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전쟁, 민주주의, 휴머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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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전쟁, 민주주의, 휴머니티
  • 법률저널
  • 승인 2011.08.1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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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면 용서가 된다?

신희섭 베리타스

뉴스를 보니 한예슬이라는 여자 배우문제가 조금씩 커지고 있는 것 같다. 이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연예(인)계 문제가 일파만파 커지는 전형적 모델들을 답습하고 있다. 연예인의 문제야기→신문과 방송의 비판→인터넷의 동정론→제도와 제도권의 문제로 부각→ 연예인의 인간적 고통에 대한 공감대형성→인터넷 유력인사들의 폭탄발언→연예인 기자회견→매체들의 연예인 주변이야기 확대해석.

사람들이 말한다. “여자는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며 반쯤은 자신의 바람과 반쯤은 사회의 편견을 말한다. 그런데 한예슬 사건이 커지는 것을 보면 이 말이 안 맞는 듯하다. 진짜 이 말은 안 맞을까? 사소한 궁금증이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한예슬이 그럼 안 예쁜 것인가? 만약 한예슬이라는 배우가 안 예뻤으면 지금 저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자리까지 못 갔을 것이니 한예슬은 예쁘다.

그런데 왜 용서를 하지 말자는 사람들이 많을까? 반대로 용서하자는 사람들은 왜 한예슬이 예쁘니까 용서하자는 소리를 안할까?

이 주관적인 궁금증을 객관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사건을 재구성해보자. 8월 13일. 배우 한예슬 촬영중단선언과 ‘스파이 명월’의 담당PD 와 다툼. 8월 14일. 배우 한예슬 다음날 방송분 촬영 불참. 8월 15일. 영종도 공항에서 배우 한예슬 KAL기로 미국행. 같은 날. 드라마 결방. 8월 16일. 한예슬 사과설과 귀국설 등장. 8월 17일 오후 5시 10분. 한예슬 입국기자회견. 같은 날 오후 6시. KBS 드라마 명월 제작진 성명서발표. 같은 날 오후 9시. 한예슬의 소속사인 싸이더스 HQ측 배우 한예슬 깊이 있는 반성중 발표.

한예슬은 이 사안에서 사람들로부터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 과연 미인은 용서받을 수 있는가라는 주관적 궁금증을 사회과학적으로 살짝 전환해보자. “왜 그랬을까? 이유가 뭘까? 예쁜 한예슬은 왜 그런 행동을 하였을까? 그 원인은 한예슬이 미인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에게 일종에 책임을 묻는가?” 실없는 질문에서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기에 이 문제를 좀 더 분석적으로 보자, 한국의 사회심리적인 측면, 제작환경의 측면, 개인적 측면으로.

먼저 시야를 키워서 이 사안의 원인을 한국의 사회심리적인 문제로 볼 수 있다. 한국의 급속한 성장과 가파른 물가상승과 높은 노동 강도는 사회구성원들의 심리에 절박성을 만들어 왔다. 그래서 한국사회는 ‘빨리 빨리 사회’이다. ‘빨리 빨리’ 만들기를 좋아하고 ‘빨리 빨리’ 만들어지는 것에 관대하다. 쪽 대본으로 만들어지는 형편없는 스토리의 드라마가 최고 인기 순위를 차지해왔고 방송시장도 이런 한국사회의 심리에 적응한 것이다. 고로 시청자들의 고단한 생활과 느슨한 의식과 비판력결여가 이 사건의 진짜문제다. 그러니까 시청자인 우리는 한예슬을 비판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어라! 설명은 그럴싸한데 마지막이 뭔가 찜찜하다. 우리가 한예슬에게 빨리 드라마 만들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왠지 억울하다.

다른 설명을 찾아보자. 이전 설명이 눈높이가 너무 높았다면 좀 낮춰보자. 그냥 방송환경과 방송국의 조직과 운영방식으로. 여기는 우리 시청자들에겐 안전지대니 마음 상할 걱정은 없다. 한국의 방송환경이 완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작을 시작하고 체계적인 준비가 안 된 상태이기 때문에 잦은 시간 지연이나 끝나지 않을 듯 한 대기로 인해 살인적인 스케줄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날그날 찍어서 생방송처럼 내보내는 드라마는 그 자체가 스릴러다. 낮은 일당과 고된 노동과 불확실한 미래와 부족한 사회안전망이 이 구도의 특징이다. 이런 어려운 제작여건이 여린 여자 배우를 극단적 방식으로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저항하는 지경까지 몰고 간 것이다. 이후에 닥쳐올 여파와 가족들이 입을 상처를 생각하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초강수를 두게 한 것으로 제작환경은 꽤나 설득력 있다.

