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저 푸른 5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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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저 푸른 5월로
  • 최용성
  • 승인 2001.09.13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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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5월의 광주를 거친 다음 5월은 더 이상 봄이 아니었다. 화려한 꽃이 만발하여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는 5월.  80년대의 암울한 시절에 광주는 때로는 원죄의식으로, 때로는 불굴의 용기를 가져다주는 동력원으로 작용하였다. 군사파시즘의 폭력성과 외세,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극복하여야만 할 당위성을 내면적으로 체득하게 만든 화두가 바로 1980년 5월의 광주였다. 나처럼 소심하고 조심스럽게 80년대를 보내온 사람에게조차도 광주는 늘 돌아가야 할 민주주의의 출발점이었고, 끊임없이 갚아야 할 역사의 빚이었다.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 나는 그날의 광주 정신을 계승하면서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물론 아니다. 일상의 늪 속에서 광주는 매일 잊혀진다. 그러나 그래도 5월이 오면 내 마음 어디선가 광주의 울림이 전해져온다. 진실은 아직 모두 드러나지 않았고 항쟁이 제기한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학살의 원흉들은 더러운 지역감정에 빌붙어 살아남았고, 광주를 지역문제로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아직 우리 주변에는 많다. 광주를 잊거나 외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젊은 대학생이 '남의 아버지 제삿날에 우리가 왜 슬퍼해야 하는가'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을 만큼 세상은 많이 변했다.

 

  이러한 현실을 보며 나를 포함하여 80년 5월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당혹감은, 어쩌면 6.25 세대나 보릿고개 세대가 느꼈던 세월 앞의 무력감과 통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상처를 안고 간 사람들과 그 친지들, 그리고 그것을 함께 기억하면서 의미부여를 하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역사만이 남을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흘러가리라. 그래도 아직은 이럴 수 없다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하기는 지나친 비장미가 파시즘 문화와 통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역설적으로 이처럼 엉망으로(!) 자유롭고 속박되지 않으려는 분위기야말로 80년 5월의 광주를 통하여 이루려던 이상(理想)의 한 부분일 수도 있겠다.


  바로 그 광주항쟁 20돌을 기려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러 간 민주당 '386' 세대 정치인들이 있었다(나는 386세대라는 단어를 아주 싫어한다. 이것은 80년대 민중민주운동이 갖는 역사성을 대학을 나온 사람들만의 전유물로 삼으려는 의식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는 천박한 상징조작이다. 386 세대라는 표현을 의사소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능한 한 사용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그런 맥락에서이다).

 

  그런데 그날 밤 광주에서 신진 정치인들은 접대부의 시중을 받으며―여성의 상품화!― 술자리를 벌였다. 나는 망월동 묘역 근처에도 가본 일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광주 때문에 어떤 작은 희생이라도 치른 일이 없기 때문에 이 일을 거론하고 나서는 것이 어딘가 미안하고 마음 편하지 않다. 그런 점을 떠나서라도 한국 남성들의 일상적 유흥문화 수준을 놓고 보더라도 그들을 비난하는 도덕군자연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어쩐지 코미디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짚고 가려는 문제는 술자리 자체가 아니라 그 다음 이야기이다. 

  
  그에 앞서 먼저 주류 신문들의 무분별한 비난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보고 넘어가자. 한국남성들은 비공식적으로는 도덕을 초월한 남성다움을 과시할지 몰라도 공식적으로는 접대부를 불러 술판을 벌인 일을 숨기고 싶어한다. 이러한 양면성 때문에 우리 사회는 참신함과 때묻지 않음, 그리고 양심의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워온 신진 정치인들의 탈선을 보고 묘한 동질감을 느끼면서 비난을 즐기는 것은 아닐까.

 

  '잘난 체하던 놈들이 별수 없구먼'이라는 말로 요약함직한 이런 사회심리적 분위기로 인하여 광주항쟁을 폭도들의 난동으로 규정한 신문이 기다렸다는 듯이 1면 기사로 술자리를 보도하고 사설까지 동원하여 새로운 정치세력들을 싸잡아 폄하하는 일이 쉽게 통용되는지도 모른다. 개혁세력을 억누르려는 그들의 뻔한 의도는 차치하더라도 '자격 검증', '위선' 또는 '거품을 걷어내자' 운운하는 논조는 균형이 맞지 않는, 과장된 비난이다. 수도승이나 성인군자를 뽑아 철인정치(哲人政治)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면 법을 위배하거나 직무를 소홀히 한 것도 아닌 해프닝을 가지고 정치적 능력을 검증한 것처럼 떠들어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정치인에게서 기대하여야 할 것은 바른 정치이지 내 마음에 드는 생활태도가 아니다. 정치인은 국민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자주 듣는 말이지만 곰곰 생각하여 보면 전체주의적 발상과 통할 수도 있는 말이다. 모범의 기준 자체가 자의적(恣意的)이고 그것을 누가 어떻게 정하고 적용하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범의 모델을 자의적으로 상정해놓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헌법이 금지하는 행위가 아닌가. 

 
  이 사건의 본질적 문제는 실은 다른 데에 있다. 사건이 알려지고 나서 민주당의 신진 정치인들이나 그들을 옹호하는 사람들(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이 만들어내는 담론 속에 숨겨진 파시즘의 유산이 바로 그것이다(일부 386 정치인들이 현실정치에 뛰어들면서 보인 부정직한 태도 속에서 이번 사건은 예정되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점까지 건드리고 싶지는 않다). 

   
  술자리에 참석한 민주당 신진 정치인들 대부분은 진심으로 반성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이 일을 처음으로 밝힌 임수경 씨에 대하여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섣부른 행동으로 수구세력들에게 '빌미'를 제공하여 개혁을 어렵게 만들기만 하였다는 비난이 나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언뜻 들었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성찰하여 보자. 임수경을 비난하는 논리가 어디선가 많이 보던, 익숙한 억지논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군사독재에 맞서 싸우던 사람들, 통일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수구언론이 '과격한 행동'의 자제를 촉구하면서 이용당하거나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하던 말들이 늘 이런 식이 아니었던가. 그 논리를 지금 이 땅의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다시 답습하다니,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인가.


  최근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양민학살을 사죄하고 그 피해를 배상하자는 뜻깊은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처음에는 베트남 현지인들의 증언만 나오다가 참전 군인들 중에서도 용기있는 증인이 나와주어 이 운동은 지금은 일종의 역사반성운동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일제만행을 사죄하지 않는다면서 매일 일본의 국수주의를 비난하는 우리나라에서 이 문제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논리는 양민학살을 사죄하는 운동이 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총력안보를 저해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수구세력이 베트남전 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의 제주도 4·3을 비롯하여 수많은 양민학살에 관한 문제제기를 피해갈 때 즐겨 사용하던 논법이다. '빌미'론이나 '개혁세력의 약화'를 이유로 하여 임수경의 용기있는 폭로를 비난하는 논법과의 유사성이 발견되지 않는가.

 
   잘못은 잘못이다.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은 정당화할 수 없고 또 정당화할 필요도 없다. 거기서부터 파시즘의 잔재와 결별하자. 민주당의 신진 정치인들이여, 그리고 한국의 남성들이여, 우리 함께 부끄러워하자. 그 작은 출발점에 서서 다시 저 푸른 5월을 찾기 위하여 함께 길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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