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변의 미국법 이야기(5) [과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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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변의 미국법 이야기(5) [과실]
  • 법률저널
  • 승인 2009.10.30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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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욱 미국변호사

 

과실법Negligence (過失法)

미국 변호사시험에 가장 많이 등장하며, 실제 변호사 활동에서도 가장 많이 들여다보게 되는 개념, 과실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미국법에서 과실을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그 과실을 범한 사람이 특정한 기준의 행동을 따라야 할 의무가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다시말해서, 과실을 범한 사람이 그 상황에 그런 과실을 범해서는 안될, 내지는 그런 과실을 막아야 할 의무가 있었는가 하는거지요.

그렇다고해서 이 의무가, 승객을 보호해야만 할 버스 운전자나 기차의 차장, 혹은 호텔의 종업원에게만 적용되느냐하면 그런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기본적으로 지켜야하는 행동의 규범들 또한 이러한 의무에 속하니까요. 예를 들어 운전하는 동안에 위성티비를 보는 행위 역시 사회의 기본 규범에 맞도록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과실법의 요소는?
① 의무 Duty ② 그 의무의 위반 Breach of that duty ③ 위반과 피해사이의 인과관계 Causation ④ 피해 Damage.

참고로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② Breach of duty를 검색하니 쌩뚱맞게도 “배임죄”라고 번역되어 나오는데요. 배임죄는 사실상 미국법 상의 embezzlement나 larceny by trick과 더 가까운 개념이고 ②와는 거리가 먼 내용입니다. 아무튼 과실법의 요소 네가지 가운데서 가장 많은 분석을 요하는 부분은 ①과 ③인데요, 특히 ① 의무의 분석이야말로, 미국 과실법의 핵심이라 하겠습니다. 오늘은 ①의무에 관련한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과실법상의 의무란?
우리 기준으로는 좀 우습게 들릴수도 있겠지만, 미국법상의 법적 의무는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때 보통의 신중하고 합리적인 사람으로 행동할 법적 의무를 진다는 것입니다. 상당히 애매모호한 이야기지만, 이 가상의 인물 ? 보통의 신중하고 합리적인 사람 ? 은 다른 이에게 가해질 비합리적인 상해의 위험을 막는 모든 주의를 다 기울이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대체 이런 사람이 실제로 있기나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상관없다”입니다. 그 실존 여부와 상관없이 미국법적 잣대는 우리가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이러한 법적 의무를 지고 있음을 전제로 깔고 있습니다.

 

과실을 범하면 무조건 책임을 지나요?
아닙니다. 과실을 범한 사람이라도 오직 예측 가능한 (Foreseeable) 피해자에 대해서만 책임을 집니다. 이 책임문제에 관해서는 미국 과실법 역사에 획을 그은 유명한 뉴욕 최고 고등법원 판례인 팔스그래프 사건 Palsgraf v. Long Island Railroad, 248 N.Y. 339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니가 거기서 다칠줄 내가 알았니? Palsgraf v. Long Island Railroad 248 N.Y. 339; 162 N.E. 99; 1928 N.Y.
롱아일랜드의 기차역입니다. 기차가 막 출발하는 순간 한 남자가 간신히 기차에 매달렸지만 간당간당 위험한 상태입니다. 이를 본 기차내의 차장은 그남자를 당겨주고, 플랫폼에 있던 역내 승무원은 그남자를 밀어주어 기차에 태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이러는 와중에 그만 남자의 가방이 플랫폼에 떨어지고 맙니다.

역무원이나 차장은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 그 가방엔 불꽃놀이가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불꽃들이 폭발하면서 난데없이 롱아일랜드 기차역은 폭죽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러한 폭죽들의 폭발에 따른 진동으로 말미암아, 이 플랫폼의 다른쪽 끝에 있던 저울이 쓰러지게 되고, 이는?기차를 기다리던 팔스그래프 여사 위로 넘어져 그녀에게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이에 팔스그래프는 롱아일랜드 기차공단을 고소하게 됩니다. 1심과 2심은 팔스그래프 여사의 손을 들어줍니다.

