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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교수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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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교수의 세상의 창
  • 법률저널
  • 승인 2010.08.27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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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학장/변호사/시인

정말 추접스럽다!

추접스럽다. 이번 주 내내 계속해서 열리고 있는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 및 신임장관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면서, 나도 모르게 혼자 중얼거리게 된 말이다. 정말 저렇게 추접스럽게 살면서 잘도 고위층 인사가 되었구나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한편으로는 저렇게 추접스럽게 살지 않으면 대한민국에서는 고위층이 될 수 없구나 하는 자괴감마저 드니 이 일을 어찌할꼬.


하나 같이 모두 범죄자들이다. 그냥 도덕적 비난받을 정도의 잘못을 저지른 정도가 아니라, 모두 징역 몇 년씩에 해당하는 실정법을 위반한 범죄자들인 것이다.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는 말을 실감하면서, 변호사로서 법조계에서 일을 했었기에 나도 모르게 무슨 무슨 범죄를 저질렀는지 그들의 청문회 답변 가운데에서 해당되는 죄명이 뇌까려진다. 주민등록법 위반에서부터 직권남용죄, 조세포탈범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범죄를 저질러 놓고, 버젓이 사회지도층으로 활동하면서, 국록을 먹고, 법을 집행한답시고, 선진조국을 만든답시고 아랫것들 앞에서 호통을 쳤을 모습을 생각하면 가증스럽기조차 하다. 세상에 가장 무서운 죄 하나 있으니, 그것은 들킨 죄 아니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 후반기 정책 모토가 친서민정책수행과 공정한 사회실현임을 밝히고, 그 실천의지를 지난 8ㆍ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번 개각인사청문회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말 따로 행동 따로”임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능력만 있으면 다인가? 도대체 무엇을 능력 있다는 판단의 기초로 삼았단 말인가? 이런 저런 탈법을 일삼고, 부동산투기에 광분하고, 公私關係 불분명하게 국가 예산을 불법으로 전용하여 개인 용도로 착복하는 행태를 청문회 직전까지 안 들키고 공공연히 해 온 것을 능력 있는 것으로 평가했단 말인가? 저렇게 잘못된 자들을 어떻게 인사검증시스템에서 다 알았을 것인데도 천연스럽게 후보자로 결정할 수 있었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모르고 했다면 검증시스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고, 알고도 했다면 이는 국민을 우롱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건 아니다, 정말 아니다. 의식이 깨어 있는 자라면, 적어도 스스로에게 정의가 무엇인가라고 한 번이라도 물어본 경험이 있는 자라면, 이런 후보자들을 무더기로 다수결로 통과시켜 준다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언제부터 대한민국이 이렇게 수치심이 말살되어 버린, 추접스런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넘어가도 될 만큼 비도덕적이고 몰염치적이며 황당무계한 나라가 되었단 말인가? 이렇게 해서 어떻게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올바르게 법을 지키며 살라고 훈육할 수 있으며, 무엇이 올바르고 잘못된 것인지 가정에서,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면서도 그 잘못을 범해온 자들은 약한 자들이 조금이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서슬 시퍼렇게 법의 칼날을 들이대며 목을 치고 가슴을 치고 영혼을 치지 않겠는가?


이건 죄악이다. 정의와 불의의 경계를 허물고, 옳고 그름의 벽을 허물어뜨려, 맑은 물과 탁한 물을 한데 섞어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니게 만들고, 모두를 흙탕물 속에서, 진흙 뻘구덩이 속에서 발버둥치게 하고,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만드는 것은 분명코 역사 앞에서 죄악이다. 이렇게 혼탁한 세상을 만들어 버리면 다시 이를 맑고 깨끗하게 복원시키는 데는 일, 이년이라는 짧은 시간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력을 기울여야 다시 맑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 참담하다. 여기까지 달려오는데 광복 65년이 걸렸다. 아직도 부족한데,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직도 요원한데, 이렇게 앞으로 달려 나가도 시원찮을 판에 가속도로 뒤로 돌아 달리고 있는 것은 해괴망칙한 반역사 아닌가?


먹고 사실만한 분들, 이제 한 끼 식사에 목매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 왜 최저생활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득으로 허리띠 졸라매며 서럽게 살아가는 백성들의 심장에 대못을 박는가? 스스로 물러날 용단을 보여야 할 자들이 이번 개각인사 후보자들 중에는 너무나 많다. 하지만 그들의 입으로 나오는 “죄송하다, 미안하다.”라는 말은 가증스러울 뿐이다. 죄송하다 또는 미안하다는 말 속에는 참회가 있어야 하고, 그 참회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아무도 행동하는 자가 없다. 오로지 말뿐이다. 잘못했단다? 무엇을?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하고 물으면, “그냥 이대로 넘어가시죠.”이다. 그냥 넘어가잔다. 기가 막히고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개학하고 학생들 앞에서 또 다시 “법이란?” 주제로 강의를 시작해야 할 처지에서 스스로 곤궁하고 난감하다.


