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회 외무고시 최연소합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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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회 외무고시 최연소합격기
  • 법률저널 편집부
  • 승인 2008.08.0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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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화 서울대 외교학과


“고시는 자신과의 싸움”

 

불과 한 달 전만해도 내가 이렇게 합격수기를 쓰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최종 합격자 발표가 있던 당일까지도 불안감에 사로잡혀 인터넷에 접속해볼 엄두도 못 내고 있던 나에게 합격소식을 처음 알려준 것은 3차 면접까지 같이 봤던 친구였다. 막상 자신은 내년을 기약하면서도 담담하게 나의 합격을 축하해준 그 친구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는 다들 혼신의 힘을 다하면서 정말 어렵게 이 길을 간다는 사실을 내가 직접 경험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외무고시가 다른 고시에 비해 선발인원이 너무나 적은 까닭에 합격권에 들 정도의 사람이면 어차피 비슷하기 마련인 실력과는 무관히, 어쩌면 너무나도 우연적 요소에 의해 그 결과가 좌우될 수 있는 시험이라는 인식을 외시생이라면 누구나 은연중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분에 넘치게도 최연소합격이라는 영예를 안았지만 이것은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거나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의 영광을 위해 더하신 것이라는 점이다. 처음 외시에 뜻을 두게 된 것 부터 오늘의 결과가 있기까지 나를 인도하시고 낙심할 때 위로하시며 용기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더불어 나보다 더 노심초사하시며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부모님께도 진정 감사드린다.

 

전공/고시과목 병행 수강


내가 외시를 처음 시작하게 된 것은 2003년 1월이었다. 이때부터 주변에 외시를 하는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나름대로 정보를 수집해가면서 신림동에서 기본서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처음 들었던 것은 국제법 강의였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국제법이라는 과목이 그냥 너무 어렵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 후 헌법기본강의를 들었는데 열의는 충만했으나 헌법은 공부량이 방대하여 그리 만만한 과목이 아니었다. 따라서 당시에는 강사의 설명을 주의 깊게 듣고 우선 이해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렇게 기본강의를 듣는 것으로 겨울방학이 얼추 끝나갔고 3학년 1학기가 시작되었다. 이때부터는 학교 수업 시간표를 고시 관련 강의로 맞춰서 미시, 거시 경제와 국제법, 국제정치경제 등의 강의를 들었다. 이때 학교강의에 맞춰 충실히 예습복습을 하려고 했던 것이 이들 과목의 기초를 닦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 후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신림동에서 국제정치학과 경제학을 학원에서 수강하면서 보다 집중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학원 강의가 없는 때에는 독서실을 다니기도 했다. 3학년 2학기에는 학교에서 국제정치사상, 안보정책론, 국제정치이론 등과 같은 전공과목과 국제법, 불어 등의 고시관련 과목을 병행해서 수강했다. 전공이 국제정치학인 것이 학교공부와 고시공부를 병행함에 있어 부담감을 다소 완화해주었고 동시에 국제정치학을 보다 심도 있게 공부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던 것 같다.

 

