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 최고령합격기]"고시는 운칠기삼보다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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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 최고령합격기]"고시는 운칠기삼보다 실력이다"
  • 법률저널 편집부
  • 승인 2008.08.08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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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옥 제46회 사시최고령 합격 동아대 법학과 졸

 

"끝까지 믿고 기다려준 아내에 감사"

●글을 시작하며
법률저널로부터 합격기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십 수년간의 수험생활이 주마등같이 스쳐지나가며 만감이 교차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지난 날 실의와 좌절에 빠져 수험생활을 포기하려고 할 때마다 용기를 북돋아 주었던 돌아가신 아버님과 어머님, 끝까지 저를 믿고 기다려준 아내에게 감사를 드리며 이 글을 쓴다. 이제는 힘겨운 수험생활에서 해방되었다는 안도감만으로도 그 어려웠던 지난 세월이 충분히 보상된 것 같다.
나의 지난 여정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조금은 쑥스럽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힘겨운 과정과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던 노장수험생의 합격기를 읽고 지금도 힘겨운 수험생활을 하고 있는 수험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글을 시작한다.

 

●실의와 좌절의 시간
나는 가난한 집안 형편 탓으로 중학교만 마치고 고등학교 진학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주물공장에서 일하면서도 항상 "배우지 않으면 출세할 수 없다. 언젠가는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였다. 또 가난한 사람이 가난에서 벗어나고 신분이 상승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법고시나 행정고시에 합격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고 힘든 일을 하는 와중에서도 시간을 쪼개어 틈틈이 검정고시를 준비하였다. 그 결과 스무살 되던 해에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하였지만, 역시 가난한 가정형편상 대학진학의 꿈을 접고 조그만 선박회사에 취업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가정형편이 조금 나아질 무렵에 조심스럽게 아버님께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좋다. 열심히 해 봐라."고 허락해 주셨다. 약 석달간 대입학력고사(지금의 수능)를 준비하여 비교적 늦은 나이인 서른살에 동아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대학 1,2학년 때에는 학교강의에 충실하려고 하였지만, 당시 시국이 어지러운 때인지라 학교는 항상 데모로 최류탄에 휩싸였고 결강하기가 일쑤였다.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는 어정쩡한 상태에서 하는 수 없이 2학년 2학기 때 휴학계를 내고 밀양 내원암에 들어가서 작은 골방에 둥지를 틀고 처음으로 고시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그 곳에서의 생활은 함께 공부하던 쟁쟁한 노장(?)들과 어울려 거의 매일 술을 마시다시피 하며 시국에 대하여 토론하였고 공부는 뒷전이었다. 그러다가 '이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짐을 싸서 하산하여 복학하였다. 복학하자마자 1차 준비반인 '법우회'(法友會)에 들어가 공부하다가, 고시기숙사인 '지독료'(志篤寮: 1차 합격자와 성적우수자에게만 입실자격을 줌) 입실시험이 있어 응시하였는데 요행히 합격하였다. 지독료에 입실하면 장학금, 숙식제공 및 학비지원 등 많은 혜택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경제적 부담없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가 있었다. 그 결과 제31회 사법시험 1차에 무난히 합격할 수 있었다. 1차를 처음 합격한 때가 자신의 고시역정에서 가장 기쁘고 기억이 오래 남는다고들 한다. 나도 그랬다.


1차에 합격하자 우선 주위의 시선이 달라졌으며, 나도 모르게 자만심에 빠졌으며 곧 사시에 합격할 것 같은 착각에 들떠 있었다. 그 자만심은 내 자신을 게으름과 방종으로 몰아 넣었다. 1차 합격은 단지 2차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에 불과할 뿐인데도 말이다.