하지만 동일한 환경에 처한 다른 여배우들이나 더 열악한 상황의 여자 스태프들은 이런 행동을 왜 그간 하지 않았을까? 매일 보는 주변 동료들을 감안하고 이들이 받게 될 상처와 직업상실가능성 등을 조금만 더 생각했다면 주변 동료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을 것이다. 그런데 스태프들 성명서에 따르면 8월 13일에 배우 한예슬은 동료 연예인들에게도 잠적을 권유하면서 “제작진들이 배우 말을 듣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이것이 과연 드라마 제작환경을 바꾸기 위한 용기였는지 아니면 자신 혼자서 일을 저지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는지는 본인만이 알 수 있는 문제이다. 의도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권력을 알고 있었고 특히 자신의 위치가 가져올 파괴력은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사건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이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열고 인간 한예슬이 되어보자. 여기서 떠오르는 단어들. 살인적인 스케줄. 힘든 작업여건. 육체적인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좀처럼 오르지 않는 시청률과 주연배우로서의 압박감. 여배우에 대한 배려의 부족. 연예계 은퇴에 대한 고려. 남자친구와 결혼에 대한 생각들. 주변의 시선. 미국에 대한 기억과 자유로움. 제작진의 불손한 태도. 제작거부에 따른 한국여론의 엄청난 비난. 주변 지인과 친지들의 걱정과 피해.

이런 요소들이 섞이면서 자신이 희생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서 벋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상황이 가져올 미래의 복잡함과 그로 인한 두려움은 차라리 망각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왔을 것이다. 이처럼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상황이 나빠질 때 생겨날 수 있는 심리적인 압박이 겹치면서 배우 한예슬로 하여금 비행기를 타게 하였을 것이다.

결국 빨리 빨리의 사회적 분위기속에서 열악한 작업환경과 이로 인한 스트레스와 여러 심리적인 요소들이 그녀로 하여금 극단적인 결정을 하게 한 것이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많은 부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여배우 한예슬에 대한 관대한 이해를 방해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만약 자신하나를 희생해서 제작체계에 일침을 가하고자 했다면 왜 주변 사람들에게 먼저 그런 의사를 명확하게 하여 뒷말을 잠재우지 않고 한국을 떠났을까? 그리고 왜 문제가 된지 하루 만에 입장을 바꿔 황급히 돌아왔을까? 그리고 입국기자 회견에서의 여러 이야기들은 어떻게 보아야 하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하지만 “자신이 옳은 일을 했다고 믿고 싶다.”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저희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 국민들이 아셨으니 다시 시작하겠다.” “자신과 같은 희생자가 안 나왔으면 한다.” “이것을 계기로 관계자들이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최대한 관대하게 보자. 한예슬이란 배우도 물론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이다. 하지만 자신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직업적 자부심은 이번 일로 인해 더 큰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본인의 행동이전에도 국민들은 열악한 방송 상황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본인이 사과하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명분이 국민의 알권리 충족으로 가는 발상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리고 상대방이 돌아보는 계기를 이야기하기 전에 자신이 돌아보는 계기를 이야기해야 사람들이 그녀를 ‘열사’ 한예슬로 기억할 것이다.

그래도 좀 더 관대해져 보자. 탑 여배우로서 화초처럼 보호받으며 자랐고 그렇게 보호받는 것이 존재의 이유라면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사과하기가 좀 어렵고 팬들에 미안함과 동료에 대한 대면대면함을 처리하는 것이 미숙할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는 나이기도 하고. 추상적인 시청자와의 약속보다 제작사와의 약속을 넘어서는 심리적 압박도 있었고 아직 이런 문제들을 처리하기에는 경험도 짧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 이해하고 넘어가도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고 그것이 가져올 파장도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더 어려운 여건에 있는 동료들의 의욕을 꺾지는 말아야 한다. 본인이야 은퇴를 하고도 편안하게 살 수 있겠지만 그 어려운 환경에 가족의 인생까지 건 사람들은 그곳이 앞으로도 계속 생황의 전쟁터가 될 것이다.

이번 일은 한 가지 선례를 남겼다. 촬영거부와 잠적이라는. 이런 상황은 묵묵히 일하는 더 많은 사람들을 더 고통스러운 환경으로 이끌 것이다. 한 사람의 한 가지 잘못이 사회적으로는 엄청난 파장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옛날이야기가 하나 떠오른다. 1937년 중일전쟁은 만주로 좌천된 무타구치 렌야 대좌(연대장)의 노구교에서의 단독행동이 만들어낸 것이다. 중일전쟁은 이후 일본을 수렁으로 빠뜨렸고 일본이 결국 미국과 전쟁을 하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다. 이때 무타구치 대좌의 상사였던 가와베 여단장은 무타구치를 찾아가 화를 내었는데 두 사람은 서로 노려보기만 할 뿐 가와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처벌받아야 할 사람이 처벌되지 않게 된 이 두 사람은 1941년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할 때 가장 주도적인 위치에서 작전을 짜면서 다시 만났다. 이들의 1937년의 실수는 4년 뒤에 그대로 답습되었다. 그때 가와베가 무타구치를 혼냈다면 역사는 또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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