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수석 합격기-“다음이란 내게 없다...마지막 한 방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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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사 수석 합격기-“다음이란 내게 없다...마지막 한 방울까지”
  • 법률저널
  • 승인 2011.01.07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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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애 제16회 법무사 제2차시험 수석.청주대 법학과 졸업

 

◆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제16회 법무사시험에 합격한 성미애입니다. 합격수기를 쓰자니 조금은 쑥스럽습니다만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깜깜하기만 하던 수험생활에서 다른 이들의 합격수기가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고 합격의 지름길이 되었으므로, 힘든 시기를 겪고 계실 수험생 여러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싶어 몇 자 적어보려 합니다.
 
◆ 공부의 시작에서 합격하기까지


1. 법무사에 도전하다

대학졸업 후 법무사공부를 시작하기 전까지 IT관련 회사에서 매니저로 근무하였습니다. 일에 대한 대우는 좋은 편이었으나, 잦은 야근과 과중한 업무에 대한 부담, 장기적 비전의 불투명 등으로 퇴직을 고려하고 있던 차, 퇴직 후에 무슨 일을 할까를 고민하게 되었고, 전공을 살려 법무사 시험에 도전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2008년 10월 25일 마침내 회사를 퇴사하고 그 다음날 바로 학원등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수험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2. 1차에 몰입하다


처음엔 직장생활이 너무 힘들었으므로 공부만 하는 것이 날아갈 듯 기쁘고 집중도 잘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는 대략 3개월이 지나면서부터 ‘이 공부를 내가 왜 시작했을까’ 하는 후회와 ‘과연 합격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하면서 갑자기 1차시험 자체가 커다란 산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매일매일 나가는 진도를 이해하는 것조차 어려웠고, 집에 와서는 그날 배운 내용을 이해 위주로 복습하는데만 6시간 정도가 할애되고, 어느 날은 그날 배운 분량을 다 복습하지도 못한 채 다음 진도를 따라가야만 했습니다.


학원등록이 늦었던터라 1순환 수업을 다 듣지도 못한 채, 2순환으로 넘어가고 진도는 어찌나 빠르던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으며, 같이 수업을 듣는 분들과 실력차이가 나다보니 이에 위축이 되어 다른 세상에 와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기 암시가 필요했고, 이때부터 속으로 ‘나는 문제없어’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철저히 나 자신을 믿지 않으면 도저히 이 산을 넘을 수 없을 꺼라 생각했기 때문에, 주위에 신경쓰지 않고 스스로만의 방법을 만들어 실행하기를 결심했습니다.


1차시험까지 다른 사람들을 따라잡을 수 있는 차별화전략이 필요했는데, 첫째, 학원수업을 동영상수업으로 돌리고 집과 학원으로 이동하는 시간을 절약하기로 했습니다.


둘째, 학원에서 3순환과정이 진행되는 2달 동안 전과목 기본서를 2회독 할 것을 결심하고 집에서 가까운 독서실을 끊어, 집중하여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남들보다 2배 빨리 진도가 나가야 2회독이 가능했으므로,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했고, 학원에 다닐때보다 더 숨가뿐 2달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의 실력차를 어느정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셋째, ‘헷갈리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정해놓고, 정확도를 위해 전과목 암기노트를 만들어 철저히 암기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넷째, 모든 과목은 기본서 위주로 공부하였고 시험보기 전날에도 기본서를 일회독할 수 있게 단권화 하여 공부하였습니다.

1차 시험 목표를 80점으로 잡고, 서울법학원에서 3월부터 시작하는 모의고사에 맞추어 실력향상을 점검해 보기로 했습니다.


