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 최연소합격기 "인생에는 연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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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 최연소합격기 "인생에는 연습이 없다"
  • 법률저널 편집부
  • 승인 2008.08.06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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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수 제47회 사시최연소 합격/성균관대 법대 3년

 

“인생에는 연습이 없다.”

 

Ⅰ. 아직 어림
“판사가 높은 사람이야~”, “아~미치겠네. 검사가 더 높은 사람이라니까!” 중학교 1 · 2학년쯤 되는 학생 두 명이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왜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 제가 무슨 근거로 그런 주장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판사검사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도 잘 모르면서 검사가 훨씬 높은 사람이라고 주장하던 아이가 합격수기를 쓰고 있다니 너무 부끄럽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별로 없다는 제 자신에 대한 느낌이 결코 겸손이 아니라는 것을 저와 조금만 지내보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 길들 중 저도 모르게 어느 한 길을 걸었을 뿐, 다른 길들이 어떠한지 잘 모르고 경험도 부족합니다. 그저 시력도 나쁜 제가 이러쿵저러쿵 하며 걸어온 길을 더듬어 보는 것이니, 살펴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Ⅱ. 공부의 시작
돌이켜 보면 대학교 1학년 때는 추억도 많고 재미있는 일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차력사 흉내 내기, 만취해 친구들 불편하게 하기로 얼룩졌던(?) 신입생 OT, 그때 만나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는 C-5조 친구들, 아직까지도 이들과 만나면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되는 조MT, 민사법학회 세미나 · MT, 밤새 통화하고 낮에는 강의실에서 잠잤던 나날들, 가슴 벅찼던 2002월드컵 응원… 등등.


제가 공부를 시작했을 때 그리고 공부하는 동안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대학 들어와서 놀아보지도 않고 그렇게 공부만 하는 거냐고, 대학교 1 · 2학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거라고, 그렇게 일찍 시작해서 열심히 하다가 합격 못하면 지쳐서 다시 일어서기 힘들다고… 물론 그분들이 저에게 어떤 해의를 가지고 하신 말씀이 아니란 걸 잘 압니다. 제가 걱정스러워 그런 말을 해주시는 것 그 따뜻함만으로도 저는 고마웠습니다.


대학 공부에 대해서는 어떠한 계획도 없던 저는 아버지의 권유로 1학년 여름 방학 때 저희 학교에 있는 ‘사마헌’이란 고시반에 들어갔습니다. 어릴 적부터 열심히 하라고 강조하시고 많이 독려는 해주셨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제시는 않으셨던 아버지께서 사마헌이란 곳을 어떻게 아시고는 저에게 말씀해주셨을 때, 그저 신기하기만 했는데 그곳이 사법시험이란 마라톤을 위한 든든한 신발이 될 줄 그때는 몰랐습니다.


우석이형을 처음 만난 것은 그때쯤이었습니다. 당시 사마헌에서 1학년 학생들을 모아서 영어 스터디를 하도록 했었는데 막 2차 시험을 치르고 난 뒤였던 형이 우리를 맡게 되었던 것입니다(실은 민법에 대해 설명해 주었지만). 그 당시에는 3학년 때 2차 시험을 치르고 발표를 기다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란 걸 알았습니다. 또한 학교에서 합격자 강연회를 마련해 주었는데 그때 언젠가 나도 사법시험에 합격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지게 되었습니다.


