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를 휘어잡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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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를 휘어잡지 말라
  • 안경환
  • 승인 2002.12.04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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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서울대 법대 학장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스키외가 다시 태어난다면 분명히 자신의 삼권분립론을 수정할 것이다. 명저 ‘법의 정신’이 탄생할 당시에는 비교적 사회가 단순했다. 드러난 권력은 국가권력뿐이었다. 그래서 국가권력을 입법과 사법, 행정으로 나누고 서로 견제하도록 하면 자연히 나라 전체의 힘의 균형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국민주권의 이념을 표방하는 근대 헌법이 몽테스키외의 이론을 전범(典範)으로 수용했음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권력분립이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서는 이해와 성찰이 모자라는 듯하다.


▼출장보고 안했다고 경고라니▼


권력분립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정립한 국정의 운영세칙일 뿐이다. 근대헌법은 기본권과 권력구조 양대 요소로 구성된다. 그러나 양자의 관계는 대등하지 않다. 전자가 주(主), 후자가 종(從)이다. 보다 정확하게 규정하면 기본권이 목적, 권력구조가 수단이다. 헌법의 눈은 어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가. 국가권력인가, 아니면 기본권인가에 따라 그 나라 민주화의 수준이 결정된다. 한 나라의 문화적 선진도를 가늠하는 ‘인권지수’란 개인의 기본권이 얼마만큼 국가권력의 존경을 받고 있는가에 대한 평가이다. 일전에 일어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의 ‘해외출장 파문’은 우리나라 인권의 현 주소를 절감하게 하는 씁쓸한 에피소드다. 11월11일부터 13일까지 인도의 뉴델리에서 열린 아시아 태평양국가 인권기구포럼(APF) 연례회의에 참석했던 김창국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공무국외여행’ 규정을 어기고 ‘대통령의 사전허가’ 없이 출국했다는 이유로 청와대측의 공개적인 경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공무국외여행규정’에 의하면 행정부 소속 공무원인 장관과 차관은 국외출장에 앞서 대통령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행정부 소속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설사 그렇다손 치더라도 청와대측의 경고는 채신 있는 조치가 아니다. ‘일개 장관급 인사가 감히 국가원수를 무시하다니’라는 ‘제왕적 대통령’의 권위의식의 발로처럼 비친다. 인권위가 청와대를 비롯한 관계부처를 깡그리 무시했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는 해명이 있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언론이다. 이른바 유력 일간지들이 앞다투어 인권위의 오만과 독선을 비난하고 나섰다.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국가기관이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지휘를 받지 않는다니, 도대체 어불성설이라는 논조다. 마치 ‘인권(人權) 위에 국권(國權)’이라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금 찬찬히 되짚어보자. 도대체 왜 인권위원회가 탄생했을까. 법원과 검찰이라는 인권옹호기관이 버젓이 있는데, 왜 국가인권위원회라는 별도의 기관이 필요했을까. 몽테스키외의 이론으로는 메울 수 없는 큰 구멍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최근 검찰의 고문치사 사건을 보라. 민주헌정의 전통이 취약한 사회에서는 몽테스키외의 권력분립론을 고집해서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대로 보장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래서 실로 오랜 논란 끝에 독립된 지위의 국가인권위원회를 출범시켰고, 그것은 무수한 실정(失政)에도 불구하고 ‘인권대통령’ 김대중의 중요한 업적으로 기록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노벨 평화상 수상에 빛나는 그 인권대통령이 설마하니 인권위원회를 자신의 지휘, 감독 아래 두어야 한다고 강변했을까.


▼독립 보장될때 제 임무 다해▼


연전에 개봉된 ‘시고니 위버의 진실’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군사독재가 무너지고 민간정부가 들어서면서 인권위원회가 탄생한다. 민주화 학생운동가 출신의 변호사가 위원장에 임명되나 그는 끝없는 테러의 위협에 시달린다. 아직도 건재하는 구악 세력과 전면적인 민주화를 열망하는 사람들 사이에 선 그는 외롭기 짝이 없다. 독재의 유습이 건재한 한심한 남의 나라, 영화 속에서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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