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합격기]“공부하는 이 시간을 아까워 하라”
상태바
[수석합격기]“공부하는 이 시간을 아까워 하라”
  • 법률저널 편집부
  • 승인 2008.08.06 15: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정은 제48회 사법시험 수석/서울대 법대 졸

 

1. 들어가며


그렇게 넉넉한 성격이 아니다. ^^ 어쩌다 공개된 사진에 대해 다들 말씀하시는 것처럼 주변 사람들한테 깐깐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뭔가 빨리 대답을 듣지 못하면 안절부절 못하는 고약한 취미를 가졌다. 시험을 마치고 셋째날, 넷째날 시험을 망쳤다고 생각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몇 개월을 보냈다. 예상치도 못한 수석 소식에 너무도 당황했고, 내 하소연에 이미 질려버린 주변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랬던거냐며 핀잔을 줬다. 애정어린 핀잔들에 이건 말도 안 된다는 대답밖에는 할 수 없었다. 지금도 내 능력 이상의 일이 생겨 부끄럽고, 이 수기가 다른 수험생들에게 도움이 될까도 의심스럽지만, 차근차근 수험생활을 돌아보려 한다. 이전 합격수기들을 보니 다들 너무 수석할 만했던 분들이어서 더욱 부끄럽지만, 어쩌면 전혀 특별하지 않았던 내 수험생활이 지금 공부하시는 분들에게는 더 용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2. 시험 준비를 시작하면서...


고등학교 때까지 말 그대로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공부해야 하는 상황에서 공부를 했고, 크게 비뚤어져 나가지도 않았으며, 다행히 성적도 잘 나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사실 법대 진학은 아버지께서 어렸을 때부터 권유하신 것이어서, 큰 고민이 없었고, 오히려 법대 진학을 먼저 정해두고, 그 안에서 법대에 가면 뭐가 좋을지, 내가 법학의 학문 특성과 어떤 점이 잘 맞을지를 고민하는 전도상태였다.


그런데 대학입학이 확정되고 나서 문득 두려움 같은게 생기기 시작했다. 공부말고는 해본 것도 없고, 생각이고 뭐고가 있을리 없는 나를 보고 문득 '나는 정말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대로 학과공부하다가 3학년쯤 되면 사법시험보고 정해진 길대로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께 대학생활 동안에는 사법시험 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나마 그 동안 부모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잘 따라가왔던 덕으로 부모님께서 나를 믿어주셨고, 그에 동의해주셨다. 지금도 그런 나를 이해해 주시고, 믿어주셨던 것에 대해 부모님께 무척 감사드린다. 어떤 분이 이런 내 얘기를 듣고 소신이 있으셨군요..라고 말씀하셨는데, 오히려 반대로 소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소신이란걸 만들어보려고 유예기간을 스스로 설정했던 것 같다.


대학4년 반(9학기 다녔기 때문에.. ^^;) 동안 많이 놀고, 이것저것 많이 해보고, 많은 사람들도 만나보고 했던 것 같다. 소신이란게 확실하게 생겼다기 보다는 막연히 법대에 가면 좋을거야.. 라고 생각했던 상태를 벗어나 이런 것들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정도의 가치관이 생겼고, 이제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실현할 때가 됐다 싶었다. 그래서 2004년 3월 처음으로 도서관에서 고시공부라는 것의 테이프를 끊었다. 사실 이 선택에 대해서도 부끄러움이 있는 것이, 결국 난 내 학벌과 내가 가진 자원들을 포기하지는 못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이 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노력하는 것도 기여라는 위안을 스스로 하면서 목표에 대한 수단의 의미를 갖는 고시공부에 매몰되지만 말자는 결심을 했다.

 

3. 1차시험을 보기까지


2004년 3월, 4월은 아직 정리하지 못한 일들 때문에 온종일 공부에 매진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때의 목표는 일단 민법 정도는 한번 눈에 박아두는 것으로 잡고, 하루 5시간 정도 서울대 중앙도서관에서 민법학 강의(김형배 저)를 주욱 읽어가는 작업을 했다. 이것저것 하면서 돌아다녀온 대학4년(정확히는 5년 정도..)이었기 때문에 한자리에 앉아서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는 것이 주목적이었고, 한번 훑어보는 것이 본격적인 1회독에 도움이 될거란 생각으로 책을 봤다. 4월말까지 민법학 강의와 형법총론(이재상 저)을 훑어보는 작업을 하고, 5월 1일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1회독을 시작했다.