3월 모의고사는 평균 59.5 석차 120등이었으나 6월에 본 마지막 모의고사는 석차 4등을 하여 2차 공부때 서울법학원 장학생으로 혜택을 받는 기쁨을 누렸고 이즈음 합격에 대한 자신감도 어느정도 생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상대로 1차시험은 평균 81.5로 무난히 합격점을 받았고 바로 동차에 매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차 수험기간동안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불안감이었던것 같습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느끼듯이, 수업진도는 너무 빠르며, 기출문제는 어려워서 과연 내가 합격할 수 있을까하는 자괴감이 자꾸 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면 안정된 수험생활을 할 수 없고, 초조하여 계획적으로 성적을 올리기 어렵기 때문에 마인드 컨트롤이 특히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3. 동차합격을 꿈꾸다


1차시험 다음날 가답안을 맞추어 보고, 안전한 점수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동차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서울법학원에서 하는 설명회에 참석하여 2차 수험공부에 대한 안내를 받고, 바로 동차반에 등록하여 학원수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차때는 어차피 떨어져도 한해 더 기회가 있으므로 마음도 편했고, 1차때 처럼 남보다 늦게 시작한 것이 아니다보니, 모두 같은 출발선상에 있구나 하는 생각에 1차때 보다는 많이 안정된 마음으로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또 가장 좋았던 건 학원에서 서로 의지하며 공부할 수 있는 언니와 동생을 동시에 만났으며 이는 수험기간 내내 서로 심적 안정을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동차기간 3개월 동안의 수험기간의 모토는 ‘운 좋으면 합격할 수도 있다’라는 기대감으로 만약 이문제가 나오면 합격할 만큼은 쓰겠다는 생각으로 정리를 해나갔습니다.


그러나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은 과거 학부시절 공부를 했었나 할 정도로 전혀 새로운 과목으로 생소했고, 민법 역시 기존 1차 공부할 때와는 다른 시각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단문으로 준비할지 케이스로 준비할지도 혼동스러웠고, 특히나 2차시험은 답안지를 채워나가는 답안구성이라 더더욱 어설프게 아는 것은 아무것도 쓸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라서 동차합격을 위해 나름대로 전략을 세웠습니다. 우선, 민사소송법은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해야 하는데, 동차반의 수업스케줄로는 1회독하고 시험보러 들어가면 딱 맞았기에 나름대로 2~3회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어학용 녹음기를 구입하여 그날 배운 내용을 글로 정리하는 대신 말로 녹음하기 시작하였고, 민사소송법 강의가 끝날쯤엔 민사소송법 전체의 녹음도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이 파일들을 다른 과목이 진행되는 동안 학원을 오가는 버스에서 항상 들으며 판례와 용어들에 익숙해지게 암기하였습니다. 또한 잠자기 전에도 귀에 틀어놓고 자면, 잠도 잘오고 무의식중에 용어들이 귀에 익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 방법은 사실 동차시험에는 별로 효과적이지 못했는데, 이해가 선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암기했던 내용이 나왔는데도 시험문제의 논점을 전혀 엉뚱하게 써버려서 점수가 32.5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무작정 암기했던 판례들은 기득권시절에 기본서를 공부하는데 속도를 가속시켜주었고, 암기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민법은 박효근 법무사의 ‘주관식 민법’교재로 단문과 케이스를 같이 준비하였는데, 교재안에 있는 판례와 요건들을 철저히 암기해 나갔습니다. 시험까지 학원진도를 따라가며 1회독을 하고 시험에 임박하여 2회독을 더해서 총 3회독을 하고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사례들을 풀어보지 못하고 시험에 임하게 되니, 암기했던 판례에서 조금만 응용이 되어 나와도 사례를 풀지 못하고 판례의 결론과는 다른 결론을 내어버리고 마는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결국 민법은 43점을 맞아 겨우 과락을 면하는 수준의 점수를 받았습니다.


형사소송법은 김영환 선생님의 강의와 교재로 철저히 학원에서 인도하는대로 공부했습니다.