그해 겨울, 형은 2차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너무 기쁘고 너무 아팠습니다. 12월 31일 밤 친구들과 종각역으로 나갔습니다. 눈부신 불꽃, 사람들의 시끄러운 함성 속에서 새해가 되는 순간, 눈을 감고 두 손을 꼬옥 쥐고 다짐했습니다. 올 한해 정말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Ⅲ. 1차 시험 공부
1. 1~3월 : 고향에 잠시 내려갔다 올라온 후 곧바로 시험 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책도 사고 강의 테이프도 샀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강의 테이프를 들으며 헌·민·형법을 한 번씩 읽는 것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어차피 몇 번 봐놓으면 다음 학기 학교 다닐 때 편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민법 테이프를 듣고 나서, 형법 테이프를 들으며 민법 복습을 하고, 헌법 볼 때에는 민 · 형법을 복습했습니다. 개강 때까지 다 보진 못했지만 3월말 쯤 되니 민법2번, 형법1.5번, 헌법1번 정도 훑어봤던 것 같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어차피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자세히 읽으려고 하지 않았고, 강의테이프는, 처음 보는 책이라 눈에 잘 안 들어오니까 초등학교 처음 등교할 때 엄마와 한 번 같이 가본다는 느낌으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듣다 졸리고 지겨우면 빨리 감아서 다른 부분을 들었습니다. 특히 당시에는 판례가 중요한 것인지 몰라서 판례 설명만 나오면 빨리 감기를 해버렸는데 하루에 테이프 8개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각자 공부 스타일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테이프는 후다닥 들어버리고 교과서를 정독하는 게 저에게 맞았던 것 같습니다.


2003년 첫 3개월이 제 수험기간을 통틀어 가장 열심히 했던 때인 것 같습니다. 겨울바람이 왠지 더 차갑게 느껴질수록, 겨울 하늘이 왠지 더 허전하다고 느껴질수록, 더욱더 공부만 생각하려고 애쓰는 제 모습은 프로이드가 말했던 ‘승화’, 마치 그것 같았습니다.


2. 4~8월 : 한 번씩 통독을 하고 난 후에는 하루에 두 과목씩(오늘 헌법 · 민법을 봤으면 내일은 형법 · 헌법을 보는 식으로) 계속 반복해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과목별로 문제집을 사서 조금씩 풀어보았습니다. 이때에는 그게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책 읽고, 생각하고, 문제 풀고, 모르면 물어보고……. 그리고 7월 달부터는 고시반 숙소에 들어가서 생활했습니다. 공부하는 곳, 먹는 곳, 자는 곳이 모두 한 건물(비록 작은 건물이었지만)에 있어서 편했습니다.


3. 9~11월 : 진도별 모의고사를 풀었습니다. 봄 · 여름에 열심히 해놓은 탓인지 따라가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진도에 맞춰 전날 한 번 읽고 틀린 문제를 다시보고 맞은 문제라도 모르는 부분은 책에 보충했습니다. 그날 시험지는 그날 충분히 보고 다시 보지 않았습니다. 선택과목은 국제법으로 해서 추석 때부터 꾸준히 보았습니다.


4. 12월~시험 : 전범위 모의고사도 풀어보고 그 동안 공부해온 것을 반복 또 반복해서 봤습니다. 모의고사 때 형법 점수가 잘 안 나와서 좀 어렵다는 문제집을 한 권 사서 풀었는데 그해 형법이 쉽게 나와서 괜한 고생을 한 셈이 돼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때에는 건강에 유의해야겠습니다. 저는 이 때 여러 번 감기에 걸려 꽤나 고생을 했는데, 남들 공부할 때 몇 시간동안 침대에 누워 있다 보면 정말 공부가 하고 싶어집니다. 여기까진 좋은데 의욕에 불타 감기가 조금 낫자마자 무리하다 다시 몸져 누운 게 몇 번 됩니다. 이때의 감기는 몸이 피로해서 걸리는 것이므로 충분히 쉬어 주는 게 상책인데, 고시생의 특성상 그게 쉽지 않죠.


