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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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마음으로
  • 법률저널 편집부
  • 승인 2002.01.28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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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표
경찰대학교 법학과 졸업(15기.1999)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졸업(2001)
현)대구지방경찰청 제2703전투경찰대 소대장 근무
제43회 사법시험 합격

 

  합격소식을 처음으로 들었을 때는 시위자들과 한창 몸싸움을 하다가 잠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있던 때였다. 집회허가받은 장소를 이탈하여 폴리스라인을 뚫고 거리를 행진하려는 사람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우리대원들간의 실랑이가 오전내내 계속되고 온몸은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마침 걸려온 전화에서 합격소식을 전해들었다. 그때의 심정이란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싹 가시고 말그대로 날아갈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드디어 뭔가를 해냈구나하는 성취감이 물밀 듯 밀려왔다.

 

 되돌아 보면 참 힘든 시간이었다. 물론 누구나 힘든 시간이었겠지만 나에겐 정말 시간이 너무 없어 나 자신이 원망스럽기조차 한 시간들이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경찰간부라는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있는데 굳이 고생하면서 고시를 하느냐고.....


 내가 고시를 처음 시작하게 된  때는 경찰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 법학과를 입학하면서이다.
 경찰대학시절부터 법학에 흥미가 많았고, 현실에 안주하기 보다는 나 자신을 채찍질하여 새로운 목표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싶었다. 또 경찰생활을 함에 있어 풍부한 법적 지식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처음 접하는 대학원생활로 1학기가 정신없이 지나가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게 된때는 여름방학이 시작한 7월초였다. 서울대 도서관에서 나 홀로 공부를 시작하였다. 남들이 가장 많이 보는 기본서로 헌,민,형부터 공부를 시작하였다. 경찰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였던 탓에 별로 어려운부분 없이 수월하게 1회독을 마칠 수 있었다. 공부 시작하고 1달이 지나자 기본서는 어느정도 볼 수 있었고 바로 문제집을 풀었다. 민법은 김상용저로 형법은 김일수 저로 공부하였다. 나중에는 시중에 나온 문제집은 거의 다 풀 정도로 시간은 충분하였다. 시험에 임박해서는 모의고사를 보곤하였는데 항상 석차가 1%안에 들었다. 자신감이 생겼고, 93점이라는 성적으로 무난히 42회 1차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문제는 2차였다.
42회 동차가 아니면 이듬해 43회 시험을 보아야 하는 데 당장 2002년 1월에 논산훈련소 입소를 하고 그 뒤에도 계속해서 일선에서 근무를 하여야 하는 관계로 거의 공부할 시간을 확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동차를 노리고 공부를 하였다. 그러나 예상되로 생전 처음치는 2차시험에 동차로 붙기란 정말 어려운 것이었다. 특히나 42회시험때는 추가합격자가 많았기에 2차경쟁률이 더욱 치열하였다.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3월부터 2차 공부에 돌입하였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후4법부터 오후반 저녁반을 겹치기로 들었다. 그 결과로 1달이 넘어서면서 거의 전과목을 한번 씩 볼 수 있었다.  그 뒤로는 혼자서 기본서를 반복해서 보았다. 하지만 후사법은 생소한 관계로 생각보다 진도가 나가지 않았고, 케이스집도 한과목당 한권도 제대로  볼 시간이  없었다. 정말 정신 없이 시간은 흘러 갔다.


 모의고사는 칠 시간도 없었고 실력도 없었다. 다른 사람의 답안지를 보면서  나자신이 한심해 지고 시험이 다가오자 자포자기 하는 심정이 되었다. 


 드디어 시험을 치게 되었고, 시험장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답안지에 글을 쓰게 되었다. 막상 답안을 쓰게 되자 그때서야 시험장에서는 글씨를 엄청 빨리 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자는 쓸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다만 답안이라도 채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부지런히 쓴 끝에 각 문제마다 3장에서 4장은 채울 수 있었다. 글씨는 엉망이었다. 시험을 치고 나서 생동차가 정말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면서, 논산훈련소를 들어갈 때까지 과연 내년 시험칠 수준까지 끌어올릴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역시나 떨어졌지만, 나중에 성적을 확인해 보니 의외로 불과 커트라인에서 1점정도가 부족한 점수였다.
 그 때 조금만 더 열심히 하고, 답안쓰는 기술만 익혔으면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었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7월중순부터 다시 2차 공부를 시작하였다. 이때는 새로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기본서를 중심으로 학원강의를 다시 들었고, 케이스집과 판례집도 새롭게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동안 시험공부를 하느라 밀렸던 대학원 수업을 한꺼번에 듣느라고 적지 않은 시간을 빼앗기게 되었고 공부하는 시간에도 내년에 근무하면서 공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공부가 제대로 될리 없었다. 인생에 한번 올까말까한 기회를 이렇게 날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매번 들곤 하였다. 12월까지 나름대로 동차때 보던 책으로 단권화를 하였다. 나중에 근무하면서 다시 공부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많은 자료를 볼 엄두를 못내고, 자료중에서 진짜 필요한 부분만을 골라서 기본서에 붙이는 방식으로 하였다.