그 결과는 가혹했다. 제32회 사법시험 2차에서 무려 8과목(그 당시에는 국민윤리도 2차과목) 중 4과목 과락이라는 비참한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때늦은 후회를 하며 제33회 사법시험 1차에 대비하기 위해 내 자신을 또 다시 채찍질하며 죽으라고 공부했던 것 같다. 또 1차는 무난히 합격하였다. 이번에는 제32회 때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지독료 지도교수님의 허락을 얻어 처음으로 신림동 땅을 밟아 보았다.

 

학원강의도 빠짐없이 듣고 열심히 공부하였지만, 제34회 사법시험 2차 시험의 결과는 억울하게도(?) 형소법 과락으로 떨어졌다. 나는 충격과 실의 속에서 세상을 원망하며 술독에 빠져 도저히 책을 잡을 수가 없었다. 오랜 동안의 방황 끝에 책을 억지로 손에 잡았지만 이미 때가 늦어 있었다. 공부한 만큼 성적이 나온다고나 할까? 제35회 사법시험에서는 1차마저 떨어지는 아픔을 맛보았다. 사시에 대한 자신감도 상실되고 내 능력에 대한 회의감도 커져 사시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갈려고도 생각했지만, 그때마다 아버님의 격려와 아내의 사랑과 믿음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그 후에도 제36회, 제38회, 제41회 사시 1차는 합격하였으나, 2차에서는 1과목 과락 아니면 근소한 점수차이로 고배를 마셨다. 이럴 때마다 주위의 친구들이나 후배들이 "운이 나빠서 떨어졌지 실력이 없어서 떨어진 것은 아니잖아? 힘내."라고 위로해 주었지만, 나에게는 사시가 넘지 못할 높은 산으로 다가왔다. 이 이후 사시 1차마저 두 번 연달아 떨어졌는데, 이 시기가 내 고시생활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자세히 말씀드리기로 하겠다. 흔히 고시계에서는 "고시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다"라는 말도 있지만, 내 생각은 분명히 다르다. 과락도 자기실력이고, 커트라인을 넘기지 못하는 것도 자기실력이라고 생각한다. 운이 시험에 있어서 전혀 작용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실력이 받쳐 준다면 운을 능히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꾸준히 자신의 실력을 키워나간다면 필경 운도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것을---

 

"마지막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공부"


●마지막 도전 그리고 환희


-제45회 1차·2차의 도전
제46회부터는 영어시험(토익·토플·텝스)을 패스해야만 비로소 1차를 응시할 수 있기 때문에 내 경우에는-영어를 손 뗀지가 20년이 넘었기 때문에-사실상 제45회 1차 시험이 마지막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져야 했기에 10월 달까지는 공인중개사학원이나 경찰공무원학원 등에서 강의를 하여 푼돈이라도 벌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제45회 1차 시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11월 초순경에 와서야 비로소 준비하기 시작했다.

 

다만 다른 때와 다르다면 신림동 고시촌이 아닌 집에서 공부했다는 것. 가정형편이 워낙 어려웠거니와 내 자신도 아내에게 손을 벌릴 염치도 없어서 그냥 집과 근처 독서실에서 공부하기로 작정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정말 독하게 공부해 보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집 근처 독서실에서 공부를 했으나, 조카뻘은 되는 중·고등학생들하고 공부하는 것이 민망스러워 나중에는 주로 집에서 공부했다.