모두가 계속 잘못을 되풀이하면서, 입으로는 바람 풍 하면서, 몸으로는 바담 풍 하며 살아갈 것을, 왜 대통령이 앞장서서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가? 역사는 私利에 밝은 사람이 공직에 취임하면 얼마나 많은 폐악을 끼치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모든 것이 내 이익이 중심이 되어 판단의 잣대로 기능하니, 모든 일이 엉망진창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가 처음 발표되었을 때, 도하 신문면에는 그의 품성에 대하여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하여도 “형님, 동생”하며 친화력이 강하다는 칭찬이었고, 그러한 성품 좋은 성격으로 국정을 친화력 있게 이끌어갈 것으로 기대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보도를 보는 순간, 갑자기 머리가 띵해졌고, 골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 “형님, 동생”하며 친근한 척 하는 친구치고 제대로 된 친구를 별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처음 보는 사람하고 갑자기 “형제지간”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형제지간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가? 뼈 속에 뼈가 흐르고, 피 속에 피가 흘러야 되는 사이가 바로 형제지간 아닌가? 결국 아무나 붙들고 형님, 동생 한다는 것은, 당신과 나는 밥도 아니고 죽도 아닌 사이라는 것밖에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공ㆍ사가 불분명하고, 매사의 경계가 모호하며, 이익이 되면 경계를 넘다가 손해가 되면 경계의 담을 쌓아버리는 사람들이 흔히 보이는 형태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형님, 동생”하며 접근하는 유형의 사람들이다. 우선 당장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우선 먼저 형님, 동생하고 불러대니 상대방도 그냥 호형호제하며 이것저것 내어놓게 되고, 그것이 빌미가 되어, 공무를 수행하는 자에게, “어이, 동생, 나 왔네.”하면서 청탁하게 마련이고, “아이쿠, 형님, 저 좀 도와 주십시오.”하고 되지도 않은 일을 싸들고 와 사람을 괴롭히기 마련이다.


그럴 경우 어쩔 거냐? “형님, 동생”이라 불러버렸으니, 안 도와주면 형님, 동생을 배신한 것이 되고, 도와주자니 형님, 동생 불렀던 호칭이 무색해지지 않겠는가?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그의 인물평에 대한 신문기사에서 아주 쉽게 “형님, 동생”하고 부르면서 마음에 들면 사람을 업고 한 바퀴 돌기도 한다는 기사를 보면서, 정말 나는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청문회과정에서 재산신고과정에서 빚어진 수많은 착오나(착오도 십여차례가 넘으면 고의로 보이지 않겠는가?), 돈의 씀씀이나, 10억 원이 넘는 선거자금을 시금고인 해당 은행으로부터 부당하게 대출받은 것이나, 무엇보다도 “장모로부터 생활비를 지원받았다”는 대목에서는 아연실색해지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도지사를 지내는 사람이 처갓집에서, 그것도 경제력이 별로 없어 보이는 장모로부터 매달 생활비를 지원받는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고, 말이 되는가? 정말 말이 되는가? 정말 정말 말이 되는가? 도지사나 되는 고위직 공무원이 장모로부터 매달 생활비를 지원받아야만 살아나갈 수 있는 슬픈 나라, 그게 대한민국이라는 것이 나는 정말 수치스럽다. 아니 정말 슬프다. 그러면 하위직 공무원은 사돈의 팔촌으로부터 생활비를 지원받아야 하는가?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인가?


하지만, 임명권자나 여당인 한나라당은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겠다며 한 치도 양보하지 않을 태세이다. 지명철회는 있을 수 없으며, 자진사퇴도 없을 듯한 청문회전개과정을 지켜보면서, 왜, 잘못된 것을 스스로 시정하는 자정능력을 상실해버렸을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정말 궁금하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정직이다. 솔직한 사람, 잘못을 스스로 깨닫고 물러나는 사람을 보고 싶을 뿐이다.


“형님, 오늘 저녁 술 한 잔 어때요?”, “동생, 자네 나랑 저녁에 술 한 잔 할란가?” 무슨 술 하겠냐고? 그거야 당근 “거짓말술이지!” 내가 술 한 잔 하자는 말을 참말로 믿었단 말인가? 참으로 순진하이, 순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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