窮하면 通한다 - 나의 수험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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窮하면 通한다 - 나의 수험생활
  • 법률저널 편집부
  • 승인 2002.01.28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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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춘
73년 대전고등학교
98년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제43회 사법시험최고령합격(47세)

 

窮하면 通한다 - 나의 수험생활

 

사법시험에 도전한 지 5년째에 겨우 그 결실을 보게 되었다.
그야말로 불확실성에의 도전이었고, 이런 모험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궁박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법률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데다, 나이마저 먹은 내가 과연 해 낼 수 있는 일일까?
그러나 공부 자체는 즐거웠다. 법률 세계는 이제껏 접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영역이었고, 특히 민법과 헌법을 공부하면서 내가 꿈꿔 왔던 그러한 사회,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가 결코 신기루와 같은 것만이 아님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자유'롭게 사는 것이며, 인간이 자유롭기 위한 기본 전제가 바로 '소유'의 문제라는 것 등이 그것이다. 설사 합격하지 못하더라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자신도 생겼다.

 

물론 순탄치 않은 수험기간이었다.
이 늦은 나이에 명리를 쫓는 것은 아닌 지, 혹은 보상심리가 개재되어 있는 것은 아닌 지.. 사실 공부를 하려고 앉아 있으면, 지난 실패의 경험들이 떠올라 마음이 괴롭고 우울했다. 온갖 상념들이 마치 물귀신처럼 발목을 붙잡는 것이었다.
나는 신림동 고시촌 뒷산을 혼자 헤메면서 그런 상념들과 정면으로 맞섰다.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공부하던 중에 떠오른 상념들을 산길을 걸으며 다시 떠올렸고, 그러한 상념들에 푹 젖어 보기도 했다. 사실 마음을 다잡는 데 홀로 등산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 듯 하다. 몸도 건강해지지만, 일종의 정화작용을 하는 것이었다.


무턱대고 자신감을 불어넣었지만, 7개월 정도 준비한 끝에 치룬 첫 1차시험에서 낙방했다. 오전 두 시간, 오후 두 시간의 짧은 시험이었지만, 녹초가 될 정도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해 볼만하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승부욕도 강해져서 그 후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체력에 있어서도 별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사법시험을 보기로 한 데는 두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이를 바탕으로 학문의 '길'을 찾아보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내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80년 광주사태 이후 포기했던 학업을 계속하려고 97년에 복학하여 98년 8월에 학부 졸업장을 받았고, 99년에 대학원 입학시험을 치러 2000년에는 교육사회학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아내는 구로동에서 학부모를 중심으로 한 지역사회운동, 교육자치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99년에 처음 본 2차시험은 턱없이 낮은 점수로 낙방했다. 1차시험에 실수를 해서 답안지를 잘못 옮겼고, 그 때문에 엄청난 불안감에 시달렸을 뿐만 아니라, 1차 합격자 발표 후 욕심을 부려 봤지만 체력이 형편없이 떨어져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 후에가 문제였다. 한번 떨어지기 시작한 체력이 회복되질 않는 것이었다. 일요일 말고도 1주일에 한번씩은 퍼져서 도무지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공부 장소를 신림동 고시촌에서 학교 도서관으로 옮긴 후, 공부 장소에도 잘 적응하지 못했다. 당연히 스터디 팀의 진도를 따라잡지 못해 지진아 신세를 면치 못했다.


드디어 2회독이 끝나고 3월이 되어 정리독인 3회독을 진행하며 모의고사를 매일 치렀는데, 전형적인 학원 문제조차 제대로 풀어내질 못해서 낙제 점수를 받기 일쑤였다. 이렇게 되면 결국 낙방하겠구나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그러나 제대로 정리를 못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었고,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스러웠다. 아예 이번 시험을 포기하고 다시 1차를 준비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후배 중에 막차를 포기하고 새로 준비해서 다음해 동차에 합격한 사례가 있었다. 제대로 준비하여 시험을 치루지도 못하고 혹시나 합격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마음고생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마음을 비우고 다음해를 기약하는 것이 현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정리하니 너무 막막해지고 아예 공부가 되질 않았다. 또한 마지막까지 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지막 두 달을 혼자서 공부해 보니 의외로 정리가 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다시 자신감도 생겼다. 그 중 한 달은 공부장소를 바꿔서 동네 도서관과 집을 수시로 옮겨가며 공부했다. 4회독은 4∼5일마다 한 과목씩 정리해야 하므로 매우 짧은 기간이었지만, 민법과 형법, 민소법 등은 좀 늘여잡았고 어쨌든 나름대로 정리를 했다. 그러나 민법은 5회독부터, 형법은 6회독부터 포기했다. 물론 시험 전날도 정리를 못했다.

 
부족하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비교적 컨디션이 좋은 상태에서 두 번째 2차시험을 치뤘다. 고득점을 기대할만 한 과목은 없었지만 비교적 무난하게 시험을 치뤘으므로 합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역시 제대로 정리를 못했던 민법과 형법 점수가 저조했고, 커트라인 마저 높아져 총점에서 무려 15점이나 모자랐다.

 

2001년 하반기에는 발표를 기다리며 대학원 과정을 공부했는데, 덕분에 즐겁고 유쾌하게 보냈다. 4명이서 두어달 동안 민사판례연구와 형사판례연구를 읽으며, 민법과 형법을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었던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터무니없는 자신감이었지만, 발표 당일 날 아내까지 데리고 고시촌에 가서 합격자명단을 확인했다. 그런데 내 이름이 없었다. 아내가 너무 충격을 받은 것 같아서 안쓰럽고 가슴이 쓰렸다.