다른 케이스를 볼 시간도 없었고, 너무 어려워서 수업을 듣지 않고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학원에서 준 사례 프린트와 교재를 중심으로 1회독하고, 특히 프린트는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5회독 이상을 하여 예상문제 전체를 암기해버렸습니다.


다행히 동차시험은 이 프린트내에서 출제되어 32.5점이라는 비교적 좋은 점수를 받았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가 선행되지 않은 암기로 기계적으로 써내려간 답안인지라 참으로 매끄럽지 않은 답안이었습니다.


사실 수험생들 모두가 민법과 민사소송법에 집중하고 있으므로 저 역시 그 두 과목을 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고 형사소송법에서는 모험을 걸어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차피 떨어지면 다시 한번의 기회가 있으니 가능한 일이었겠지요.


부동산등기법은 그래도 1차과목에 있던 과목이라 부담이 덜 했습니다. 예상문제 20개를 찍어 그대로 암기했으나 시험은 여기서 나오지 않고 50점짜리가 ‘직권말소’에서 나와 다른 수험생들에게도 불의타였던 것 같습니다. 당황스러웠지만 1차공부 때의 기억을 더듬고 예상단문 20개 안에 들어있던 판례사안들을 조각 맞추기 하여 답안지를 채웠습니다. 31점으로 비교적 만족스러운 점수가 나왔습니다.


민사서류와 등기신청서 과목은 시험때까지 일주일에 두 번, 쓰기 스터디와 수업을 병행하였고 계속 쓰다보니 자주 출제되는 유형은 어느 정도 쓸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실제 시험장에서는 민사소송법과 부동산등기법에 쓸 내용이 많지 않은지라 상대적으로 소장작성과 등기신청서류에 더 공을 들일 수 있었고 소장에서 19.9점을 등기신청서류에서 22.75점의 점수를 받았는데 이는 올해 16회 시험에서 소장작성이 16.75점, 등기신청서류가 22.2점을 받은 것을 보면 오히려 기득권때보다는 동차때 점수가 좋은 과목인 것 같습니다.


형법은 가장 소홀했던 과목인데, 시험을 20여일 앞두고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수업종료후 시험까지 남는 기간이 불과 4일뿐이어서 다른 과목의 복습을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우선, 형법수업이 시작되면서 수업을 동영상으로 돌리고 이동시간을 절약했습니다. 또한 가장 출제 확률이 높은 형법각론의 개인적 법익 파트만 동영상으로 수업을 듣고, 시험준비를 했습니다. 다행히 시험은 개인적 법익에서 나왔으나 사례에 익숙하지 않았던터라 횡령죄를 배임죄로 써버리고 폭처법 등은 전혀 검토도 하지 않은 채 시험장을 나왔습니다. 점수는 내용이 엉망인 답안지치고는 후한 점수인 24.5점이 나왔습니다.


동차를 준비하면서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혹시라도 내가 준비한 문제가 나오면 반드시 다 쓴다’라는 마음가짐입니다. 준비한 문제가 나왔는데도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답안지를 채우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억울한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의 운을 믿어보자’. 이런 생각도 하며 재미있게 공부하였습니다.


동차때 평균은 51.53점, 합격자 커트라인은 55.587점. 양 점수사이에 밀집돼 아쉽게 떨어진 수많은 수험생들의 점수가 느껴지면서, 생동차 합격을 기대하는 것은 참으로 무모한 것이구나 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그러나, 동차때 합격을 목표로 무조건 암기했던 그 많은 판례들이 기득권시절 암기부담을 상당히 줄여주었고, 고득점으로 합격하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4. 기득권시절을 보내며


동차시험이 끝나고 일주일정도 쉰 후 바로 학원 예비순환에 등록하였습니다.