2차경험이 길잡이 돼


이후 겨울방학을 맞아 새롭게 도입된 PSAT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을 안고 신림동 독서실로 다시 돌아왔다. 겨울방학에는 다른 것은 일체 생각지 않고 오로지 2004년 2월에 있을 1차시험 합격만을 목표로 헌법과 한국사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기본서를 3회 반복하여 공부하고 판례강의와 부속법령강의도 들었다. 특히 헌법은 시험 바로 전까지 부속법령을 집중적으로 본 것이 주효하여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고 한국사는 그 당시 매우 어려웠다는 평이 지배적인 가운데 그나마 문제를 많이 풀어본 것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PSAT는 행자부에서 미리 실시한 모의PSAT를 보면서 틈틈이 시중의 문제집으로 감각을 익히려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언어논리의 경우에는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으나 대조적으로 자료해석의 경우 매번 시간이 부족하여 좌절감에 휩싸이곤 했다. 실제로 1차 시험을 치를 때조차도 자료해석의 경우에는 마지막 3,4문제는 결국 풀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PSAT시험이 최초로 도입되어서인지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까닭에 1차 커트라인이 70점대로 대폭 하락하면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점수로 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2차 시험 자격이 주어졌으나 스스로도 공부량이나 기간 모두가 일천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기에 별로 욕심내지 않고 부담 없이 경험삼아 2차를 보게 되었다. 당시 2004년 1학기에 재학 중이었고 졸업논문을 써야하는 등 학교 공부가 많아 2차 시험에 대비할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었다. 따라서 부담 없이 본다고는 했지만 몇몇 과목은 40점 이하의 과락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의외로 단 한 과목도 과락은 없었다. 게다가 이 때 영어점수가 90점 이상이 나왔는데 중고등학교 때 국제학교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었고, 또 평소에 영어에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이것은 생각 외로 좋은 결과였다. 이런 경험은 이후에 2차 과목을 공부하는 데 있어서 자신감을 주었고 동시에 내가 취약한 과목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함으로써 향후 공부 계획을 세우는데 있어 중요한 길잡이가 되었다.

 

신림동 생활 시작


이후 2004년 2학기부터 1년간 휴학계를 내고 여름방학 때부터 신림동에서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왕복 도합 2시간의 통학시간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신림동의 고시원에 임시 거주하면서 독서실과 고시식당을 주 근거지로 하는 진정한 고시촌의 고시생으로 생활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이 때 부터는 기본강의와 학교수업으로 잡은 틀 위에 학원에서 하는 GS강의를 들으면서 공부를 보다 심화하는 단계였다. 그러나 모든 GS강의를 섭렵하기에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효과도 떨어지기 때문에 각 과목별로 학원 강의를 적어도 한 번씩은 듣되 강의를 마친 후에는 스스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했다. 중요한 자료를 정리하고 서브노트를 만드는 등의 작업은 이런 방식으로 조금씩 해나갔다. 동시에 스터디를 구성하여 국제정치학과 영어를 각각 1주일에 한 번씩 다루기 시작했다. 국제정치학은 토론에 이어 답안지 작성을, 영어는 실제 시험과 동일한 모의시험을 매번 보았다. 주로 오전에는 어학을 오후에는 학원 수업과 복습 예습을 했다. 어학은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하루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는 않았으나 불가피하게 오전에 어학 공부를 못하는 날에는 논문과목을 공부하는 도중에 쉬는 셈치고 조금이라도 보려고 노력했다. 다행이 어학을 재미있어 했기 때문에 이런 공부방법이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2차 위주로 12월까지 공부하다가 1월부터는 다시 1차공부에 매진했다. 바로 그 전 해에 1차 공부를 해본 경험이 있어 한결 수월했었던 것 같다. 막상 1차 성적은 전년도에 비해 떨어졌지만 어쨌든 합격권 안에 들 수 있었다. 그리고 1차 결과가 불안한대로 바로 2차 공부에 돌입했다. 이때는 주로 학원에서의 모의고사 강의를 들으면서 답안지 작성 요령을 익히고 마지막 정리에 신경 썼다. 이  때가 가장 체력적으로 소모가 많이 되고 정신적으로도 힘겨웠던 것 같다. 답답한 마음에 화장실에 가서 혼자 운적도 많았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라는 성경말씀을 붙잡고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꿈★이 현실로


고시는 본질적으로 자신과의 싸움이다. 따라서 자신의 성향과 자신에게 맞는 공부 방식을 면밀히 탐구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매일매일 그것을 달성해나가는 마음으로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특히 고시는 우선 요구되는 절대적인 공부량이 막대하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은 오로지 공부에만 집중하기 위해 인간관계나 취미, 여가활동 등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이런 희생과 기회비용을 줄이는 첩경은 더욱더 그 공부기간만큼은 그 자체에만 정열을 쏟는 것이며 무엇이든지 대가없이 얻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마음에 품고 외교관으로서의 자신의 미래를 확신하며 하루하루 정진할 때 그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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