 

 12월 말이 되어서 책을 다 싸서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2001년 1월 6일에 논산훈련소에 입소하였다. 입소하는 그날도 눈이 엄청나게 왔는데 훈련기간내내 그간 10년동안 가장 추웠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추위가 엄청났다. 공부를 할 시간은 거의 나지 않았고, 하루 종일 훈련을 받고 나면 몸이 녹초가 되어 점호가 마치면 그냥 자기 일쑤였다. 훈련기간내내 감기에 걸려서 퇴소한 후에는 1주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앓아누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논산훈련소를 퇴소한 후에는 바로 일선근무가 시작되었다.  참 오랜만에 다시 책을 보았다. 박스에 넣어둔 책에는 먼지가 쌓여있었다. 머리속이 백지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이제 시험까지 남은 기간은 불과 3달남짓... 1분 1분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러나 근무하는 동안에는 공부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주위의 눈치도 보아야 하고, 내 성격이 원래 집중해서 공부해야 하는 스타일이어서 시끄러운 분위기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퇴근후 저녁시간과 주말에 집중해서 공부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 때가 참 힘들었던 때였다. 시험날짜는 자꾸 다가오는데 시간은 없고, 근무하면서 공부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인가를 새삼 깨달았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감과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지면서 공부하는 시간보다는 시험에 떨어지면 나는 어찌되나 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이 때 부모님의 위로와 격려 그리고 나 자신의 마인트컨트롤로 마음을 다잡아 갔다. 사법시험이란 나에게 주어진 하나의 덤이고, 합격하면 좋겠지만 설사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다만 하나의 덤을 얻지 못하것이다라고.... 그리고 나는 아직 젊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하면서 다시금 결의를 다지곤 하였다. 

 

 전경대의 주요 업무가 집회나 시위가 있을 때, 이에 대비하여 질서를 유지하는 것인데, 실제로 집회의 대부분이 신고장소와 시간을 이탈하거나 불법물건(각목,화염병,돌,계란등)을 소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폴리스라인을 뚫고 나가려는 시위자들과 몸싸움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심한 경우에는 시위자들이 던진 돌이나 과일 ,계란, 쓰레기 등에 맞아 다치기 일쑤였다. 특히 더운 여름철에 진압복을 착용하고 헷멧을 쓰고 있으면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비오듯이 오고 체력이 약한 대원들은 쓰러지는 경우도 있었다. 나 역시 데모현장에 한번 갔다 오면 그날은 너무 피곤해서 도저히 공부가 되지 않았다.


 야간에는 방범지원근무가 있었다. 보통은 새벽2시 늦게 할 때는 새벽 4시까지 근무가 있다보니 그 다음날에는 정상적인 상태로 공부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마음을 고쳐잡으며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초인적인 힘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다만 이 때는 집에서 출퇴근을 하여 심리적으로는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 하나의 위안이였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고대에서 시험을 치게 되었는데 마침 친구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할수 있게 되었다. 이틀전에 서울로 올라왔다. 첫날 헌법을 치는 데 생각과 달리 헌재판례에서 문제가 나오지 않아 당황하였으나 차분히 6장을 채우고 나왔다. 둘째날 민법을 치면서 사례문제의 목차를 잡는데 20분이 넘게 걸렸다. 단문 역시 1차칠 때 얼핏 본 기억외에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법전을 참고하여 최대한 장황하게 풀어써서 장수라도 채울려고 노력하였다. 나중에 확인을 해보니 역시나 민법점수가 가장 저조하였다.  

 
셋째날, 마지막날은 아는 한도에서 최대한 양을 늘려 썼다.  내용이 부실하면 양이라도 많이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였다. 마지막날 오전에 시험을 마치고 나오니,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냥 비를 맞으면서도 왜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막연히 이번 시험에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 공부방법은 다음과 같다.


1) 헌법 - 원, 양책을 기본서로 하고 정회철책으로 보완하면 충분하다.
2) 민법- 송영곤책으로 단권화하고, 빠진 부분은 김형배기본서로 보완하고, 김종률,송영곤케이스를 보았다.  
3) 형법 - 광장서적 단문집으로 단권화하고 케이스문제를 많이 풀어보았다.
4) 민소법 - 이시윤책과 광장서적 단문집으로 보완하고, 광장서적 판례와 이정우케이스를 보았다.
5) 상법 - 정찬형기본서와 박승권자료집을 참고하고 임재철케이스를 보았다.
6) 행정법- 이병철로 단권화하고 유지태, 이재화 케이스를 보았다.
7) 형소법- 이재상기본서로 단권화하고 광장서적 판례집과 이재상케이스를 보았다.

 

 모든 과목에 있어 고시잡시에 기고된 교수케이스는 한번 정도 보기를 권한다.
 나의 경우, 스터디는 하지 않고 혼자 공부하였는데 , 오히려 공부할 시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고, 큰 혼란 없이 지속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스터디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며, 다만 학원강의를 통해서 혼자공부하는 데서 오는 단조로움과 오류를 줄일수 있다고 본다.

 

 시험을 합격하기까지 주위의 여러분들에게 분에 넘치는 은혜를 입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부모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합격소식을 듣고 기뻐하시던 부모님의 주름진 얼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의 합격이 일평생을 교육자로 계시다 이번에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임하신 아버님께 작은 선물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몸이 편찮으시면서도 저에겐 알리지 않으시다가 합격소식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저에게 병을 알리신 어머님께도 저의 합격이 힘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경찰대학 동문선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과 같은 존재이신 서민 선배님, 친형같은 자상함으로 보살펴주신 정창옥선배님, 유머와 인간미가 넘치는 이재훈 선배님, 대범하시면서도 세세한 점하나까지 정이 많으신 이두호 선배님, 소탈하시면서도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박동훈 선배님, 모두가 평생 잊을 수 없이 고마운 분들입니다.
 또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공부하고 있는 나의 친구들, 명환이와 보광이, 진혁이 효일이에게 어서 빨리 합격의 기쁨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힘든 업무속에서도 많은 배려를 해주신 전경대  대장님과 직원분들 특히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신 이승천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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