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47살 늦깍이 조원룡씨의 파란만장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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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47살 늦깍이 조원룡씨의 파란만장 인생
  • 법률저널 편집부
  • 승인 2008.08.0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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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기 사법연수원생 조원룡씨 인터뷰


‘현재는 선물이다. (The present is a present)’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빠른 때라는 문구처럼 죽기 전까지는 우리 인생에 늦어서 문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때를 놓쳤다고 안타까워하고 좌절하고 지레 겁을 먹고 움직이길 꺼려한다.


47살의 늦깎이 사법연수원생 조원룡씨는 나이에 상관없이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해 마침내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지금이 있기까지 조원룡씨가 지나왔던 길은 꼬불꼬불 굽이가 많았다. 그런 굽이에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을 져버리지 않으며 아이의 아버지로, 아내의 남편으로 당당하게 서기 위해 용감하게 새로운 길을 만들어갔다.


그를 지탱시켰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조원룡씨로부터 47살 평탄치 않았던 삶에 대해 들어보았다.

 

5번만의 1차합격

 

조원룡씨는 1961년 12월 23일 경북 영덕군 강구면에서 출생하여 올해로 47살이다. 사시경력은 2001년부터 응시해 1차에서 계속 고배를 마시다가 2005년에 처음으로 1차에 합격하고 뒤이어 2006년에 2차에 합격했다.


이렇게 먼 길을 돌아오게 된 것은 형의 영향이 크다. 집안 형편 때문에 재수생활을 포기하고 한국해양대에 입한한 조원룡씨는 손윗형이 84년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4학년 재학 중에 ‘학원 프락치사건’이라고 하는 사건에 연루되면서 학교를 자퇴해야 했다. 바로 군대로 징집되었고 제대 후에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포장마차, 학습지 방문판매원, 음료수 배달원, 나이트클럽 종업원 등의 일로 생계를 해결해야 했다.


그러다 학원강사 일을 시작하면서 기반을 잡게 되었다. 물론 해양대 중퇴라는 이력으로는 강사자리가 쉽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서울대 졸업장을 가진 형의 이름으로 수학 강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조원룡씨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서른아홉에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고 사법시험에 도전하게 된다.


“동료이자 형님이던 분(현재 법무법인 이산 구성원 변호사인 장훈열 변호사)이 1995년에 서울대학교 법과 대학에 복학하여 학교를 졸업하고 1996년에 본격적으로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위하여 퇴직하는 것을 보고서 저도 사법시험을 준비해야 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거짓 이력서를 진짜로 바꾸고 자식에게 떳떳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 평생직업을 갖자고 결심해 사법시험에 합격한 조원룡씨의 원동력은 당연 아내와 아이들이었다.


합격소식을 듣자마자 아내와 함께 기쁨을 나누었다. 수험기간 동안 그간 벌어둔 돈으로 살림을 꾸리던 조원룡씨의 아내는 2001년부터는 아이들과 친정집에서 생활하며 남편을 뒷바라지 해왔다. 아이들도 합격한 아버지를 보며 많이 달라졌다.


“딸이 중학교 2학년이고,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에요. 집에 잘 안 가고 공부만 하니까 구박을 많이 받았는데 합격하고 나니 집안분위기가 좋아졌어요. 한번은 딸에게 공부 좀 하라고 잔소리를 했다가 아빠는 십 년을 공부하면서 합격 못 하지 않느냐고 오히려 당한 적도 있거든요. 이제는 아빠에 대한 신뢰를 회복한 것 같고 제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게 되어 기가 많이 산 것 같아요.”

 

노장이 고시를 한다는 것

 

나이가 들어 고시에 뛰어들면 주변에서는 만류하기 바쁘다. 고시라는 게 합격을 장담할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걱정하는 마음에서다.


늦게 사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을까? 조원룡씨는 스스로 통제하여 공부에 몰두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2002년 말에 부산에 다녀오다 열차 안에서 조그만 사고가 형사사건으로까지 번져 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정신을 뺏겨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한 적이 있었다. 공부를 하는 입장이기에 원치 않는 일에 부대끼는게 힘들었을 터이다. 이런 경험이 나름 수험생활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더 큰 일에도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능력을 키운 것이다.