시험 전날에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그만 도시락을 챙겨가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같이 간 형이 많이 안 먹는다고 해서 도시락을 나눠 먹긴 했는데, 제 평소 정신상태가 이 모양입니다. 시험을 모두 치르고 저녁에 목욕탕에 갔다 와서 TV를 좀 보다가 정답표를 출력해 와서 채점을 했습니다. 어찌나 떨리던지… 점수를 확인하고는 너무 기뻐 조용한 연구실(고시반 공부하는 곳의 명칭)내를 뛰어다녔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서울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줄은 아셨지만 벌써 사법시험 공부하는 줄은 모르셨기에 많이 놀라워하셨습니다.

 

Ⅳ. 2차 시험 공부
1. 첫 번째 2차 시험의 준비
잠시 고향에 다녀와서 바로 2차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후사법의 경우, 상법 중 회사편까지 행정법 중 행정작용법까지는 그래도 학교시험공부를 해서 조금 알았는데 그 외의 부분 · 과목들은 너무 낯설었습니다.(그래도 새로운 도전이란 생각에 들떴었죠.) 기본3법의 경우도 객관식 문제를 풀던데 익숙해 있던 탓인지 case문제를 보면 답은 대충 알겠는데 그 과정을 풀어 쓴다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2차 시험은 성적이 중요하다는 얘기도 들리고 해서(지금에서야 알았지만 편차가 극히 작다는…) 이를 핑계 삼아 학교나 열심히 다니기로 했으나, 결국은 이도 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여름방학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2. 두 번째 2차 시험의 준비
⑴이때부터는 몇 순환 몇 순환 이라고 해서 일정과 진도가 대강 짜여져 있어서 그에 맞춰서 하루에 공부할 양을 정하고 이를 공부할 시간으로 나누어 계획을 세웠습니다.


⑵1순환 때에는 학교 고시반에서 강의를 마련해주었기 때문에 그 강의를 듣거나 강의 테이프를 들으며 각 과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스터디를 짜서 과목당 사례집을 정하여 하루에 하나씩 사례를 공부해 와서 간단히 설명한 후 의문점이 있으면 서로 물어보고 대답하기도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공부하는 게 많이 낯설었지만 장을 맡은 누나가 스터디를 적극적으로 잘 이끌어 줘서 저는 편하게 따라갔던 것 같습니다.


1순환이라하여 이해를 위주로 한다지만 외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은 열심히 외웠습니다. 특히 며칠에 한 번씩 모의고사를 쳤기 때문에 1시간 동안 무언가를 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조건 외우는 것은 좋지 않지만 어느 정도 암기가 필요한 부분은 일찍부터 외우는 노력을 해야 금세 잊어버린다 해도 다음 순환 때 볼 때 약간 기억이 나기도 하고 외우는 요령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⑶2순환 때에는 강의는 없었고 교수님이 출제해주신 모의고사를 풀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단문집을 보면서 부족한 부분을 교과서에 보충해 넣기도 했습니다. 어떤 부분이 너무 부족하다면 잘라서 끼워 넣었지만, 그렇지 않다면 교과서 목차를 수정하고 여백에 요약해서 적어 넣는 방식으로 했습니다. 소위 ‘단권화’라는 작업을 할 때, 너무 완벽한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을 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 시기가 제게는 2차 시험 기간 중 가장 힘든 기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시험에서와 같이 2시간동안 시험을 쳤고 문제와 답안도 교수님에 의해 출제 · 채점되었는데, 이 때 점수가 잘 나오지 않자, 실제 시험과 제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점점 시간이 모자라고 글씨가 나빠지기 시작해 불안감은 더욱 커져갔습니다.    모든 것을 공부가 부족한 탓으로 돌리고 더욱 열심히 공부하려고 노력하는 것 외에 그 불안감 ·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이 없었던 저였기에 이 때 체중이 5~6kg나 줄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스터디 사람들과 함께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주제를 선정해 목차와 대강의 내용을 외웠는데 저녁식사 시간에 주사위를 던져 걸린 사람을 상대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해 왔는지 검증하는 절차를 밟았는데 나름대로 재미있었습니다.