하지만 그 역사적인 판결문에서 당시 뉴욕주 최고 고등법원 판사 카르도조(Justice Cardozo)는 이 결정들을 뒤집습니다. 요지는 팔스그래프씨가 예측 가능한 피해자가 아니라는 이유입니다. 비록 역무원들이 과실을 범해서는 안될 위치에 있긴 하지만 (duty), 그 과실로 인해 플랫폼의 다른쪽 끝에 서있던 팔스그래프씨가 폭죽 그 자체도 아닌,?폭죽으로 발생한?진동으로 쓰러진?저울에?의해서 입게된 예측 불가능한 상처에까지 책임을 질 의무는 없다는 내용이지요. 이 내용은 다음주에 이야기 될 인과관계 Causation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카르도조 판사는 이 판결문에서 유명한 단어를 조합해 냅니다. 그것은 바로 “Zone of Danger”, 즉 위험지역이라는 건데요. 이는 설사 명백한 과실이 발견되더라도, 피해자가 예측 가능한 위험지역에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해를 입었다면 과실을 범한 사람이 이를 보상할 의무가 없다고 결정 내린 것입니다. 이 당시 뉴욕주 최고 고등법원 판사였던 카르도조 판사는 결국 훗날 미국 연방대법원 판사로 임명되어 미국 법역사를 다시 쓴 위대한 판사중의 한 명으로 기억되게 됩니다.

 

박태환 선수의 의무?
어느 날 박태환선수는 동네 수영장에서 쉬다가 혼비백산하게 됩니다. 여자친구와 “황태자의 첫사랑”이란 영화를 관람하기로 한 시간이 세시인데 벌써 시간이 두시 오십오분이네요. 헐레벌떡 나서는 와중에, 박선수를 제외하곤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 수영장에 어떤 네살짜리 꼬마가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 깊이라든가 모든 면에서 우리의 박태환선수에게 그 꼬마를 구해내는 일은 누워서 떡먹기보다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지난주에 여자친구와 심하게 다툰데다가, 근래와서 그녀가 아이돌그룹 2PM에 지극한 관심을 보이는 일이 마음에 걸렸던 박선수는 그 상황을 무시하고 극장으로 향하게 되고, 박선수가 구해줬더라면 살 수 있었던 그 꼬마는 그만 허우적대다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꼬마의 부모는 박태환선수를 고소합니다. 과연 박태환선수는 과실을 범한걸까요? 또 미국법상에서 애완동물 주인은 어느선까지 그 동물의 과실에 대해 법적의무를 지게 되는?것일까요? 이에 관해 며칠후에 또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http://blog.naver.com/resjudicata?Redirect=Log&logNo=20089451649>

 

류영욱 미국변호사는…
변호사 자격: 뉴욕, 뉴저지, 워싱턴 DC州
연방 변호사 자격: 뉴저지 연방법원, 국제 무역 재판소 (The Court of International Tr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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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현역제대 (1996)
학사, 서강대학교?(1999)
미시간 주립대 편입, 1년만에 우등졸업, B.A.(2000)
페이스 로스쿨, J.D.(2004)
- 공법학회 장학금(2002)
- 법률보좌 (Legal Fellow), 前 뉴욕주 상원의원 힐러리 클린턴 (2003) - 석면보상기금 법안, 국토방위법, 이민개혁법안 및 Native American 지위개선법안등에 참여.
- 회장, 국제법학회 (2003)
- 최우수 토론자상, 국제 형사법 Moot Court 프로그램 (2004)
Assistant Legal Officer, 국제 형사 재판소 (2004-2006)
법학석사, 조지타운 University Law Center (2006 - 2007)
Associate, Morrison & Foerster, LLP (~2008)
Associate, New Tropicana Estates, Inc (現)
정회원, 전미 변호사협회 산하 변호사 윤리 위원회 (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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