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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의 미대통령 당선을 지켜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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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의 미대통령 당선을 지켜보며
  • 법률저널
  • 승인 2008.11.1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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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교수의 세상의 창
 
  오늘 아침, 나는 쥬셉베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중 “히브리노예들의 합창”을 반복해서 듣는다. 흑인 버락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됨을 확인한 순간, 티비이 화면을 통해 눈물 한 방울 흘리며 입술을 깨물듯 의미심장하게 미소 짓는 오바마의 한 서리면서도 침착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저 노래를 듣고 싶은 강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반복해서 저 음악을 들으며 그래도 인간에게 희망이 있음을 본다. 우리 인간에게 마지막 순간에 이성을 찾으라는 강한 메시지를 신이 선물하고 있음을 본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몰락의 길을 벗어날 수 있음을 본다. 
  많은 성악가들이 저 노래를 불렀지만, 나는 지금 우리나라에도 몇 차례 내한공연을 다녀간 나나무스꾸리가 부르는 히브리노예들의 합창을 들으며 유프라테스강가에서 지친 몸으로 빼앗긴 고국을 그리며 남의 나라에 포로로 잡혀온 히브리노예들의 애절한 마음을 느낀다.
바벨로니아제국의 느브갓네살왕에게 포로로 잡혀온 히브리노예들, 유대인 노예들이 조국 이스라엘, 고향땅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부르는 저 노래는 들을 때마다, 부를 때마다 가슴을 저며 오는 울림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구약성경 열왕기상에 나오는 이스라엘민족의 포로시대가 그 배경인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2,500여 년 전 바벨로니아제국에게 멸망한 유대국 이스라엘 민족은 1948년에 이스라엘 국가를 세울 때까지 2,5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나라 없는 설움을 겪으며 온 세계를 떠돌아야 했다. 

  베르디가 저 오페라를 작곡하여 밀라노의 라 스칼라극장에서 초연한 1842년 3월 9일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흐른 1862년 9월 22일, 에이브라함 링컨은 흑인노예제도폐지를 선포하였다. 유럽에서 울려 퍼진 나부코의 정신이 알게 모르게 북중미 대륙을 강타한 것이다. 온 지구가 하나의 놀라운 섭리 속에서 운행하고 있음을 절감한다. 시대사조의 흐름은 그러기에 무섭다.

  그로부터 146년의 세월이 흐른 2008년 11월 4일, 미국민은 아프리카의 케냐 출신의 아버지를 둔 흑인 오바마를 미국의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선거혁명을 일으켰다. 이것은 인류역사에 길이 남을 빛나는 무혈혁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오페라 나부코가 초연되었을 때 당시 오스트리아의 침략으로 학정에 시달리던 이탈리아의 밀라노 시민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히브리노예들의 처지에 빗대어 생각하며 슬픔을 달랬고, 애국심을 불태웠다. 마치 국가처럼 저 노래를 불렀고, 베르디에게 열광하였다고 한다. 노래 한 곡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힘이다.

  조국을 빼앗겨보지 않은 자, 노예의 비참한 삶을 살아보지 않는 자가 어찌 나부코의 “히브리노예들의 합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날아라, 생각이여/금빛 날개를 타고 요단강 저편의 잃어버린 고향 땅으로 가자꾸나/오, 지금은 잃어버린 아름다운 그 땅/하느님의 예언자가 울리는 황금의 수금이/영원하고 즐거운 위안을 선물하리라/고국의 비탈과 언덕에서 날개를 접어라/그곳은 부드럽고 온화한 공기 가득해/조국의 향긋한 공기 맡아보자/요르단 강둑과 무너진 탑/오, 내 조국, 빼앗긴 내 조국/내 조국 유대 땅 원수들의 멍에를 벗어나리!"라는 가사로 되어 있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들으면 들을수록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곡이다.
그 곡에 숨어 있는 의미까지 이해하면 감동은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도 나라를 빼앗긴 것은 아니지만, 그 외 다른 많은 것들을 빼앗긴 사실상의 노예들이 길거리에 넘쳐나고 있다. 그들이 현실적으로 겪는 비통함 역시 다를 바 무엇이겠는가?

  나부코를 작곡하기 직전의 베르디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실의에 잠겨 있었다고 한다. 슬픔으로 두문불출하던 그를 보다 못한 라 스칼라 극장주 메렐리가 나부코의 대본을 넌지시 베르디에게 전했고, 어느 날 이 대본을 펼쳐든 베르디가 신의 감동을 받아 단숨에 작곡한 것이 나부코였고, 히브리노예들의 합창이었다고 한다.

