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회 사시 최고령 합격자]물 한 모금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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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 사시 최고령 합격자]물 한 모금의 힘으로…
  • 법률저널 편집부
  • 승인 2003.01.02 2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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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희
최고령 합격자·부산대 행정대학원卒


Ⅰ. 처음에는

‘고생을 즐겨라’라는 말이 있죠?

삶의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할 전환점에 서서 저는 이말을 떠올렸습니다.

“그래!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엄습해 올 때 거기에 함몰되어 허우적거리기보다는 그 자체를 삶의 일부분으로 즐기자. 그러기 위한 가장 적당한 방법은?”

이러한 고통을 즐기면서 극복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선택된 것이 37세의 늦은 나이로 사법시험에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변에서 사법시험을 쉽게 합격하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에 저도 시작하면 단기간에 합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표명하면서 생전 처음 신림동이라는 데를 들어왔죠.

공부자체와 환경모두가 저에게는 낯설어 힘들었지만 남들보다 많이 늦은 만큼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각오로 하루에 16∼17시간을 책상에 앉아 두꺼운 책과 씨름을 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넘어 시작한 공부라 공부가 즐겁고 재미있어 나의 삶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고 주위에서 다시 회춘했다고 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젊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면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죠.


Ⅱ. 4전 5기의 1차 합격

그해 5월 첫 번째 1차 시험을 쳤습니다. 그때는 경제학, 국사, 문화사 등과 함께 시험과목이 8과목이라 공부 분량이 너무 방대하여 별 기대는 안했지만 불합격 사실을 알고 1평짜리 좁은 고시원 방벽에 기대어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또 다시 고시원과 집을 전전하며 저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결과는 근소한 차이로 불합격, 또 불합격, 그리고 또 불합격. 4번을 계속해서 불합격하고 나니 길을 잘못든 것이 아닌가하는 두려움과 함께 공부방법의 수정이 필요함을 깨달았습니다.

100일 새벽기도를 작정하고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교회에 가서 기도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면서 10년 치 기출문제 분석을 시작했습니다. 8과목 모두, 기본서에 지문이 있는 것은 밑줄을 긋고 없는 것은 여백에 적어 2개월에 걸쳐 단권화 작업을 완성하고 반복해서 읽어 나갔죠.

시험 당일 날 주일이라 아침예배를 드리고 시험장에 가서 문제가 막힐 때마다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며 문제를 풀었습니다. 결과는 합격이었죠. 41세의 나이로 5번째만의 1차 합격, 감격 그 자체였습니다.


Ⅲ. 2차 시험과 재도전들

첫 번째 2차 시험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치를 수 있었으나 실력이 많이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당연히 불합격이었죠. 기득권자로서의 2차 시험 준비는 몸과 마음 모두를 너무 힘들게 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2차 시험 전문학원이 지금처럼 체계화되어 있지 않고 주변에 같이 공부할 사람도 마땅치 않아 방대한 양을 거의 혼자 정리하고 소화 시킬려고 하니 잠 잘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을 버티다가 어느 날 고시원 식당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죠. “춘희씨! 춘희씨!”하는 고시원 아주머니의 당황스런 고함 소리를 아련히 남긴채…‥

소화불량, 불안초조, 강박관념 등으로 신경정신과를 찾을 정도로 몸과 마음은 피폐해 있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옥과 같은 상황에서 시험을 치른 결과는 ‘불합격’이었습니다. 정말 슬펐죠. 어떻게 해서 합격한 1차인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서 기도원으로 향했습니다. 일주일 금식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 계신지를 물었죠. 공부를 계속하기를 원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고시원으로 돌아와 또 다시 1차 준비를 했으나 기간이 너무 짧아 또 불합격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새벽기도를 드리면서 근처 구립도서관에 아침에 의자에 앉으면 점심때 일어나고 점심 후 책상앞에 앉으면 저녁시간 집에 돌아올 때까지 엉덩이에 퍼런 멍이 들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전국모의고사가 있을 때는 신림동에 가서 모의고사를 치고 객관적으로 평가 된 저의 실력에 따라 공부계획을 수정·보완하곤 했죠. 시험 날(주일) 아침 예배를 드리고 시험장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문제를 푼 결과 ‘합격’이었습니다.
세 번째 2차 시험을 친 후 합격의 자신을 가지고 정말 즐겁게 놀았습니다. 2차 경험이 많으니까 실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한 거죠. 그러나 ‘불합격’이었습니다.