⑷3 · 4순환 때에는 점수가 조금씩 올라갔고, 아빠, 엄마 목소리도 자주 듣고, 내가 좋아했던 내 모습은 왠지 모를 자신감에 차있는 그런 모습이었음을 새삼 떠올리게 되면서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3. 두번째 2차 시험 4일간
⑴시험 치는 동안에는 평소 때보다 약간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났습니다. 이때에는 시험이 임박해 있음을 내 몸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잠을 좀 줄여도 피곤한 줄 모릅니다.(그렇다고 너무 무리하면 안 되겠죠.) 학교에서 시험장까지 버스를 운행해 주어서 이를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점심은 그냥 아침에 버스 타러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사간 김밥으로 때웠습니다.


⑵시험 전날 두 과목을 봐야 하는데 정말 장난 아닙니다. 특히 첫째 날부터는 시험 치는 시간과 시험 장소까지 왕복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면 정말 시간이 부족합니다. 정말 빠르게 보시는 분이라면 모르겠으나 저는 다 못 봤습니다. 중요한 것만 골라 보려고 마음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좀 읽다보면 어느새 시간이 많이 지나가버려 후다닥 보고 다음날 아침에 정말 중요한 것 몇 개만 보고 시험에 임했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모자라 못 쓴 것은 있어도 기억이 안 나서 못 쓴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시험 치면 다 생각나게 되어있다고 선배들이 그러시던데 틀린 말은 아닌가 봅니다. (다 보면 좋지만 그렇지 못했다하여 너무 불안해하지 마시라구 드리는 말씀…^^;)


그리고 모의고사 볼 때 시간 내에 작성해서 제출하는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아니 어쩌면 습관이 아니라 노력해서 이뤄내야 하는 것이라 하는 편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저는 모의고사 때 제한 시간에 딱 맞춰 내거나 늦게 내는 경우가 잦아서 잘 맞춰보려고 많은 시도를 해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문제를 빨리 파악 ·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시간을 줄이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글씨를 좀 더 빨리 쓰고 미리 목차마다 분량을 대강 정하여 쓰는 도중 계속 시간을 체크하면서 시간이 촉박하면 해당 내용을 적절히 요약하거나 빨리 마무리 지어서 시간을 맞추는 것이 제가 찾은 방법이었는데, 실제 시험 때에는 당황해서인지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해, 분량조절도 못하고 몇몇 답안을 끝까지 쓰지 못했습니다.(적지 않은 분들이 그러셨을 것 같은데, 이번에는 시험 감독이 상당히 엄해서 선배들이 가르쳐주신 가드방법은 써먹을 엄두도 나지 않더군요.^^;) 그래서 발표 때까지 은근히 저를 괴롭혔었는데, 지금은 한탄이 아닌 아쉬움으로 남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4. 2차 시험 합격자 발표
올해는 채점 방식도 바뀌고 발표 날짜도 앞당겨 져서 초조했지만, 토익 공부를 해서 기대 이상의 점수도 나오고, 복학해서 학교 수업도 듣고,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도 만나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해서 긴장이 조금 풀리긴 했습니다. 그러나 발표전날과 당일 아침에는 정말 긴장되는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갑자기 찾아온 몸살감기가 나은지 얼마 안 되어 밖에 나가기가 힘겨웠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있던 수업에는 들어갔지만 오후 수업은 그냥 빠질까 하다가 들어갔는데 강의실에 들어가자 같이 스터디 했던 형이 저를 보고 빙긋이 웃더니 “너 됐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순간 멍~해 졌었지만 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습니다. 너무 후련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께 전화했습니다. 하숙집 아주머니가 알고 전화를 하셔서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고맙다, 용수야…, 고맙다…”하고 흐느끼는 어머니 목소리를 들으며 눈앞이 흐려지고 목이 메어 말을 더듬던 그 순간을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Ⅴ.덧붙이는 말
1.교과서 : 저도 처음 공부 시작할 때 어떤 책을 보아야 하는 지의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나니 모두 괜한 고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년 2월과 6월 말쯤이 되면 전국의 몇만, 몇십만, 아니 수없이 많은 수험서들이 비슷한 정도의 내용을 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책을 보는 사람이 합격할 만큼의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였느냐 하는 것이죠. 저는 그냥 남들이 많이 본다는 책을 봤습니다.