순서는 민법-형법-헌법 순이었고, 각 과목은 민법은 민법학강의(김형배 저)를 기본서로 하고, 2003년 이원영 진도별 모의고사를 문제집으로, 객관식 판례(정일배 저)를 판례집으로 삼아 공부했고, 형법은 형법총,각론 모두 이재상 저를 기본서로 하고 이인규 객관식 형법을 문제집으로, 이인규 형법보충강의안을 부교재및 판례집 삼아 봤으며, 헌법은 금동흠 저 기본서를 보고, 정회철 저 판례집, 2003년 김현석 진도별 모의고사 문제집으로 공부했다.


책들은 선배들의 추천을 받아 고른 것들이었는데, 내가 책을 보고 좋은 것, 나쁜 것을 가릴 능력이 없어서, 불만이 있더라도 일단 선택한 책은 바꾸지 않고 계속 봤다. 다만 헌법 기본서는 개인적으로 불만이 많아서 후배들에게 추천하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가능하면 꼼꼼히 보려고 노력했고, 특히 형법의 경우는 1회독할 때 잘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읽고 나름대로 이해한 내용을 포스트잇에 써서 모두 붙여놓았다. 2회독 때 다시 생소하게 다가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친구한테 말하는 것처럼 "그러니까 이 내용은 이런 얘기야.." 이런 식으로 포스트잇을 만들어 붙여 놓은 것이었는데, 매우 유용했던 것 같다.


이때의 하루 일과는 오전에 강의 테이프 4개 정도를 듣고, 오후에 기본서를 강의 테이프 들은 진도만큼 읽은 후 판례집을 보고, 문제집을 풀어 마무리하는 것으로 잡고 보냈다. 진도표를 짤 때 공휴일과 일요일은 모두 제외하고 짜고 그에 따라 진도를 나갔는데, 휴일에 쉴 수 있다는 여유를 가졌던 것이 오히려 진도를 안 밀릴 수 있게 했던 것 같다.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가능하면 관악구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쐬고 왔는데, 이런 식의 휴식이 특별한 슬럼프 없이 수험생활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2회독은 9월에 진도별 모의고사와 함께 시작했다. 학원에 직접 가서 시험을 치른 것은 아니고, 학교에서 스터디 사람들이랑 시험을 치르고 각자 돌아가면서 그날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발제하는 방식으로 하루 20여분 정도 스터디를 했다. 2회독 때에는 1회독 때 봤던 문제집과 진도별 모의고사의 오답노트를 만드는 것에 주력했는데, 기본서 다시 보고, 판례집 보고, 1회독 때 본 문제집에, 진도별 모의고사 풀고 그에 대한 오답노트까지 만드느라 하루가 정말 빡빡하게 돌아갔다. 오답노트를 꼼꼼히 만들어 나중엔 오답노트만 보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나름 공들여 만들었는데, 그래서인지 1차 공부할 때 중 2회독 때 공부를 제일 열심히 했던 것 같다.


12월 3째주까지 2회독을 마치고 12월 4째주부터 3회독에 들어갔고, 이때부터는 있는 건 다 꼼꼼히 본다는 생각으로 가지고 있는 것들을 빠짐없이 보는데 주력했고, 시험보기 직전까지도 책을 더 늘리거나 새로운 문제를 풀거나 전범위 모의고사를 풀기보다는 만들어놓은 오답노트와 기본서, 판례집을 반복해서 보는 방법을 택했다. 전범위 모의고사를 보는 의미로 지난해 1차 시험 문제를 시험 보는 것처럼 해서 풀어본 것과 막판에 최신판례와 부속법령 외에는 새로운 자료를 늘리지 않았다.


선택과목의 경우 노동법을 선택했는데 2회독에 들어가기 전에 1회독 헌법까지 마치고 2주간의 여유가 있어서 여름휴가 다녀온 후 5일정도 테이프를 들으면서 객관식 노동법 책을 읽어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기본3법의 분량이 많아 다시 노동법을 볼 시간이 나지 않아서, 2회독 끝나고 하루, 3회독 끝나고 하루, 이런 식으로 찔끔찔끔 보게 되었고, 더 이상 볼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학교 갈 때, 집에 올 때 듣는 방식으로 노동법 테이프를 3번 반복해 들었다. 결과적으로 상당히 효율적이었고, 큰 효과를 봤다. 반복해서 테이프를 들었던 것이 은근히 기억에 오래 남았기 때문에 책을 다시 못 봤어도 내용 대부분을 기억할 수 있었다.