사실 종합반에 수강하고 싶었으나, 2010년 1월에 학원에서 먼 지역으로 집이 이사를 가게 되었으므로 예비순환만 실강을 듣고, 1순환부터는 혼자서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혼자 공부할 때 가장 주의할 점은 어떻게든 학원진도와 맞추어 나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슬럼프에 빠졌을 때 자신이 어느정도 처지고 있는지 확인이 어렵고 다시 자신의 페이스로 복귀하는데 더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예비순환수업은 기본서 위주로 진행이 되었고, 동차때 무조건 암기했던 사안들이 기본서에 대한 이해가 가미되니까 훨씬 재미있게 수업을 들을 수 있었고 복습에 대한 부담도 적었습니다. 수험기간 중 가장 여유있게 공부를 했던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스터디를 구성하여 민법 답맞추기 연습을 하였는데, 최대한 여러문제를 풀면서 답과 목차구성만을 연습하는 것으로 한사람이 나와서 칠판에 사례에 대한 답과 목차구성을 하면 나머지 사람이 그것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거나 수긍하는 방식으로서, 이는 사례풀이에서 판례와 같은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점수가 거의 없다는 것을 동차시험을 통해 터득하고 고안한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은 다른 과목을 공부할 때도 응용이 되었고, 16회 시험과 같은 유형의 문제를 풀 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학원에서 1순환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같이 진도를 맞춰 집에서 혼자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간은 개인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사랑하는 엄마께서 암투병 중에 하늘나라로 가셨기 때문입니다. 서울과는 거리가 먼 지역의 병원에 모셨기 때문에 자주 가보지도 못했고 공부한다고 그 마지막 가시는 길을 외롭게 했다는 자책감과 죄송함으로 마음이 항상 무거웠고 저의 건강도 급속히 안 좋아졌습니다.


최악의 컨디션을 극복해야 했기에 약에 의존하기 시작했는데, 홍삼, 우루사, 비타민, 바카스, 빈혈제 등 수험생이라면 익숙한 약물들을 매일 상당한 양을 먹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학원 2순환강의가 시작되니 저의 마음도 급해졌습니다. 왜냐하면, 3순환부터는 학원근처로 임시거처를 정하고 학원수업을 실강으로 들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이때까지는 모든 정리가 끝나있어야 3순환 모강을 들으면서 마지막 다지기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체계적 정리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이게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각 과목에 대한 정리노트를 만들고 암기해 나갔습니다.


민법의 경우 민법강의(김준호)에 나오는 사례와 민법교안(노재호)에 나오는 사례와 판례들을 모두 풀어보았고 틀린 문제는 체크해 두었다가 맞을 때까지 계속 반복적으로 풀었습니다.


또한 사례를 풀 때 목차와 내용구성은 박효근 법무사의 ‘주관식 민법’책의 내용을 암기하여 대입하는 방식으로 풀어 여러 책의 사례를 풀더라도 암기의 기본은 박효근 법무사의 책으로 단권화 하였으며 이러한 방법은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로 시험전날 그리고 시험당일 아침에 전체를 일회독 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되었습니다.

민사소송법 역시 마찬가지로 박효근 법무사의 교재가 암기의 기본이 되었으며, 신민사소송법(이시윤), 사례 민사소송법(이창한)을 여러번 반복하여 보았습니다.


형법은 따로 기본서를 보지 않고, 송춘근 선생님의 교재로만 공부를 했고, 신경향 형법사례연습(이재상)을 보았습니다.
형사소송법은 김영환 선생님의 단문교재와 프린트를 중심으로 암기하였고, 사례는 이재상 선생님의 사례집과 기본서를 보았습니다.


사실 형사소송법은 가장 애를 먹었던 과목이었는데, 김영환 선생님 강의가 재미있었기 때문에 수업시간은 잘 지나갔지만, 나중에 혼자서 공부를 하려다보니, 그 방대한 양과 어느 선까지 터치를 해야하는 지 감이 오지 않는 대표적인 과목이었습니다.