 

다음날 대학원 연구실에서 보따리를 싸고, 고시촌 독서실에 자리를 예악한 후 일요일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 사이 이틀 밤낮이 얼마나 길었는 지 모른다. 그러나 다시 공부를 시작하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니 아무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는 지도 모른다. 예년보다 2차 발표가 한달 이상 늦은 데다가 1차 시험 날짜가 며칠 빨라졌기 때문에 다급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 70여일만 있으면 다시 1차를 볼 수 있고, 2차 시험까지 7개월밖에 안 남았다는 점이 오히려 위안도 되었다.


1차시험을 다시 준비하며, 민법과 형법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조문과 판례들을 꼼꼼히 장악하려고 애썼다. 공부 방법은 각 과목당 정평 있는 문제집을 한권씩 선정하여 풀어보고 거기서 드러난 부족한 부분을 교과서를 통해 정리하는 방식이었는데, 꽤 재미가 있었다. 학원에서 만든 전과목 모의고사는 이렇게 1회독을 마친 후부터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어 외에 선택과목을 모두 바꿨다. 새로울 것이 없는 경제법과 형사정책을 다시 본다는 게 끔찍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1차시험에 고득점을 해서 낙방에 대한 두려움 없이 2차 준비에만 매달릴 수 있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일부러 고시촌 변두리에 독서실을 정했기 때문에 눈덮힌 언덕을 넘어 다니며 식사를 했고, 아이젠을 신고 산길을 걸으며 매일같이 전의를 다졌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산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큰 복이려니 생각하고 위안을 삼았다.

 

다행히 1차시험 성적이 매우 좋았다. 오전 과목을 5개로 선방했고, 오후 과목은 성적이 좋지 않았으나 평균이 92.5였으므로, 부담없이 바로 2차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막차 3회독에 맞추어 학원 모의고사를 매일 치렀는데, 성적은 상위권에 들지 못했지만, 매우 감이 좋았고, 무엇보다도 소신껏 쓸 수 있었다. 예상 문제에 대한 학원의 답안 해설도 많이 참조했다. 전혀 새로 공부한다는 생각이 안 들었고, 지난해 2차 시험 때의 토대 위에서 공부가 더 진전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부 시간에는 그리 욕심을 내재 않았다. 일찍 나오려고 무리하지 않았고, 아침 8시까지 충분히 잔 후 10시경부터 공부했다. 저녁에는 10시반쯤 공부를 마쳤다. 중간에 등산을 두어 시간 했으니까 하루 8~9시간 정도 공부한 것 같다. 쉬는 시간도 넉넉하게, 가능하면 홀로 산책을 하면서 보냈다. 두 번째 2차 준비 기간에는 밤에 잠을 못이루어 고통을 받았으나, 이번에는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

 

1차 준비는 혼자서 했으나, 2차 준비는 7명이 함께 스터디를 했다. 과목당 예상 문제를 뽑아서 발제한 후, 토론해 보는 방식이었다. 웬만큼 공부를 한 친구들이라서 토론에서 막히는 일이 거의 없었고 잘 정리가 되었다. 스터디는 사전 준비가 얼마만큼 되어 있느냐에 달린 것 같다. 예상 문제를 30개 정도 선정하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회독을 거듭하며, 더 많이 추가하여 정리된 양은 많아졌다.

 

2차시험을 치루면서, 몇 과목은 고득점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리 힘들지 않게 답안을 채울 수 있어서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민법은 심혈을 기울여 정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예년 보다 별로 잘 본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매우 허탈했다. 1문은 잘 썼으나, 2문과 3문은 준비하지 않은 문제였으므로 과락까지 걱정되었다. 교과서로 정리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나중에 성적을 알아보니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60점을 넘긴 과목이 없어서 매우 실망스러웠으나 다행히 민법과 형법에서 비교적 좋은 점수가 나와서 만족스러웠다.

 

이번에 2차시험을 보고 나면 다시 시험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므로 건방져 보일 지도 모르지만 막차 준비는 하지 않았다. 대신 대학원 과정에 복학하였고 무리였지만 4과목 12학점을 수강했다. 그러나 발표를 약 3주 정도 남겼을 때부터는 몹시 초조했다. 그렇게 시간이 안 갈 줄이야.. 대학원 수업도 빼먹기 일쑤였다.

 

나보다 더 오래 공부한 사람도 많고, 공부 방법을 논하는 것이 어쭙잖아 보일 수도 있다. 결국 자기 자신에게 맞는 공부 방법을 빨리 알아채는 것이 승부의 관건이라고 본다. 즉 공부에 진전이 없으면, 무엇이 장애가 되는 지를 꼼꼼히 체크해 보고, 그러한 장애 요소를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시험공부지만, 역시 공부란 그 자체에서 얻는 즐거움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사법시험 준비 역시 '학문하는 것'이라고 본다.

 

나에겐 '궁하면 통한다'는 삶의 이치가 잘 들어맞는 것 같다. 사람이란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든 이에 적응하거나 곤경을 헤쳐나갈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편 여유가 있을 때 더욱 겸손하고 부지런해야 한다고 새삼 다짐해 본다. 다급한 상황에서는 누구나 초인적 힘을 발휘하지만, 난관을 돌파한 후에는 오만해지거나 게을러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실패가 계속되지 않음과 마찬가지로, 성공 역시 계속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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