2.공부장소 : 학교 고시반(사마헌)이 있어서 수험기간 내내 그곳에서 생활했고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특히 수험기간 내내 매 시험의 성적이 표로 정리되어 잘 보이는 곳에 공시가 되었는데, 이는 정말 효과적인 자극제가 됩니다. 특히 학교에서는 다들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그 효과는 엄청나죠.^^ 또한 숙소(양현관)에도 있었기 때문에 밤에 형들과 방에 모여 TV를 보는 재미는 하루의 피로를 잠시 잊게 해주었습니다.(물론 자고 싶을 때 못자는 약간의 불편함을 겪어야 할 때도 있었지만 재미있었기 때문에 그것도 추억으로 남아있죠.)


3.공부시간 : 저는 공부를 시작하면서 저를 놀게 만들 수 있는 환경적 요소들을 제거했고 공부하는 도중에도 그러한 요소가 생기지 않게 만들었습니다.(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너무 심해서, 마음이 흔들릴 때가 몇 번 있었는데 그걸 참느라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습니다.ㅠㅠ) 그리고 저는 주말에도 공부했습니다. 선배들이 주말에는 놀아줘야 한다고 했지만 이 역시 자기 스타일이라 생각했습니다.(따라서 자기 마음이 편한대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전 조금이라도 책을 봐놓는 게 마음이 편했습니다.) 또한 처음 공부하는 것들이 많아 남들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평일 때만큼 열심히는(그렇게 하려고 해도) 안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1차 시험 공부도 그렇지만 특히 2차 시험의 경우, 그날그날 진도가 밀리지 않도록 해야 불안하지 않습니다. 만약 진도가 밀리더라도 다음날 커버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제끼고’ 넘어갈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저는 공부하던 도중에 이 속도라면 오늘 목표량까지 다 못 볼 것으로 판단되면, 중요도가 낮거나 중요해도 잘 아는 부분은 빠르게 넘기면서 본 뒤에, 틈틈이 시간을 내어 다시 보거나 주말에 자세히 보았습니다.


4.질문하기 : 간혹 제가 책보고 혼자 다 알게 된 줄로 아시는 분들도 있는데, 절대 아닙니다. 얼마나 반복해서 봤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선배들에게 많이 물어봤는지 모릅니다. 혼자 생각해보고 모르면 물었습니다.

 

Ⅵ.뒤돌아보며
1.이렇게 침대에 누워, 벽에 기대어 합격기를 쓰고 있자니 모두 하룻밤 꿈만 같습니다.
항상 지나고 난 뒤에야 ‘시간이 참 빨리도 흐르는구나.’ 하고 느끼는 걸 보면 매일 숨을 쉬고 있으면서도 산소의 소중함을 의식하지 못하고 사는 것처럼 평소에(지금도) 얼마나 많은 시간을 무심코 헛되이 보내고 있었던가 하고 반성하게 됩니다.


2.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떤 목표를 가지고 공부를 해봤습니다.
단지 ‘합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생각해본 적 없지만 그래도 그 목표는 제 아픔과 합쳐져 ‘오기’가 되어 어떠한 외로움, 힘겨움도 느끼지 못하게 저를 마취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상처로 인해 생긴 오기는 그 상처가 아물면 힘을 잃나 봅니다. 그래서 2차 공부하는 동안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지만, 여기서 쓰러지기엔 그 동안 열심히 해온 것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비참할 것 같았습니다. 1차 때와는 달리 2차 시험 기간은 그렇게 버텨냈습니다. 마치 죽을 수 없어서 사는 것처럼.


