후보가 되었다. 이 현상은 2004년 촛불시위, 2008년 소고기촛불집회, 그리고 최근 한진중공업과 제주강정마을 문제에 대한 참여와 지지와 같은 일련의 현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시민들 특히 젊은이들이 중심이 되면서 기성 정치와 제도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다.

젊은 층에 대한 한국에서의 또 다른 측면도 있다. 최근 언론에 관심을 받고 있는 ‘거마지역대학생’문제가 그것이다. 취업의 어려움을 틈타 몇몇 악덕 업자들이 젊은 학생들을 다단계로 유혹하여 집단 합숙을 시키면서 사회와 가족들로부터 이들을 격리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의 중심에도 역시 젊은이들이 있다.

미국, 독일, 한국. 경제적 문제와 사회적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가 이 세 나라 뿐은 아니다. 인터넷의 표현과 이용의 자유제한을 금지하라고 주장하는 해적당은 스웨덴에서 시작하여 이미 200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7.13%의 득표를 하여 유럽의회 의회의석 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해적당은 16개 국가에서 이미 정당의 모습을 갖추었고 32개 국가에서 준비모임이 구성됐거나 논의 중이다.  스위스에서는 파워포인트를 만들고 이렇게 만들어진 파워포인트를 이용한 지루한 프레젠테이션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대변해서 만든 파워포인트 반대당도 나타났다. 이 사안들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것은 ‘정보화’시대의 사회변화와 이에 따른 새로운 요구를 기존 정당과 정치인들이 수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월가의 시위는 2008년 금융위기의 주범들이 공적자금이라는 세금으로 기사회생해서는 다시 돈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것에서 출발했다. 이들의 주장은 금융자본의 탐욕으로 인해 1%의 부자를 위해서 99%의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탐욕과 부도덕함에 대해 비판하는 이 시위의 본질은 금융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화’라는 사회변화와 새로운 경제 질서를 기존 정당과 정치인들이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식과 금융을 대표로 하는 자본주의의 탐욕성에 대한 비판에 대한 공감대가 월가의 시위를 호주와 캐나다로 확대시키고 있다. 게다가 SNS가 이들의 불만을 전세계적으로 퍼 나르고 있다. 이렇게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요구가 확대되고 불만이 결집되는 것은 마치 지난봄에 있었던 아랍 국가들의 민주화확대와 유사한 면이 있다. 프린스턴대학교의 코넬 웨스트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아랍의 봄에 응답해 미국의 가을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했다.

한국의 시민사회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는 것의 본질에도 똑같이 민주화이후의 새로운 사회변화와 IMF이후의 새로운 경제적 분배구조에 대한 요구가 있다. 87년의 민주화와 97년의 IMF이후의 삶의 변화가 가져온 불만을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와 정치권에 대한 비판이 시민사회 후보에 지지를 보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운동의 배후에 어떤 불순한 세력이 있는가?”와 “실업자들이 얼마나 시간이 많으면 시위를 하며 인터넷에 중독되어 해적을 자처하는가?”라는 질문은 이 현상이 담고 있는 사회구조적인 변화와 그 동력을 간과하게 만든다. ‘정보화’속의 변화와 ‘세계화’로 인한 부작용과 부정의와 ‘민주화’이후의 무능력함은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이런 거대한 변화 속에서 사회의 가장 약학 부위가 있는 힘을 다해 분노를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건드렸을 때 자연은 인간에 대해 경고를 보내고 환경재앙으로 반격을 가한다. 이처럼 월가로 상징되는 금융시장이 힘을 집중시키고 무능한 정치권에 돈을 대고 자본과 권력자들에 의해 시민들의 정보공간이 협소화되는 것에 사회적 약자들이 반격을 하는 것이다.

정보화와 세계화는 민주주의의 작동장치를 갓 태어난 봄이 아니라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로 만들고 있다. 대의민주주의는 너무 빨리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민주주의의 무능력함에 대한 냉담함이 분노로 바뀌어 가고 있다. 미국인들은 그들의 분노를 좀비들을 불러 모으는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고 독일은 인터넷의 자유를 외치면서 아마추어 정당을 만들어냈다. 한국의 젊은이들 중의 일부는 다단계의 늪에서 사회와 단절되고 있고 일부는 시민운동계의 명망가를 찾아 나선다. 이들 한국 젊은이들 모두는 희망이라는 무지개를 찾아 나선 것이다. 하지만 그 무지개는 지평선 너머에 있다. 누군가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좀비들처럼 위기가 휘적휘적 다가오고 있다. 자본주의의 탐욕, 자기만 아는 개인들, 의원제명에 한 식구가 되는 정치인들. 위기를 몰고 오는 좀비들과 일전을 불사할 의지만 높은 아무추어 해적들과 영웅주의의 시민명망가들. 우왕좌왕하며 우리의 민주주의는 초겨울인 11월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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