네 번째 2차 시험 공부를 시작했지만 이때는 오랜 수험 생활로 인해 몸이 너무 쇠약해 있었습니다. 하루에 2시간씩 치르는 모의고사는 너무 힘들었고 소화불량까지 겹쳐 시험 한 달을 앞두고 집으로 돌아와 죽을 먹고 영양제를 맞으며 안간힘을 썼지만 결과는 또 ‘불합격’이었습니다. 상법이 과락이더군요. 가족들은 공부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까지 고생하고 공부한 것이 억울해 포기 할 수가 없었죠. 또 시작했습니다.

다음해에 1차 시험 또‘불합격'. 정말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도달했죠.

그러나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모 학원에서 1차 시험 고시 종합반을 관리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저는 또 다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국모의고사를 보면 항상 상위권이었고 특히 마지막 모의고사에서는 2천명 중 15등을 하였는데 본시험에서는 1문제 차이로 또 ‘불합격’했습니다.

나중에 폐지되긴 했지만 그 당시 응시횟수 4회 제한이 있을 땐데 마지막 한번의 기회가 남아있었죠. 많은 망설임 끝에 나중에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1차 마지막 도전을 결심했습니다.

100일 새벽예배를 드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면서 식사, 운동시간외에는 거의 책상을 떠나지 않고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결과는 91.05라는 높은 점수를 받았죠.

그러나 1차 시험 때 모든 힘을 쏟아 부어버려 2차 시험 공부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시험을 친 결과 민법과락으로 또 ‘불합격’이더군요.


Ⅳ. 마지막 도전

이제는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생각으로 정말 겸손하게 새벽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하고 관악산에 올라 운동하며 기본서 강의 듣고 모의고사 치며 일주일에 두 번씩 그에 따른 강평강의까지 들으면서 착실하게 공부를 해 나갔습니다. 또한 6명이 하루1시간 정도 기본적인 case문제를 가지고 스터디도 했습니다.(4명합격)

모의고사 성적도 양호하고 모든 것이 순조로웠죠. 그러나 막상 시험 날이 가까워오니 신경이 예민해져서 잠도 잘 안오고 밥도 잘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본 시험 나흘은 저에게는 정말 힘든 시간이었죠.

신림동서 고려대학까지의 먼 거리를 왕래하고 나면 너무 지쳐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었습니다. 시험전 날 밤 전체적으로 한 번 스크린해야 선명한 답안을 작성 할 수 있는데…

마지막날 형사소송법 마지막 25점짜리 문제를 쓰려고 하는 순간 저는 온몸에 힘이 빠지고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꼈습니다. 순간적으로 저는 여기서 정신을 잃으면 십 수년간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는 생각을 하고 두손으로 책상을 부여잡고 힘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감독관에게 물을 청했습니다. 감독관이 내어 준 물 한모금에 의지하여 마지막 문제를 끝까지 쓸 수 있었죠.


Ⅴ. 아름다운 소식

시험을 끝내고 더 이상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정리하여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와 영어회화를 배우며 발표를 기다렸습니다. 또 기도했죠. “저를 합격 시켜 주시되, 합격소식도 가장 아름다운 방법으로 전해주세요”라고.
2002년 12월 3일 오후 3시경 저의 휴대폰 벨이 울렸습니다.“여보세요! 박춘희씨죠? 저는 대한매일신문 기자인데 박춘희씨가 최고령으로 합격하셨더군요. 축하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고생을 즐긴 보람을 주셨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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