  역사의 상징성은 참으로 크다. 노예해방을 선언한 링컨대통령의 출신주는 일리노이주이다. 오바마 당선자 역시 일리노이주 출신 연방 상원의원이다. 일리노이주 출신인 링컨대통령이 166년 전에 노예해방을 선언했고, 그곳 출신 오마바 상원의원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성경은 씨를 뿌리는 자는 씨를 뿌리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가르친다. 키우는 이는 하나님이고, 그 하나님의 뜻에 의해 거두는 자 역시 결정된다면서, 씨를 뿌리는 자가 열매를 거두려는 욕심을 갖지 말 것을 가르친다. 결국 인간의 탐욕이 적당한 곳에서 멈추어 서야 함을 가르친 것이다.

  네오콘에 휘둘리며 스스로 보수주의자가 되어갔던 미국민들이 왜 “change”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47세의 젊은 이단아 오바마에게 열광하며 몰표를 던졌을까? 나는 이 순간 세계 공통적인 보수 집단의 야비한 변신을 본다. 나라를 말아먹어버린 초극보수주의자 부시의 어리석음과 그를 추종하던 세력들의 몰락을 본다.
오로지 자신의 힘을 내세우며 세계 곳곳에 폭탄세례를 안김에 주저하지 않았던, 남의 나라 국민들이 비참하게 죽어나가는 모습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으며 총부리를 겨누었던 미국인들이 그들의 뜻과 달리 세계평화는 고사하고 테러의 공포에 시달리며 세계인들로부터 외면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전비 조달 등 잘못된 자본 배분으로 빚어진 경제공황 직전의 경제적 위기에 내몰리며, “아차, 이러다 나 죽겠다” 싶어 우선 “나부터 살고 보자”는 다급함으로 종전의 가치를 손바닥 뒤집듯 뒤집으며 오바마의 진보를 택하며 변신하는 보수주의자들의 비겁함을 본다.

  버락 오바마의 앞길은 순탄치 않을 것이다. 마치 10년 전 아이엠에프를 맞아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허리띠 졸라매며 간신히 기사회생했던 것처럼, 버락 오바마 역시 경제난국을 수습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합리적 이성주의에 기초한 미국민들의 가치관은 동서로 나뉘어져 색깔론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 대한민국보다야 나을 것이어서 보다 쉽게 극복의 길로 들어설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소수자인 흑인 출신 오바마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그의 성공을 바랄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보수의 벽은 강하고 두껍다. 지금 당장 발등에 떨어진 금융위기 때문에 숨을 죽이고 있겠지만, 미국의 새 대통령 오바마가 열심히 경제를 회생시켜 나가는 동안에, 공적 자금의 투입을 통해 금융가를 비롯한 자본가 집단인 보수집단들은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볼 것이다. 반면에 미국의 서민들은 아이엠에프사태를 겪은 우리나라 서민들처럼 더욱 주머니가 마를 것이고, 빈부간의 격차는 벌어져버릴 것이다. 그게 자본의 생리이고,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간다는 우리나라 속담의 뿌리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다 오마바 민주당 정권의 집권이 8년쯤 지나면 미국의 보수집단은 다시 엄청난 힘을 비축하게 될 것이고(마치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대국놈이 번다는 속어처럼 말이다), 종래의 패턴대로 백인 출신의 정치가를 새로운 대통령으로 뽑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흑인들의 위상은 어느 정도 높아지겠지만, 모르긴 해도 8년의 세월로 그들의 위상이 백인의 어디쯤을 쫓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모르긴 해도 여전히 흑인들의 대부분은 할렘가를 헤맬 것이고, 낮은 경제적 형편 및 낮은 교육수준으로 미국 주류사회의 구성원으로 포진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적 자본, 물적 자본 등 베이스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흑인 출신의 대통령을 맞이하며 그들의 자부심은 극대화될 것이며, 이러한 자부심의 향유는 그들의 가치관을 변화시킬 것이고, 다시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엄청난 학습효과를 유발할 것이다. 그로 인해 가치와 현실이 유리되어 떠도는 괴리현상을 상당 기간 겪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진보해 나갈 것이다. 그게 역사의 순환논리이다.

  마치 우리나라가 지난 10년 동안 진보세력 집권 후 한나라당의 보수세력 집권이 이루어진 것처럼 미국도 그러한 홍역을 한 번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버락 오마바 후보가 당선된 오늘, 미국민은 위대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의식 속에 오래 전부터 잠재되어 있던 “Separate but Equal"이라는 황당한 "분리평등정책”이 그의 통치기간을 통해 완전히 소멸될 수 있기만을 바란다. 형식적 평등이 아닌 실질적 평등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버락 오바마의 새로운 정책이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몇 번을 들어도 히브리노예들의 합창은 은혜롭고 경건하다. 옷깃을 여미는 겸손을 가르친다. 오바마가 이 음악을 듣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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