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의 오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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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의 오발탄
  • 백형구
  • 승인 2001.09.13 0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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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서적을 쓰면서 학문적 오류를 범한다는 것은 학문적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실수로 학문적 범죄행위를 저질렀으므로 그 학문적 범죄행위는 학문적 오발탄(誤發彈)에 해당한다.

 

  학문의 깊이와 넓이를 어렴풋이 느끼게 된 뒤부터는 책을 탈고하고 나서 혹시 틀린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인간이기에 틀릴 수 있다는 변명은 학문의 세계에서는 통하지 아니한다. 내가 쓴 책에서 틀린 내용을 발견할 때면 독자들에게 죄를 지었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편치가 않다.


 우리 나라 법률학자들이 쓴 법률서적을 읽다 보면 학문적 오류를 많이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면 법률규정의 해석을 아주 틀리게 한 경우, 대법원판례의 해석을 틀리게 한 경우, 다른 학자의 학설을 잘못 소개한 경우, 다른 학자의 학설을 자신이 제창한 학설인 양 쓴 경우가 눈에 띈다. 도저히 이론적 합리성을 인정할 수 없는 학문적 주장을 내놓는 경우도 없지 않다. 지극히 우려할 만한 현실이라 아니할 수 없다.

 
  법률서적을 쓰면서 학문적 오류를 범한다는 것은 학문적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실수로 학문적 범죄행위를 저질렀으므로 그 학문적 범죄행위는 학문적 오발탄(誤發彈)에 해당한다. 학문적 오발탄으로 인한 피해자는 누구인가. 그 법률서적을 읽은 독자들이다. 학문적 오발탄으로 인한 피해는 결코 적지 않다. 학문적 오발탄의 발사는 학문적 병균의 확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문적 범죄행위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뾰족한 대책이 없다. 형법이 규정하고 있는 죄를 지은 사람은 붙잡아다가 처벌할 수 있으나 학문적 범죄를 지은 학자에 대해서는 처벌할 길이 없다.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 나라에 학문적 오발탄이 난무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 나라 학자들의 자만 내지 자기과신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자만은 학문하는 사람이 지녀서는 안 될 자세이다.


  논어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子曰 … 不知爲不知是知也" 알지 못하면 모른다고 하는 것이 참된 앎이라는 孔子의 가르침이다. 학문에는 준공이 없으니 학문의 대가인 양 뽐내서는 안 된다는 뜻이 담긴 명언이다.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체한다는 것은 명백한 악덕(惡德)이라는 사실을 지적한 교훈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의 현실은 어떠한가. 속은 비어 있으면서 지식을 과장하는 학자들이 우리 주변에 즐비하다. 사계(斯界)의 최고권위자(?)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이며 자칭 석학(?)은 우후죽순격이다. 무지의 가장행렬에 현기증을 느낀다는 어느 교수의 개탄에 공감이 간다.


  학문적 미성년자가 학문적 성년자인 양 착각하고 학문적 내용이 담긴 책을 쓴 경우 또는 학문적 체계도 갖추지 못한 학자(?)가 학문적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책을 발간한 경우에는 그 책은 십중팔구 학문적 오발탄일 수밖에 없다. 학문적 체계를 갖추지 못한 학자가 학문적 체계를 갖춘 책을 쓴다는 것은 원시적 불능이기 때문이다. 다른 학자가 쓴 책의 내용을 순서만 바꿔서 자신의 저서로 발간하는 행위는 학문적 절도행위에 해당한다. 책을 쓸 능력이 없으면서 책을 쓴다는 것은 주체의 착오에 해당한다.


  우리 나라 학자들이 책을 출판하는 것을 왜 그리 서두르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충분한 실력을 쌓은 후에 천천히 책을 써도 결코 늦지 않다. 책이 일단 발간된 후에는 그 책의 저자는 그 책의 내용에 대해서 100%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중시하여야 한다.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는 학자들이 학문적 오발탄을 발사해서는 안 된다. 이는 학자의 양심적 의무에 속한다.


  우리 나라에는 학자가 발사한 오발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이나 경제인이 발사한 오발탄도 있고, 예술인이나 종교인이 발사한 오발탄도 있다. 그러한 오발탄으로 인한 피해자는 우리 국민이다. 그 피해의 규모도 엄청나다.


  그러나 학자들은 정치인·경제인·종교인·예술인의 오발탄을 매도하기 전에 자신들이 발사한 오발탄이 독자들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고 있는가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

 
  학자들이 오발탄을 발사한다는 것은 학문적 범죄행위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不知爲不知! 우리 나라 학자들이 가슴속에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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