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란 없애면 학벌타파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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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란 없애면 학벌타파 되나
  • 법률저널
  • 승인 2002.01.30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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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인적자원부의 한완상 부총리가 최근 국무회의에서 '학벌 타파'를 내세우면서 '기업 입사서류에 학력란을 없애자'고 주장했다가 다른 장관들의 반론에 부딪쳐 이른바 학벌주의 문화 타파 추진대책이 보류됐지만 우리사회 어느 부문에서나 학벌주의라는 거대한 벽으로 인한 폐해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며 또한 한부총리의 심정은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그러나 교육정책이 즉흥적인 처방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마스터플랜 아래 추진되어야 하는 이유는 학벌주의와 같은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관행과 맞서 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충분한 여론수렴 과정이나 관계 부처와의 협의가 필수적인 사안임에도 교육부 수장으로서 이런 과정 없이 '준비 안된' 즉흥적인 정책을 국무회의에서 보고했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발상에 실망을 금할 수가 없다.

  우리 사회가 학벌위주이고, 그에 따라 여러가지 부작용과 문제점이 많다는데 이론(異論)을 달 사람은 없다. 우리 법조계만 하더라도 학벌과 지연으로 얽혀 '끼리끼리'라는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따지고 보면 현재 각종 게이트와 관련된 부정부패의 악취가 권력주변에서까지 진동하는 것도 학벌과 지연이라는 끈이 한몫 한 것이다. 우리의 학벌은 '현대판 붕당,' 또는 '카스트,' '학벌이 봉건시대의 신분을 넘어서는 최상의 자산'이라는 상당히 도전적이고 냉소적인 수사(修辭)를 덧붙이는 것도 우리 사회의 학벌폐해가 어느 정도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 부총리가 지적한 대로 우리 사회에 만연된 학벌문화가 국제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측면도 있고 그 학벌의 뿌리가 각종 취업시험에 많은 사람을 합격시키는 몇몇 특정대학에 근거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스무살 나이에 치러지는 대학 입시에서 이미 개개인의 인재 가치가 결판난다는 것이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는 속담 한마디가 '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전통적 가치를 여지없이 압도하는 형국이다. 전국민의 5%에 불과한 명문대출신이 국내상장회사 임원의 46.8%, 국무위원의 45%, 국회의원의 몇 퍼센트 등 줄줄이 통계를 댈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모두 명문대를 가려는 대학입시 과열의 근본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민간기업들의 입사서류에서 학력란을 지우도록 강제하겠다는 것은 그 실현성과 실효성을 따지기 이전에 구더기 없애기 위해 장을 담그지 못하게 하려는 식의 난센스다. 학벌주의와 학력(學力)은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학벌주의는 배격해야 할 대상이지만 학생들의 학력 제고는 교육정책의 한 축이 돼야 한다. 세계 어디에 학력을 완전히 '불문(不問)'에 부치는 나라가 있는가. 능력주의 사회라는 미국도 '아이비 리그'니, 'MBA 톱10'이니 해서 학교의 우열을 따진다. 영국도 예외가 아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매년 세계의 경영대학원을 일렬로 세워 순위를 매긴다. 지식기반사회에선 학문 발전과 인재 양성 없이는 치열한 국가간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학벌타파는 지금 우리 시대의 중요한 과제중의 하나이다. 학벌문화는 포스터 몇 장과 캠페인성 운동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 처방은 보다 정확한 현실인식하에 왜 학벌주의가 사라지지 않는지 원인을 분석하고 실현 가능한 대책부터 세워야 한다. 당장 해결할 수 없으면 수십년 후에라도 결실을 얻을 수 있도록 백년지계를 세우는 것이 교육부 수장의 역할이자 우리 모두가 앞장서서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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