내 경우는 1차 준비기간이 약 100일간의 시간밖에 없었기 때문에 남들과 같이 정석대로 공부할 수는 없었다. 내 방식대로 계획을 세우고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어학(일어)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매일 1시간씩 보기로 하고, 선택과목(노동법)은 마지막 7일정도 남겨두고 보기로 했다. 문제는 기본3법인데, 기본서를 본다는 것은 도저히 무리였고, 문제집 위주로 공부하기로 했다. 문제집도 시중에 나온 책들 중에서 1권을 선별하여 집중적으로 봤다. 내 경험으로는 문제집 여러 권을 조금씩 보는 것보다는 책 1권을 반복적으로 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헌법은 김학성 교수님문제집을 반복해서 풀어 보았고, 특히 헌법재판소 판례가 중요하였기 때문에 최신판례집을 따로 구하여 읽어보았다. 주로 위헌판결이나 헌법불합치판결 등 변형판결을 중심으로 판결이유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민법은 김형배 교수님 문제집을 꼼꼼히 풀어 보았고 판례는 문제집만으로는 모자란 것 같아서 중요판례(변경된 판례나 이례적인 판례, 또는 통설의 입장과 다른 판례)는 시험 마지막까지 몇 번이나 읽어보았다. 형법도 이재상 교수님 문제집을 위주로 민법과 같은 방식으로 공부했다. 선택과목인 노동법은 마지막 일주일 남겨두고 매일 3~4시간 정도 공부해도 충분한 것 같다.

 

내 경우에는 오히려 기억이 선명하여 고득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방(부산)에서 공부한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신림동 학원 모의고사 문제를 신림동에서 공부하는 후배에게 부탁하거나 서점에서 구입하거나 하여 풀어 보았다.


1차 시험장에서 시험을 무난하게 보고 그 날 밤에 채점을 해보니 합격을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었다. 그 해 3월초에 동차합격을 목표로 다시금 신림동에 둥지를 틀었다. 경제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학원에는 다니지 못하고 모의고사문제를 구하여 써 보고 강사 강평과 비교·분석해 보고 오류를 고쳐 나갔다.

 

우선 후4법을 2회독 한 후에 비로소 기본3법을 1회독 했는데, 시간의 부족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양대에서 나흘간 2차 시험을 치고 나오면서 잘하면 합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결과는 또 억울하게도(?) 민법 과락(38.5)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동차합격을 목표로 공부한 것이 다음해의 2차 합격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

 

"답안·비교분석으로 실전능력 키워"


-제46회 2차의 도전
제46회 2차 시험 역시 경제적 사정으로 2차 발표 때까지 돈을 벌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앞에서 말했듯이 동차합격에 대한 기대심(내지는 요행심)도 없지 않았기 때문에 2차 발표 때까지 공부할 수는 없었다. 2차 발표 후 또 다시 염치없게도 아내에게 모든 가정사를 맡기고 서울 신림동으로 돌아왔다. 새해 1월 18일에 신림동 청람고시원에 둥지를 틀고 본격적으로 2차 공부에 돌입하였다.

 

지금 이 자리를 빌어 나에게 공부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해주신 원장님께 감사를 드린다. 작년에 민법 과락으로 떨어진 아픈 기억 때문에 우선 민법부터 손을 대었다. 지원림 교수님의 민법강의를 새로 구입하여 정독하였다. 그 후에는 박승수 변호사의 민법의 쟁점과 사례를 구입하여 정독하였다. 이 책은 글씨체가 작은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판례정리가 잘되어 있고 사례풀이가 괜찮아서 민법공부에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

 

그 후 형소법, 민소법, 상법, 행정법 순으로 후4법을 공부하고, 다시 민법, 헌법, 형법 순으로 기본3법을 공부했다. 형소법은 이재상 교수님의 교과서를 주교재로 하고 신이철 강사의 형사소송법의 쟁점을 부교재로 삼았는데, 이 책은 이재상 교수님의 교과서에서 빠진 부분을 잘 정리하고 있어 형소법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민소법은 이시윤 변호사의 교과서를 기본서로 하고 장용범·권오갑 사례문제집을 부교재로 하여 공부하였고, 상법은 정찬형 교수님의 교과서를 기본서로 하고 사례문제는 상법교수사례집(고시계)과 상법사례연습(김혁붕)으로 대비하였다. 행

 

정법은 장태주 교수님의 행정법개론을 주교재로 하고 이재화 변호사의 사례집을 부교재로 하여 공부하였다. 헌법은 기본서 없이 정회철 변호사의 CASE·단문헌법을 주교재로 하여 공부하였는데, 1회독을 하고 나니까 헌법에 대한 공포심은 사라지는 것 같았다. 형법은 기본서, 사례집 모두 이재상 교수님의 책으로 공부했다.