결국 시험 전날 부속법령과 최신판례를 훑는 것으로 마무리했는데, 2005년 1차 시험에서 부속법령이 거의 나오지 않아 좀 허무했었다. ^^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험장소에 난방이 안 되서, 온도계 기능이 있는 시계를 가지고 갔었는데, 기온이 4도로 표시 되었던게 기억이 난다. 정말 추웠다는 생각만 잔뜩..


정말 추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에 와 채점해보니 운이 따라준 덕으로 두개만 틀려 일찌감치 합격을 확신할 수 있어서 정말 맘 편하게 놀 수 있어 다행으로 생각한다.

 

4. 2차시험 공부


동차를 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던 터라 일단 3월 한달간 편하게 쉬었다. 3월 첫째주는 부모님 계신 집에 와서 편히 쉬고, 둘째주부터 후사법 예비순환 강의 테이프를 사서 들으면서 다시 2차 공부 워밍업을 시작했다. 대학시절 동안 워낙 잡일들을 많이 한지라 후사법 학교강의를 성실히 듣지 못했었다. 그래서 이미 졸업은 했지만 2005년 1학기 동안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 행정구제법 수업을 청강했다. 그러면서 도서관에서 학원들의 예비순환 일정과 같게 진도를 짜고 테이프를 들으면서 예비순환을 했다. 이때도 역시 선배들의 추천으로 기본서를 선택했는데, 민사소송법은 이시윤 저를 기본으로 하고 박승수 워크북을 부교재로 삼았으며, 형사소송법은 이재상 저를 기본으로 하고, 사례집 역시 이재상 저를 선택했다. 행정법은 장태주 저를 기본으로 하고, 일단 예비순환과 1순환 때까지 이재화 사례집을 보기로 했으며, 상법은 김혁붕 상법신강을 기본으로 하고 김혁붕 사례집과 권태일 사례집을 봤다. 그런데 사실 예비순환 때는 사례집을 사두기만 했을 뿐 거의 보지 못했다. 맘이 너무 풀어져 있었고, 학교 수업 청강을 하느라 강의 테이프 듣고, 기본서 읽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술술 잘 갔기 때문이다. 예비순환 후 초시까지 한달여 정도 남은 시간 동안은 기본삼법의 사례집들을 봤다. 민법은 김종률 저 사례집, 형법은 하태훈 저 사례집, 헌법은 정회철 사례단문을 봤는데, 암기보다는 사례를 어떻게 푸는지에 주로 관심을 두고 초시 볼 때까지 한번은 다보자고 생각하고 읽었다.


초시는 뭐 말 그대로 아무 준비 없이 치렀다. 학원을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답안지 쓰는 스킬은 전혀 없었고, 예비순환하면서 읽어놓은 것이 전부였던 때. 양심상 시험 전날에는 공부해야 한다고 맘은 굳게 먹었는데, ‘내 이름은 김삼순’의 유혹이 너무 강해서 잘 안됐다. ^^;; 쓸게 없어서 대부분의 시험을 5분 정도 일찍 마치고 앉아 있으려니 이상하게 죄책감같은게 계속 들었던 것 같다.


초시 마치고 일주일정도 휴식한 후 본격적으로 2차 공부를 시작했는데, 1순환 때는 1순환 테이프를 구해 들으면서 기본서와 사례집을 꼼꼼히 보는데 주안점을 두고 공부했다. 스터디를 하려고는 했는데, 친한 분들이 학원에 다니겠다고들 하셔서 결국 혼자 학교에서 테이프 들으며 공부하게 됐고, 모의고사는 2005년에 재시를 치른 선배들이 한 과목씩 맡아 돌아가며 문제 출제해주고 채점해주고 평가해주고, 또 내 질문에 대답해주고 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어쩌다 보니 선배들과 1:1 학습이 된 셈이었는데, 그래서 내가 궁금한 부분들을 정확하게 짚어 물어볼 수 있어 좋았고, 선배들도 내 답안지 하나만 검토해주면 되는 것이어서 그랬는지, 나에게 부족한 부분들을 꼼꼼히 짚어주셨다. 학원을 다니지 않아 시간이 여유롭게 생겨 기본서와 사례집을 꼼꼼히 챙겨볼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2순환 때는 학원에 다녔다. 학원 강의를 듣는다면 마지막 기회가 될 듯해서, 학원에서 제공해주는 최신의 자료들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학원강의를 들었는데,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 행정법은 강의를 듣고, 상법과 기본삼법은 모의고사 강평반을 등록했다. 개인적으로 1순환 때 내가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여 혼자 공부하고, 2순환 때 학원 강의로 다지는 방법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는 행정법에 자신감이 없었는데, 2순환 때 학원강의를 들으면서 김연태 저 사례집을 꼼꼼히 챙겨보는 등 일정을 빡빡하게 돌린 것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2순환 때 2차공부 교재들을 완비했는데, 앞서 언급한 책들과 함께 민사소송법 이창한 사례집, 행정법 김연태 사례집, 민법 노재호 민법교안, 송영곤 사례집, 형법 송헌철 형법, 형사판례평석을 추가했고, 기본삼법은 헌법을 제외하고 1차 때 보던 책들을 계속 기본서로 삼았다.