3.그래도 사법시험은 저에게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토록 한 가지에 몰두한다는 것. 그 경험이 저는 자랑스럽고 시간이 많이 흘러도 그 때를 추억할 것 같습니다.


4.인생에는 연습이 없다고 합니다.
마치 리허설 없이 바로 무대 위에 올라선 배우처럼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고 합니다. 오직 한번 뿐이기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아직 공연은 끝나지 않았고 관객들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이 주저앉으면 안 되겠죠. 어제의 실패는 극적인 결말을 위한 하나의 설정에 불과하다고 여기시고 끝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관객들의 갈채와 스포트라이트, 그리고 온몸을 관통하는 형언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Ⅶ.고마운 사람들
저의 합격은 너무나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모두가 한데 모여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어 만약 하나라도 빠진다면 오늘의 저는 있을 수 없습니다.


수능 쳐놓고 어딜 가야할지 모르고 있던 저에게 법학과를 권해주신 고1때 담임선생님이셨던 조성덕 선생님, 고1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아껴주시고 칭찬해주시고 부산에 갈 때마다 맛있는 것 많이 사주신 김은경 선생님.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교 1학년 시절, 법학과는 ‘도’아니면 ‘모’라며 공부하라고 충고해주시고 제가 나태해지지 않게 다그쳐 주신 하숙집 아저씨, 아주머니.


처음 공부 시작했을 때부터 미래가 걱정될 때마다 든든한 힘이 되어주었던 우석이형.(형~이제 됐죠?ㅋㅋ 군법무관 생활도 열심히 하시길.)


1학년 겨울방학을 앞두고 내게 공부를 시작할 계기를 만들어준 아현이, 그리고 재미난 추억 많이 만들었던 관수, 기웅, 남일, 민정, 승욱, 오성, 용기, 우철, 은실, 장호, 충렬 등 OT조 친구들. 이들과의 추억이 있었기에 사람들이 뭐라 그래도 일찍 공부를 시작한데 대해 전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습니다.


1학년 때 사마헌 스터디로 만난 득범, 수정, 윤하, 인경, 준상, 철환.

 

1차 공부할 때 귀찮을 정도로 자주 찾아가 모르는 것 물어봐도 다 가르쳐주었던 차영이형. 역시 많이 물어보았고 숙소 생활도 같이 하고 술자리에서 항상 그 때 얘기하는 정익이형. 역시 숙소 생활 같이 하면서 많이 이뻐해 주고 먼저 연수원 가 계신 한별이형, 훈이형.


2차 시험 준비하며 같이 스터디 빡세게(?) 했던 성호형, 남훈형, 남구형, 인선이누나, 미경이누나. 귀찮을 텐데 성의껏 저희 스터디 도와주신 경환이형. 각자 공부하기도 바쁜데 2차팀장 맡아 1년 동안 고생하신 창현이형. 합격동기(?) 희영이누나.


항상 잘 챙겨주시고 그리운 고향 생각나게 하는 종욱이형. 힘들 때 속마음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지훈이, 전혀 예의 같은 것 생각하지 않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친구 김현,  잊지 않고 연락해 주는 현승이.


마지막으로, 제가 공부하는데 방해될까봐 회사 그만두신 것도 숨기셨던 아빠, 집에 내려왔을 때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게 내내 마음에 걸린다며 전화하시다 끝내 눈물을 참지 못하셨던 엄마, 많이 혼내기만 하고 같이 놀아주는 형이 되어주지 못해 항상 미안한 동생 용근이. 아무리 힘들 때에도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제 생각해주는 가족의 목소리를 들을 때만큼은 힘이 났습니다. 누구보다 아끼는 제 가족입니다.


모두들 고맙습니다. 더욱 열심히 할께요. 이제 겨우 판사가 어떤 사람인지, 검사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을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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