그는 이후에도 친구에게 거의 전재산에 가까운 1억 8천 5백만원을 빌려줬다가 부도를 내고 잠적했을 때에도 그간의 내공으로 흔들림없이 버텨낼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수험과정 중에 공부에 몰두 할 수 없는 시련이 다가오겠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을 이겨내는 것이 수험생활 성패의 관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조원룡씨는 젊은 친구들과 대등하게 경쟁하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해야 했다. 집중력이 좋고 체력이 좋은 그들에게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합격한 선배들의 노하우를 터득하기 위하여 합격수기를 구해 읽기도 했다.


“저도 여러 선배 합격자들의 합격수기를 읽어 보았습니다. 거기서 그들의 ‘결의’를 배웠고 이를 저의 처지에 맞게 변형하여 활용하였습니다.”


그는 2~3년 만에 수석합격한 합격자들의 공부의 양이 하루에 15시간이었으면 자신은 40대이고 하루에 10시간 정도 공부할 수 있으니 4~5년이면 합격할 수 있겠다는 확고한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그 목표를 확실히 실천하였다. 잠 6시간, 식사시간과 휴식시간 3시간, 운동 등 1시간 정도를 제외하고는 14시간 꼬박 공부에 투자했다.


조원룡씨는 “각자의 능력에 맞게 적절한 학습계획을 세우고 확실하게 실천하는 것”이 합격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슬슬 체력을 걱정해야 하는 40대의 한국 남자로서 수험공부에 몰두할 수 있었던 체력적 비결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는 학교에서 생활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 축구를 하였습니다. 2005년에 1차를 합격한 이후에는 특별히 건강관리를 하지 않고 수시로 청룡산에 다닌 것이 전부입니다.”


그는 2차 시험을 20여 일 앞두고 탈진하여 컨디션을 회복하는 데 3일을 소비해야 했다. 시험이 다가왔다고 갑자기 무리를 하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과유불급의 사례인 것이다. 그는 수험기간 동안 각자 공부 계획 못지않게 건강계획을 수립하여 일관성 있게 체력관리를 할 것을 당부했다.


노장이 고시를 한다는 것에는 공부에 몰두하려는 노력과 자신에 맞는 수험계획을 세우고 무조건 실천하는 것 외에 별 특별한 것이 없었다.

 

다시 세우는 꿈

 

2년 동안의 연수원 생활은 조원룡씨를 또 한 번 단련시킬 것이다. 동기들과 선의의 경쟁도 해야 할 것이고 늦은 만큼 앞으로의 시간들이 더욱 소중할 것이다.


조원룡씨는 연수원 입소 때 사법연수원 원장의 얘기가 가슴에 와서 박혔다.


‘현재는 선물이다. (The present is a present)’


그는 입소 자체가 신이 주신 선물이라며 현재에 충실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연수 후에 저는 변호사가 되려고 합니다. 단독으로 개업할지 합동으로 개업할지 여부와 개업할 장소가 구체적으로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변호사로 개업할 계획입니다.”


앞으로 변호사로서 살겠다는 계획을 세운 조원룡씨는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고 유능한 변호사로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어했다.


멀리 돌아 사법연수원생이 된 조원룡씨와 2년 후 유능한 변호사로 다시 만나길 기대해본다.

 

“법률저널 창간9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저도 신림동에서 공부하는 동안 법률저널의 애독자였습니다. 여러 가지 알찬 내용으로 수험생활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던 점 감사드립니다.


특히, 1차 시험의 예상 커트라인 보도는 그 정확성이 뛰어나 수험 계획수립의 확실한 안내자가 되어주었던 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사법시험을 비롯한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 여러분들께 신속하고 정확할뿐더러 질 높은 수험정보 전달에 힘써 주실 것을 부탁드리며, 다시 한 번 법률저널 창간 9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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