3순환 때는 학원에서 모의고사만 보고 나머지 시간에는 기본서와 사례집을 반복해서 보았고, 5월4순환부터는 모의고사는 보지 않고, 가지고 있는 교재들을 최대한 많이 반복해 보기 위해 노력했다. 이 때 문제풀이 감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고시계와 고시연구에서 사례문제들을 모아서 특집으로 낸 것이 있었는데, 그 문제들을 가지고 매일 몇 문제씩 골라서 목차를 잡아보곤 했다. 나는 책을 꼼꼼히 보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해지는 성격이라 4순환 이후에도 밑줄 긋고 정리한 부분만 보지 못하고, 여전히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책들을 다 읽었다. 사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은데, 성격상 어쩔 수가 없어서 시간은 부족한데 많이 애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처음에는 4-2-1로 계획을 세웠었는데, 자연스럽게 5-2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2차 시험 공부를 하면서 주안점을 두었던 것 중의 하나는 헌민형 요약노트를 만드는 것이었다. 선배들로부터 시험 전날 그 과목을 다 훑어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던 터였고, 한 선배가 요약노트를 만들어보니 좋더라는 얘기를 해서, 다른건 몰라도 헌민형 3과목은 요약노트를 만들어 시험전날 노트를 보고, 후사법은 기본서를 훑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약노트는 1, 2순환 때 만들었는데, 만들 때는 너무 힘들고, 포기할까하는 생각도 종종 들었지만, 생각해보면 만드는 과정자체가 공부가 됐고, 다 만들고 나서는 매우 유용하게 활용했다. 그래서 다른 수험생들에게도 얼마간은 힘들겠지만 헌민형 요약노트를 만드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또 하나 수험생 여러분들은 단권화에 꼭 성공하시길 바란다는 것이다. 1차 때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난 단권화를 잘 못해서 결국 가지고 있는 책 전부를 끝까지 짊어지고 가야했다. 2차 때도 마찬가지로 마지막 순간까지 여러 권의 책을 전부 펴놓고 봐야했다. 그건 모든 책을 다 꼼꼼히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도 있는데, 끊임없이 정리해놓지 않으면 어느 순간 단권화의 기회를 놓쳐버린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이렇게 공부를 마무리하고, 드디어 2006년 여름 2차시험을 치렀다. 4일 동안 총 6~7시간 정도 잤던 것 같다. 그렇게 시험을 치렀는데, 마지막날 상법 시험을 치르고 신촌 한복판을 걷다 보니 너무나 잠들기가 싫었다. 그래서 남자친구를 붙들고 추리닝 차림으로 한참 신촌을 돌아다녔고, 신림동에 돌아와서도 한참을 잠 안 자고 이것저것 했었다. 왜 그렇게 잠들기가 싫었던지.. ^^;;

 

5. 면접까지


앞서도 말했듯이 셋째날, 넷째날 시험을 망쳤다고 생각했던지라 계속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생각을 하면 할수록 첫째날, 둘째날 시험도 못 쳤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어찌나 괴롭혔던지.. 지면을 빌어 미안했다고 말하고 싶다. 다행히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있었고, 면접에 대해서는 선배들이 우호적인 분위기라고 말해줬던지라 전혀 준비하지 않고 있었다. 난 둘째날 오전조였는데, 맘 푹놓고 있다가 첫째날 저녁에 이번에 시험을 같이 치른 선배로부터 하루 동안 심층면접자가 7명이나 나왔단 얘기를 듣고 불안에 떨었다. 그래도 어쩌나.. 이미 저녁 시간이고 난 오전조라 새벽에 일어나야 하고, 지금 책 본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지도 않고... 결국 불안해만 하다가 면접시험을 치렀는데, 다행히 아는 부분에 대한 질문이 나와서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6. 마치며