학원수업에 대한 절대적 신뢰로 공부방법을 구성하기로 했습니다. 1차로 수업시간에 준 프린트의 사례와 판례들, 2차로 신형사소송법연습(이재상)의 사례들을 철저히 정리하고 암기하였습니다. 기본서는 신형사소송법(이재상)을 보았는데 3회독 정도만을 보고 시험에 임박해서는 보지 않았습니다. 또한 김영환 선생님의 단문집 역시도 수업시간에 중요하다고 체크해주신 부분들은 철저히 암기해두었지만 중복되는 부분은 과감히 제외함으로써 분량을 줄이려고 노력했습니다.


부동산등기법은 3순환전까지 대략 45여개 정도를 암기했고 혹시 준케이스로 나올지 모르는 부분은 조금 더 눈여겨서 보아 두었습니다. 시험직전까지 A급 40개와 B급15개, C급 15개 정도를 암기했는데, 이번 시험은 C급에서 50점짜리, A급에서 20점짜리가 나와 42점을 받는데 그쳤습니다.


3순환일정이 되어 다시 학원으로 돌아와보니, 동차준비를 할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험생들 대부분 눈에 띄게 실력이 향상되어 있었고 이제부터 본게임이 시작되었구나 하는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매일 모의고사를 보면서 부족한 부분을 파악하여 보충하였고, 사시2차 기출문제 우수답안책자를 구입하여 판례와 같은 결론을 내고 그에 따른 목차구성을 하는 연습을 하고 사시 우수답안과 비교도 해보고 하였습니다.


또한 실무교재에서 반드시 한 두문제는 출제 될 것이라 생각되었기에 서울법학원 배병한 법무사가 마지막에 건내 준 ‘민사재판실무연습’ 교재를 시험장 가는 날 아침까지 계속하여 반복하여 보았으며, 폴라리스학원의 이천교 법무사가 제공해준 사법연수원 문제를 모두 체크하며 보았습니다. 이 두 교재는 제가 고득점을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교재라 생각됩니다.


기득권 수험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다음이란 내게 없다’입니다. 공부를 더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고, 체력 역시도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 다 써버린 느낌으로 버텼습니다. 합격하기 위해서는 아쉬운 여지를 남겨서는 안된다 생각했습니다.


남들이 ‘설마 이것까지 나오겠는가’라고 생각하여 제외시킨 논점이 내 생각에 자꾸 어떤 여지가 남는다면 그 논점은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0%가 아닌 50%만 준비해도 그 문제가 나왔을 때 나는 불의타에도 불구하고 합격을 할 수 있지만, 전혀 준비를 해 두지 않으면 그 문제 때문에 나는 떨어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감사하는 분들


우선 저의 합격소식을 듣고 가장 기뻐했을 하늘에 계신 엄마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또한 물적으로 심적으로 항상 저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2년을 뒷바라지해준 남편께 고마움을 전하며 다른 엄마처럼 잘 챙겨주지 못했음에도 예쁘게 잘 자라준 딸 하경이와 아들 정민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힘든 수험기간동안 동고동락을 같이하며 서로의 힘이 되었던 승숙언니와 은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 글을 마치며


없는 글재주에도 불구하고 장문의 글을 두서없이 적어 내려간 이유는 저 역시 수험기간 내내 다른 이들의 합격수기를 통해 힘을 얻곤 했기 때문에 저의 글이 또 다른 수험생에게 혹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입니다.
오늘도 자신의 꿈을 위해 힘든 수험생활을 버텨내고 계시는 예비법무사들, 조금만 더 힘내십시오. 여러분의 노력은 반드시 합격이라는 값진 결과물로 돌아올 것입니다.

<바로잡습니다>
12월 31일자(614호) 4면에 실린 인터뷰 기사의 제목에서 ‘법무사시험 수석 인터뷰-성미해’는 ‘법무사시험 수석 인터뷰-성미애’의 잘못이기에 바로잡습니다. 이름이 잘못 표기된 점에 대해 성미애씨와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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