 

형법은 이제까지 과락을 맞은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공부했다. 경제적 사정으로 학원 모의고사반에는 다니지 못했지만, 각 학원 모의고사 문제를 구입하여 실전적으로 풀어 보았다. 그리고 출제자의 모범답안과 내 답안을 비교·분석함으로써 실전능력을 키워 나갔다.


제46회 2차 시험은 중앙대에서 쳤는데 다른 대학에 비해 책상도 크고 편안했던 것 같다. 시험 첫째날 전날 불안한 마음에 잠 한숨도 못 자고 시험장에 입실하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시험지를 받아 보았는데, 예상외의 문제가 나와 잠시 당황하였지만 논점을 찾고 가물가물한 기억을 토대로 내용을 구성해 나갔다.

 

일단 첫째날 시험을 큰 실수없이 치고 나니까 그 날밤부터는 잠도 잘 잔 것 같다. 둘째날 민법 2문이 조금 까다로왔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불의타면 남도 불의타'일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차분하게 답안을 작성하였다. 셋째날 민소법, 형법도 큰 실수없이 치고 나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마지막날 형소법을 치고 시험장 밖으로 나오니 하늘이 유난히 파랗게 보였고 시험장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의 미소가 유난히 밝아 보였다.

 

"내가 불의타면 남도 불의타"


●끝을 맺으며
시험 발표 전날(12월 1일)까지는 난 정말로 편안한 마음으로 발표날을 기다렸다. 그러나 전날에 민법 과락자가 많다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지고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제45회의 악몽이 재연되는 것만 같아 무척이나 괴로웠다. 이 날밤 초조한 탓인지 잠도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전날 후배 민렬이가 내일(12월 2일) 오전 중이나 늦어도 낮12시 전에는 발표가 날 것 같다고 하여 나는 민렬이에게 좋은 소식이 있으면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다음날 낮12시가 지나도 연락이 없었기 때문에 난 떨어져서 연락이 없는 줄 알고 얼마나 마음이 졸였던지---. 그런데 12시 50분쯤 "형님, 저하고 형님하고는 합격했습니다"라는 소리에 실의와 좌절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끝까지 저의 합격을 못보고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님의 모습이 떠올라 옆에 있던 아내를 껴안고 목메어 울었다.

 

지금은 실의와 좌절에서 해방되어 지난 세월을 조금이나마 보상받은 기분으로 이 글 쓰고 있는 나를 본다. 2차를 준비하는 수험생 여러분께 당부하고 싶은 말은 시험을 치고 나서 절대로 주관적인 채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채점은 어디까지나 출제위원들이 하는 것이니까. 나도 민법을 치고 나서 시험칠 기분이 나지 않았지만 내가 불의타면 어차피 남들도 불의타일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마지막 날까지 버텼다.

 

내 경우는 무난하게 시험을 쳤다고 생각한 헌법은 겨우 과락을 면했고(41.5점), 과락걱정을 했던 민법은 오히려 점수가 좋았다(52.0점).


끝으로 불철주야 나의 합격만을 빌어주신 어머님, 내가 가장 어려웠을 때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준 후배 김현영 변호사, 수험생활 중 틈틈이 형소법의 이론적 오류를 지적해준 후배 원광디지털대학 신이철 교수, 2차를 준비하는데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모교 동아대학교와 지독료 지도교수인 최우영 교수님, 이 외에 일일이 이름을 거명할 수 없지만 나의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한솥밥을 먹으며 같이 공부하였지만, 이번에 아깝게 떨어진 두 아우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지금도 신림동에서 2차 합격을 위하여 고군분투하고 있는 영호, 찬호, 양호 등 아우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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