심층면접 안 갔다는 안도감으로 날을 보내고 있던 중 법무부라며 수석합격이라고 전화가 왔다. 너무 얼떨떨해서 현실감이 없었다. 지금도 사실 현실감 없기는 마찬가지.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부담감이 제일 먼저 생긴다.


나는 공부하는 시간을 아깝다고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의 시간들이니까. 목표에 이르기까지의 소비적인 시간이라는 생각에 매순간, 매초가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만큼 수험생활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나름의 목표가 있었고, 다행히 운이 따라 길지 않게 수험생활을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후배들한테도 항상 그 이야기를 한다. 사시공부를 하는 지금 이 시간들을 아까워 하라고. 그런 생각 덕분에 아침잠의 유혹도 억누를 수 있었던 것 같고, 가능하면 중간 휴식시간 없이, 점심, 저녁 먹을 때 외에는 자리를 뜨지 않고 공부할 수 있었지 않나 싶다. 사실 이것도 운이 좋은 건지 모르겠는데, 화장실을 자주 가는 편이 아니라 더더욱 밥 먹을 때 외에는 움직이지 않을 수 있었다. 체질이 원래 그런건데 내 주변에서 공부하던 사람들이 쟤는 화장실도 참고 공부한다고 해서 변명 아닌 변명을 했던 기억이 있다. ^^


또 하나, 나는 날 잘 믿지 못한다. 공부하면서도 ‘내가 정말 이거 아는 거 맞아?’를 끊임없이 자문해왔다. 다만 시험장에서만큼은 자신있게 써야지하고 다짐하면서도 공부하는 나에 대해서는 항상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반복학습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시공부에서 지루하지 않게 반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누구의 방법이 맞고, 이렇게 하면 합격한다.. 이런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 이야기가 다른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라면 거의 한 치의 차이도 없이 대부분의 수험생이 보는 책으로,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따라가는 일정으로 공부했다는 것이다. 나도 사실 공부하면서 그냥 이렇게 흐름에 맡기면 되는 건가를 끊임없이 고민했었다. 특히 수석합격기나 이런 것들을 보면 무슨무슨 다른 여러 책을 봤고, 특별한 뭔가를 했고 하는 것들이 많아서, 저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아닐까 많이 의심도 했지만, 뭐 일단 능력이 안됐기 때문에 더 볼 수도 없었고, 가진 것을 가지고 충실히 하면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다만 보다 꼼꼼히, 보다 세밀하고 정확하게, 보다 성실하게 보자고만 생각했다. 다른 분들도 자신이 보는 책들과 자신이 선택한 일정에 믿음을 갖고 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운이 따라 여기까지 그래도 큰 장애 없이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욱 감사하고, 수석이라는 너무 무겁고 거창한 이름까지 달게 되서 부담스럽고, 부끄럽다. 수석이라는 이름 때문이 아니라도 나 자신한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까지의 삶에 감사하면서, 내가 생각한 것들을 조용히 실천하는, 나 스스로에게 당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끝으로 항상 믿어주시고, 편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셨으면서도 항상 넉넉하지 못하게 해주는게 미안하다고 하셨던 부모님께 정말정말 감사드리고,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항상 큰 힘이 되어 주었던 남자친구에게도 고맙단 말을 하고 싶다. 징징거리는 얘기 꾹 참고 항상 들어준 오이, 종문오빠, 1순환 때 각 과목의 선생님이 되어 주셨던 태욱오빠, 진영언니, 정민오빠, 상미언니, 1차 스터디 함께 했던 정기오빠, 홍종오빠, 철은오빠, 재홍오빠, 민열오빠, 2차시험 막판까지 신나는 식사시간 수다를 나눴던 우지, 조페, 나의 가장 사랑하는 친구들 민지, 성은, 미선, 법사회학회 동기, 선후배들, 학생회장 시절 많은 배려와 지원 아끼지 않으셨던 법대 교수님들, 대학시절 함께 활동하며 함께 꿈을 나눴던 사람들... 너무 많은데, 그분들께 모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